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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독일로간 광부와 간호사를 기억하십니까?
MBC스페셜 <독일로간 광부·간호사들
>
방송 : 1부 ( 6/11 밤 11시 15분), 2부 ( 6/12 밤 11시 30분), 3부 ( 6/13 밤 11시 30분)
제작진 : 기획-최우철 / 연출-홍상운 조연출-김준혁 / 구성-한숙자 / 촬영-한대웅 / 취재-김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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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역만리 낯선 땅으로 떠났다.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잠깐 들러 이마에 주름살이 느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파독 광부, 간호사들...
아직도 독일 땅에는 수천 명의 광부 출신 동포들이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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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독 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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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이종
(교수) : "광부는 내 인생 최대의 전환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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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에 핀 진달래꽃과 나무껍질을 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겼던 청년 권이종. 그의 학창시절은 언제나 성적표 보다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그러던 그에게 독일광부 모집이라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리고 40년 뒤... 꿈 많은 시골 청년은 차관이 되어 돌아왔다.
‘교수가 된 광부’ 출간 준비중... |
| 정용기
(마지막 광부) : "독일에 남은 마지막 한국인
광부, 정용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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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청년들에게 “독일 광부 모집”은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그렇게 만여 명의 한국인 청년들이 독일로 떠났지만 독일의 광산업이 점차 바닥으로 치닫자, 광산은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5년 전만 해도 60~70명이던 한국인 광부가 이제 단 한 명! 정용기씨 뿐이다. |
| 이명한
(발관리사) : "어머니의 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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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끓는 청춘. 독일 광산으로
떠난 한국인은 8천 여명.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과연 이 사람들은 뭘 하고 있을까?
긴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청 자켓을 즐겨 입는 이명한씨.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로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데...
그의 직업은 발 관리사다. 울퉁불퉁 못생긴 독일 노인들의 발에서 그는 돌아가신 어머님을 느낀다. 그의
따뜻한 손길에는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의 향수가 묻어나는데... |
| 이원명 :
"나는 이방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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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의 낭만 대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막장생활을 선택한 이원명. 집에 송금도 하며 열심히 독일 생활을 하던 중 고운 한국 간호사를 만나 결혼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행복한 시간은 딱 1년이었다. 힘든 간호사 생활로 인해 부인이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40년. 그는 아내를 지켰다.
꿈에도 잊지 못하는 조국에 돌아 갈 수 없는 형편. 아흔이 다 되셨을 어머니는 아직 살아계실까? 그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독일에서 살아야만 하는가... |
| 김치연 (귀국/폐암) :
"꿈에도 그리던 고향의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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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그토록
그리던 고국 땅으로 돌아온 김치연씨.간호사였던 아내와 함께 아름다운 장미정원을 꾸미고, 오랜만에
평온한 고향에서의 봄을 마음껏 즐기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오랜 타국생활로 인한 피로와 강도 높은 막장에서의 노동으로 지치고 병든 육신만 남아 있었다.
폐암을 앓고 있던 그는 응급실로 실려가는데... 김치연씨는 고향의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
| * 파독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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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금희
: "인생 탈출구 독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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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의 설움을 모르는 부잣집의
말괄량이 소녀. 그녀는 항상 조국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좋은 반찬은 항상 오빠가 먼저인가? 왜 자전거는
남자들만 타야 하는가?” 여자이기 때문에 안되는 조국이 답답했다. 자유를 찾아 독일로 떠났다.
조국의 답답함이 싫어서 독일로 떠났지만, 여전히 그녀는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고, 우리가락을 신명나게 연주하며
한국적인 것에 젖어 산다. |
| 이민자
(이비인후과 의사/베를린) : "독일에서의 생활은
투쟁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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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부푼 꿈을
안고 독일로 떠났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한국 간호사들의 주 임무는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 내거나, 100kg이
넘는 환자들의 목욕을 시키는 일이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무시당하는 간호사가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독일인도
하기 힘들다는 의과공부를 시작했다. 정신병자로 몰리고, 엉덩이에 진물이 날 때까지...
의사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야했던 그녀의 독일생활은 투쟁이었다. |
| 박경옥
(귀국) : "저도 외국인 노동자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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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독일에 돈을 벌러간
꽃다운 청춘! 말도 통하지 않은 낯선 땅에서 외국인이기 때문에 당했던 서러움도 많았다. 우리나라에 돈을 벌러
온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40년 전, 독일로 떠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박경옥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녀는 40년
전 자신의 처지와 너무도 같은 외국인 노동자의 아픈 곳을 돌봐주며, 가슴속 상처까지 치료해 주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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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한마디 게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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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16(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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