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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리그, 냉정히 판단해야
런던에
있는 만 4일 동안은 거의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
부끄럽지만 서울로 돌아오기 하루 전날까지 이영표 선수 단독 인터뷰를
제외하곤 취재내용이 너무도 빈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초 예정과
달리 이영표는 런던에 들어왔다가 곧바로 취업허가서를 받기 위해 네덜란드로
기약도 없이 돌아가 버렸고, 덩달아 토트넘 구단 측도 공식 입단식 전에는
감독이나 선수들 인터뷰는 물론 홈구장 취재에도 응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기 때문입니다.
lost in london
박지성 선수가 활약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는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5시간동안 400km를 달려
맨체스터까지 달려갔지만, 박지성 선수가 개인 일정을 이유로 인터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맨체스터 구장과 기념관 기념품
가계 등에 대한 취재를 하긴 했지만, 주인공이 빠지는 바람에 난감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한 영국기자로부터 들은 사실이지만,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공식 행사를 제외한 취재는 거의 한달 전에
요청해도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전체
구단의 한해 매출만도 2조원이 넘는다는 프리미어리그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어서, 선수와 감독은 물론 구장등도 하나의 마케팅 자원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BBC나 타임즈 같은 유수의
언론의 공세에도(?) 쉽게 취재의 문호를 열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점만 언론에 공개하고 나머지는 아예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구단의 이익을 위해서 언론을 도구화하고 있는 셈인데,
영국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마틴 욜과 얼어버린 통역자
그래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었습니다. 완고하던 마틴 욜 감독이 갑자기 마음을 돌렸는지 인터뷰를
하겠다고 구단 고위 관계자를 통해 은밀히 전해왔습니다. (인터뷰를
반대하는 구단의 공식 홍보라인을 배제한 채 조용히 인터뷰를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단 조건은 오후 3시반 까지 팀 훈련장으로 올 경우에
한해서라는 겁니다. 욜 감독은 휴가를 받아 오후 6시면 고향인 네덜란드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틴 욜은 거구의 사내였습니다. 머리는
다소 벗어지고, 어깨가 딱 벌어진 마틴 욜은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네덜란드인이었습니다.
이 때문이었는지 궁금한 게 많다며 하루 종일 기자를 괴롭히던 현지
통역자(교민 대학생)가 정작 감독 앞에서 그만 얼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미리 알려준 질문도 제대로 던지지
못하고 말을 계속 더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물어봐야 하는 저는 답답해졌고, 결국 직접 물어봐야 했습니다.
다행히 그 결과는 흡족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매우 솔직하고 자신감있게 말을 이어간
욜 감독은 자신이 왜 이영표에 만족하는지, 그래서 얼마나 집요하게
설득했었는지를 자세하게 털어놨습니다. 또 이영표의 라이벌로 예상됐던
스웨덴 대표 출신의 왼쪽 윙백 ‘에릭 에드먼’이 자신에게 직접 ‘이영표
때문에 자신이 곤란해질 것 같으니 떠나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털어놨습니다. 또 욜 감독은 히딩크가 자신만큼이나 절박하게
이영표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이영표 영입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올드 트래포드와 화이트 하트레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 그리고 토트넘 홋스퍼의 홈구장 화이트하트레인. 구장 크기는
올드 트래포트가 수용인원 6만7천명으로 화이트 하트레인보다 두배정도
컸지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많은 축구팬들이 매일 구장에 찾아와
일종의 투어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구장내 시설과 기념관등을 관람하는
이 투어는 물론 유료로 철저한 마케팅 정신이 여기서도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념품 가게에서 팔리는 선수들 유니폼은 우리 돈 10여만원일
정도로 만만치 않은 가격인데도 품질은 다소 조악해 보였습니다.
또 한 가지의 공통점은(아마도 모든
프리미어리그 소속 홈구장의 공통점일듯) 이 축구장들을 외국인들은
참 찾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구장들이 무슨 빌딩처럼 생긴데다가, 상당수는
다른 건물들 속에 숨어있어서, 토트넘 구장 같은 경우는 구장을 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고 주변을 빙빙 맴돌기도 했습니다.
켄싱턴 공원에서의 만남
런던엔 참으로 공원이 많았습니다.
또 공원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축구 전문기자인 데일리 메일 신문의 던컨 캐슬을 만난 곳은 바로 이런
공원 가운데 하나인 켄싱턴 공원이었습니다. 영국 종합 일간지들을 뒤져,
이영표, 박지성 관련 기사를 쓴 기자를 골라내고, 이들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부탁했습니다. 캐슬 기자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성사됐습니다.
캐슬 기자는 다소 들뜬 분위기의 한국
언론의 태도와 달리, 이영표-박지성에 대한 분석에 매우 신중했습니다.
그는 이영표가 너무 쉽게 주전을 차지한건 오히려 부담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욜 감독은 이영표에게 너무도 막중한 임무를 맡기려고
하기 때문에 매일 주전으로 나서 수비만이 아닌 공격까지 가담해야 하는
이영표로선 큰 부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박지성의 경우, 퍼거슨 감독이
그를 영입한 의도는 단 한가지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즉 우리 언론에선
박지성이 금방이라도 주전 공격수가 될 것처럼 장밋빛 전망을 내놓으며,
슈팅의 정확성을 연마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는 것과 달리, 퍼거슨은
슈팅의 정확성을 기대하며 박지성을 영입한 게 아니라, 오직 최전방
공격수 후방에서 상대방을 교란시키기 위해서였다며 냉정한 분석을 했습니다.
에필로그
빅리그 입성 자체가 성공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대중지와 달리 권위있는 언론에서는 두 선수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상당수 축구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언론이나 팬들은 두 선수에게 기대감을 표시하곤 있지만, 그건 다소
의례적인 것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의 장밋빛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영표와 박지성이 유럽진출
3년 만에 챔피언스 4강의 주역으로 성공하리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영표와 박지성이 축구의 종가라는 영국에서도 돌풍을 일으키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희망이라도 없다면 너무도 우리
사는 세상이 너무도 건조하고 재미없을 테니까요. 두 선수의 파이팅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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