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적 244호로 지정된 신라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릉은 경기도 연천군 고랑포리에
있다. 몇 년 전에는 민통선 안에 있었는데 민통선이 축소되고 왕릉 주변의 지뢰를
제거한 후 과거보다 유역을 넓혀 지금은 일반인이 자유로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망주석 두 개와 장명등 한 개 그리고 조선말에 세워졌다는 ‘신라경순왕지릉’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6,25 전란 시 총알에 맞은


몇 발의 탄흔을 간직한 채 초라하게 서 있어 이 비석이 없었다면 이 묘가 과연
신라 천년 사직의 마지막을 장식한 왕의 릉이었을까 싶다. 묘 한 켠
에는 비석에 새겨진 명문이 다 지워진 비석이 보관되어 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일인들이
이 묘에 관심이 많아 부장품과 각종 부속 장식물이 거의 다 도굴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왕릉 주변이 미확인 지뢰지대라 왕릉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그래도
경순왕의 그 원혼은 지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호령하던 신라 그 고토를 넘나들고
있을까.

신라가 고려에게 멸망된 뒤 신라 서울인 경주에서 이 지역 사심관으로 임명되어
쫓겨나다시피 이곳으로 이주해와 살았다. 그가 죽은 후 신라 유민의 반발을 두려워
한적한 이곳에 묻히었다는 경순왕.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고려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해
삼베옷(마의)를 걸치고 금강산에 들어가 한많은 일생을 마치었다는 그 유명한 마의태자였다.

신라 천년 영화는 어디로 가고 이곳에 초라히 묻혀 있는 신라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릉을 보며 인생무상을 또다시 느껴본다. 과연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건가. 저 무덤에 한번 묻히면 다 그만인것을 인생 칠십 희노애락을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생각하니 나그네의 마음이 암연히 수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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