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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58 개띠’인가?
베이비
붐 세대 중 처음으로 80만명이 넘는 인구가 출생한 1958년.
하지만 가장 많은 인구가 태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1959년도에는
출생자가 82만명이 넘었고 그 후로 1963년까지는 계속 80만명이
훌쩍 넘는 인구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오고가는
농담 속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58년 개띠’. 이 관용어구가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개라는
것은 가장 친근한 애완동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욕할
때... 사용하지 않습니까? ‘개같다’ 라는 표현을 거치다
보니 58년 개띠가 유명해 진 것 같고요. (유종일
int)

2.
58년 개띠가 살아온 길
이들은
고교평준화제도로 인해 속칭 뺑뺑이로 고교에 진학한 첫세대이다.
치열한 대학입시를 겪기도 했고 대학시절에는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으로 고통 받던 세월을 거쳐야 하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무시험제가 발표났습니다. 그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던 학생들도 그 무시험 소식 때문에 공부를 놓고
그랬죠. (장철순
int)
이런
이야기 해도 될 지 모르지만 군부독재...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그 아들, 박지만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박지만이
(우리랑) 동갑이거든요. 그 아들을 좋은 학교 보내기위한
정책이 아니었냐 그런 소문들이 파다했죠.
(김동수 int)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이 주도한 5공화국의 공포정치. 하지만
58년 개띠들에게는 절망보다 더 강한 결속감을 가져다주었다.
이 열망은 58년 개띠들이 서른살이 되던 1987년 6월 항쟁
때가 절정이었다. 회사에서 일하던 사원들이 넥타이를 맨
채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이들의 항쟁은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기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밑바탕을 다지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Q.
동료들은 광화문에서 시위하고?
김/
맞습니다
Q.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김/
굉장히 가슴 아팠죠. 사실 그날 기억도 납니다. 보초를
서고 있었어요. 동아일보 앞에서.
(김동수 int)
이들은
마흔살이 되었을 때 IMF를 맞아 조기퇴직과 정리해고의
아픔을 맛봐야했다. 동료 중 반 이상이 정리해고 당하던
시절. 남은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때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상사가 내 눈을 보더니, 야, 사흘
쉬어... 어떤 현상이 나타났냐면 누우면 머릿속에서 조그만
화살들이 몇 십만개가 막 날라다니는 거예요. 잠도 제대로
못자고. 나중에 그 고비를 넘기고 생각해보니까, 그게 조금
더 갔으면 정신병원 가지 않았을까...
(김용선 int)
  
3.
58년 개띠, 나아가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현주소
한번
들어간 회사에 뼈를 묻을 수 있었던 시절. 그들은 회사에
입사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몇은 살아남았고
대부분은 내쳐졌다. 그리고 2010년 현재. 정년을 코 앞에
둔 그들. 하루하루 치열한 전쟁터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저희
사장님이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 둬야겠죠. 근데 그건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저도 준비한다고 하지만 쉬운일은 아니고 짧게
보면 1년? 길게 보면 2년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인성 int)
바글바글하죠..
실직자가 많은지. 사실 우리도 병원을 안가면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다는 걸 못느끼듯이 가보면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게 되니까. 실업자가 돼서 가보니까 정말 많더라고요...지금까지도
궁금해요... 내가 잘못 살아오진 않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예상치 않게 이렇게.. 왜 하필 나일까.
(이의준 int)

경쟁이
치열한 만큼 열심히 살아온 이들.
민주화의
발판이 되었고 오늘의 경제 발전을 이끌어낸 주역.
빠른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했던 이 시대의 가장.
우리는
이들에게 과연 박수를 쳐주고 있을까, 벼랑 끝으로 내 몰고
있을까.
※
1958년 개띠생인 방송인 임백천. 그는 78년도 MBC대학가요제
출신이다. 그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라디오 DJ 겸 MC인 임백천이 '58년 개띠들의 바보인생'
내래이션을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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