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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리아 드림팀, 최초로 미식축구 월드컵 본선에 오르다!
2007년
7월.
한국에서
아시안컵 예선 열기가 연일 보도되고 있을 때, 일본 가와사키에는 한국을
위해 싸우는 또 다른 태극전사들이 있었다.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미식축구 월드컵을 위해 14명의 자이니치 선수와 30명의
국내 선수들이 코리아 대표팀이라는 이름하에 뭉친 것이다.
과거
일본에 88 대 0으로 패한 부진했던 한국이 2007년 1월 예선전에서 호주를
22 대 13으로 꺾고 결승을 목표로, 바로 이곳 가와사키까지 돌진한 것이다.
본선에
참가한 6개국 중, 가장 낮은 성적과 본선 진출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뒤로하고, 코리아 대표팀의 혹독한 훈련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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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전에서 승리한 후 ▲
2007년 1월 27일 한국VS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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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가와사키 미식축구 월드컵을 대비한 훈련
2.
다른 문화, 다른 언어 … 하지만 우리는 한국인이다.
가와사키를
향해 달려온 코리아 대표팀의 상황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1인당 3만원하는
민박집에서 미식축구 월드컵 개막식 전까진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내야
한다. 게다가 숙소비는 물론 비행기삯까지 모두 선수들 개인이 부담하며
이곳까지 온 것이다.
이들이
선택한 건 열악한 환경뿐만이 아니다. 문화적 차이와 언어소통의 불편함과
동시에 꼴찌꼬리표를 단 코리아 대표팀이다.
자이니치
선수 중에는 일본 대표팀으로 뛰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의 탄탄할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자이니치 선수들은 그 동안 자신을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며 ‘나의 나라’에 대한 긍지도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자이니치들이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나의 나라’,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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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유니폼을 든 김태범 ▲
머리에 KOREA ‘K'를 새긴 김성재
3.
2007년 7월 8일
코리아
연합군의 전쟁은 시작됐다!
독보적인
체력을 겸비한 독일과의 첫 경기!
코리아
대표팀은 한국을 대표해 싸울 채비를 마쳤다. 코리아 대표팀의 최종목표는
단연 결승전이다. 한국을 제외한 본선에 진출한 5개국은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스웨덴의 쟁쟁한 실력을 갖춘 팀들이다.
한국은
본선에서 미식축구의 종주국 미국과 산처럼 커다란 체격을 가진 독일과
싸워 이겨야만 결승에 올라갈 수 있다. 강한 상대국과의 시합을 앞둔
대표팀의 분위기는 빨리 뛰고 싶은 흥분과 긴장이 교차하고 있었다.
“나는
나라를 위해서라면 여기서 죽을 각오도 있습니다. … 실제로 집으로
돌아가는 신칸센 티켓도 아직 사지 않았습니다. 살아서 돌아갈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일본
가와사키 구장에 들어선 14명의 자이니치 태극전사는 이제 막 알게 된
‘나의 나라’ 한국을 위해 뛸 준비를 마치고, 시작휘슬이 울리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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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가와사키 미식축구 월드컵 대표팀 활동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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