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유령당원 사건은 한
통의 제보 편지로부터 시작됐습니다. 2주 전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저에게 편지와 5장의 문서를 보냈습니다. 그 5장의 문서가 봉천본동
유령당원들의 명단이었습니다.
제보자는 편지에서 "명단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열린우리당의 당원으로 가입돼
있고, 노인교통수당이 지급되는 통장에서 매달 몇 천원씩이 당비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직감적으로 기사가 된다고 판단하고
현장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봉천본동 지역은 그다지 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명단에 노인들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자세히 나와 있어 취재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노인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당이란
무엇인가? 당원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고 거기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활성화되고 굳건해 집니다. 여기서
핵심은 '자발적 동의에 의한 참여'입니다. 자발적이지 않은 당원가입과 참여는 민주주의와는 상관없고 오히려 정반대로 독재와 폭력의 산물입니다.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고 아름답게 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합니다.
그런데 봉천본동에서 벌어진 일은 민권무시, 민주주의 파괴,
파렴치의 전형을 보여줬습니다. 당비를 몰래 인출해간 자체도 문제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인격과 정치적 선택권을 왜곡하고 무시한 처사입니다.
민주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도 남의 정치적 선택에 개입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인간적으로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피와 땀의 산물입니다.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독재와 싸운 많은 사람들의 희생 속에서 꽃피운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지자체 의원으로 출마하려는 사람이 유령당원 1백 명을 가지고
있다면, 국회의원 지역 경선이나 크게는 대통령 경선까지도 유령당원에 의한 조작투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는 물론
하나의 가정입니다만 지금 이대로라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열린우리당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방송이 나간 뒤 한나라당에서도
똑같이 피해를 봤다는 제보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 한나라당의 책임당원제...취지는 좋지만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 기간당원제, 책임당원제의 폐해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무산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제도를 잘 발전시키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현실 운운 하면서 과거와 같은 퇴행적 정당 활동을 하자는 것은 대중영합적 발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