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부전선 끝 강원도 북단 고성 땅 고진동, 오소동에 천연기념물 제 217 호인 산양이
살고 있다.
주로 태백산맥 줄기 설악산 및 북한의 금강산에서도 서식하고 있다는 산양은 그
희귀성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멸종 위기종이다. 한 군데에 자리를
정하면 이동하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산양이다. 아침에 눈이 오는
둥 마는 둥 해 이왕 오는 거 왕창 오라고 했더니 안내를 맡은 전방대대 정훈장교가
‘지금 눈 오면 고진동까지 못 올라갑니다 한다.’ 게다가 소초병이 말하기를 길이
미끄러우니 체인을 꼭 치고 올라가라고 대대 상황실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4륜구동차에다
앞뒤 체인을 준비하고 오길 잘했다 싶었다. 옛날에는 전국 3대 사찰 중의 하나였다는
건봉사 옆에 있는 민통선 초소에서 출입 신청을 하고 고진동으로 오를 때만 해도
말로만 듣던 산양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 위로 올라 갈수록
눈이 쌓여 있는데다가 경사가 심해 아찔하다.

자칫 실수해서 차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저 밑으로 낭떠러지 구경을 가야할 판이다.
이곳에 눈이 많이 오면 차가 올라오지 못해 병사들이 만사 제쳐놓고 하루 종일 부식을
지어 날라야만 한다고 한다. 건봉산 꼭대기에 오르니 동해 바다가 아득히 펼쳐
보이고 멀리 화진포가 하얀 얼음을 안고 조용히 누워 있다. 여기가 고진동인가 했더니
이제는 다시 다른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급경사진 길을 내려갈 때마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내장을 쓸어내리며 길 끝까지 가니 녹슨 이중 철책선이 길을 가로
막는다. 여기가 바로 고진동이란다. 철책선 너머로 눈을 씻고 쳐다봐도 산양은
보이지 않고 바위와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들만 보인다.

초병에게 물으니 바로 저 앞에 산양이 있다는 것이다. 산양은 주변 환경과 거의
비슷한 보호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잘 관찰해야지 거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
때문에 놓치기 십상이다. 그때 마침 철조망과 국방색에 익숙한 산양이 대처에서
온 이방인들을 보고 짐짓 놀랐는지 좀체 움직이지 않는 산양 다섯 마리가 서서히
올라가는 게 보인다. 그리곤 양지 바른 풀밭 위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꺾어 먹는다.
개체가 워낙 적다보니 희귀해서 그렇지 매력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산양이다.

아무리 기다려 봐도 마른 나뭇가지를 꺾어 먹는 것 외에는 별 행동이 없어 오소동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가는 도중 지난 68년부터 71년까지 노무현 대통령이 이곳에서
근무했던 부대 앞에 ‘노무현 벙커’라고 이름 지어진 입석이 보인다. 장군들이 역임했던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직을 육군 상병 출신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오소동으로
가려면 고진동으로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 또 다른 길로 내려가야만 하는데 고진동
내려가는 길은 그나마 양반이다.

오소동으로 내려가면서 땀에 찬 두 손을 꼭 쥐고 그냥 돌아가자고 할 걸 몇 번씩
후회하면서 내려가는 수밖에. 드디어 오소동에 도착하자 철책 저 너머에서 다행히도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어미가 나뭇가지를 뜯어먹고 있다. 초소 위에서 촬영하는데
국방색이 아닌 옷 색깔이 신경이 쓰였는지 새끼를 데리고 서서히 능선 너머로 사라진다.
눈이 흠뻑 와야 먹이를 구하러 병사들이 있는 초소 가까이 온다.
가파른 길을 어떻게 다시 올라갈 걱정보다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산양의 눈과
코를 어떻게 클로즈업해서 촬영할까 하는 고민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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