난곡동으로도 불리는 서울 신림7동. 매서운 바람이 골목길을 휘돌던 그 날, 냉기 가득한 단칸방에서 혼자 된장국 하나로
저녁식사를 드시다 취재진을 맞은 84세 윤인득 할머니의 말이다. 할머니가 취재를 나선 기자에게 간청하신 건 다름 아닌 ‘틀니’.
정부 보조로 한 달에 28만원을 받는 윤 할머니는 틀니 관련 취재를 가겠다고 했더니 기자가 어떻게든 해결해 줄 거라고 믿으셨던
모양이시다. 할머니는 두해 전 월세 살던 집이 철거되면서 받은 이주보상비 100만원에 몇 년간 모은 50만원을 보태, 무허가업자, 속칭
‘야메’가 만들어 준 틀니를 사용해 왔는데, 이 틀니를 지탱해주던 나머지 치아가 빠지면서 속수무책 잇몸만으로 생활을 하고 있던
터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충남 당진 한
시골 마을회관에서 만난 할아버지들. 자장면을 먹다가 면발을 끊지 못해 식도가 막혔던 얘기, 잔치집에 가서도 먹고 싶은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는
얘기를 들을 땐 재미있단 생각에 나도 몰래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딱딱한 음식을 잇몸만으로 씹다가 피가 났다는 얘기, 그 고통과
서러움 때문에 주름진 얼굴에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 김치도 제대로 씹지 못해 우물우물 넘기다보니 매일 소화제를 먹어야 된다는 얘기, 자식도
형편이 어려워 몇 년 째 이 없이 살고 있다는 얘기로 이어질 땐, 이게 아닌데 싶어 죄스런 생각과 함께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틀니 값을 얼마나 받길래 황혼길 노인들이 이런 고통을 겪고 계시나.....’
‘틀니 값’ 기가 막힐 노릇
방송에 나왔듯이 같은 환자를 놓고 치과별로 2백만원부터
380만원, 6백만원, 7백만원까지 틀니시술 비용에 차이가 났다. 대충 비쌀 것이라는 짐작은 했지만, 무려 최고 5백만원이나 차이날 줄은
몰랐다.
2백만원짜리도 비싸다 싶은 생각이 들던 참이었는데, 강남의 한 치과에서는 틀니시술 견적 7백만원을 부르면서 아랫니는 틀니
대신 1개당 3백만원짜리 임플란트(인공이를 심는 것)를 하라며 싸게 잡아 1천5백만원이면 된다고 했다. 물론 보험은 단 1원도 적용되지
않는다면서.
‘살기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이로 씹어야 하는데, 그런 기본적인 작은 의치하나 만드는데 수백만원, 아니,
천만원 넘게 돈을 달라고...’
기가 막혔다.
도대체 원가가
얼마야!!??
한번 따져보자. 도대체
틀니원가가 얼마나 되는 건가?! 기공소에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원가 얘기는 민감한 부분이라 할 수 없다는 것. 마지막으로
치기공사협회에 연락했더니 보통재질에서 고급재질까지 40~70만원 안팎으로 치과에 틀니를 납품한다는 인터뷰를 했다.
틀니 원가가
40~70만원? 좀 비싼 것 같은데...(방송 뒤 몇몇 치기공소들로부터 치과에 납품하는 틀니가 10만원 안팎이라는 항의를 받았다. 협회는 치과에
납품하는 가격을 높이려고 인터뷰할 때 좀 높게 부른 거지 실제는 턱없이 싼 값에 틀니를 납품해 기공사들 형편이 어렵다는 것)
‘좋다
그렇다고 치자. 틀니는 위아래 두 개니까 80~140만원. 그러면 최저 2백만원을 제시한 치과는 보통 재질 틀니 만들어주고 120만원정도 남을
테고, 최고 7백만원을 부른 치과는 비싼 재질 쓰면서 5백60만원 정도 남는다고 보면 되나?!’
그런데, 대한치과의사협회는 건물
임대료. 인건비, 재료비, 관리비 등을 포함해 틀니 두 개를 할 때 각각 105만원 정도씩, 평균 210만원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치과의사에 따라 값 차이가 생긴다고 했다. 원가에 인건비를 넣어 계산하고도, 또 지역에 따라 의사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한다고..
‘어딘지 앞뒤가 안 맞는 말 같다. 틀니 시술 원가가 평균 2백10만원? 그러면 2백만원 부른 치과는
얼마가 남는 거고. 7백만원을 부른 치과는 또 얼마를 남기는 거야? 왜 이렇게 들쑥 날쑥해. 그럼 치과의 틀니 값은 정해진 게 없다는 얘기
아냐!’
비보험 의료서비스는 가격 관리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를 만나
틀니의 의료보험 적용 가능성을 물었더니, 안 된다고 했다. 그럴 돈이 없단다. 의사들 수가 맞춰 계산해 봤더니 1조 정도 필요하다면서...
노인들은 힘들어 죽겠다는데 의사 수가를 먼저 따지고 수백만명분의 틀니 예산을 계산한 모양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건치>에서는 극빈층과 차상위계층 등에게 많은 혜택이 가도록하는 방법으로 대략 770억원 정도면 일단 틀니 보험적용을 시작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는데 혹시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 치과마다 제멋대로인 틀니 값을 통제할 방법은 있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없다고 한다. 비보험 의료 서비스부문은 관리대상이 아니라는 거다. 틀니 값은 치과에서 맘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나 다름없이
들렸다.
‘그러면 주유소 입간판처럼, 치과 간판에도 틀니 값을 써 붙여 놓아야 미리 알아서들 골라 찾아 갈 것 아냐!!’ 괜히
부화가 났다.
사기 치는 대통령들?
지난 92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노인틀니의 의료보험 적용은 단골 공약이었다. 97년, 2002년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먹고 싶은 걸 눈앞에 두고 먹지 못하는
괴로운 처지. 이가 없는 노인들에겐 얼마나 반가운 공약이었겠는가!
그래서였을까? 틀니 보험화 공약을 했던 후보들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4년 전 부터 정부는 예산을 들여 70세 이상 기초생활수급대상자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틀니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껏
2만5천명 정도가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극빈층의 12%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신림동의 윤 할머니처럼 나머지 88%는
어떻게 되나? 또 틀니가 필요한 70세 미만의 극빈층과 차상위계층 수십만명 또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노인 백수십만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형편이
뻔한 자식들에게 미안해 틀니 사달라는 말도 꺼내기 어렵다는 노인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정부는 어떻게 해 보겠다는
말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