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스페셜 신년기획 - 리더십 제1부 <덩샤오핑-작은
거인, 중국을 깨우다>
(연출 김환균)
1월 1일(일) 밤 11시 30분 방송 (상) 1월 8일(일) 밤 11시 30분 방송 (하)
▶ “샤오핑, 니하오!”
“샤오핑, 니하오! (샤오핑, 안녕하세요!)” 1984년 국경절, 삼군을 사열하는
지도자 덩샤오핑에게 주어진 최고의 찬사였다. 소박하지만 무한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 친근한 인사였다. 1997년 2월, 덩샤오핑은 평생 숙원이던
홍콩 반환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그를 향한 대중의 사랑은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지난해의 국가 행사에까지 이어졌다. 그들이 덩샤오핑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다”
덩샤오핑은 실사구시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모두가 함께 가난해지는 것이 사회주의의
바람직한 실현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건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시작이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방식만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간주되었던
경쟁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사회주의의 생산성을 증대시켰다. 인민들은 능력에 따라
부를 축적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자연히 사회주의 국가 중국도 경제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흑묘백묘(黑猫白猫)”,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덩샤오핑의 말은 어떤 사상을 이용하든 가난하지 않은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이룩하겠다는 의지의 대명사가 되었다.
▶ 세 번 쓰러지고 세 번 일어서다.
덩샤오핑의 드라마틱한 정치 역정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마오쩌둥과의 관계다.
당시 중국의 권력을 쥐고 있었던 마오쩌둥은 덩샤오핑을 세 번이나 버렸지만, 결국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덩샤오핑에 대해 계속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덩샤오핑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실무에는 덩샤오핑 같은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권력승계는
생과 사의 투쟁 속에 이루어졌지만, 덩샤오핑은 결국 살아남았고,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종식시켰다.
덩샤오핑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했을 때 마오는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거였지만,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이기도 했다. 대약진,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중국에 대기근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마오쩌둥이라 할지라도, 그는 봉건주의 국가를 신 중국으로
재탄생시킨 건국자였다. 그에 대한 부정이 곧 중국이라는 나라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을 국가적 영웅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정치 경제적으로
겪은 과오에 대해서는 비판했다.
▶ “돌을 만지면서 강을 건너라”
1979년, 중국은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천윈을 위시한 보수파는 사회주의 체제의 전복을 우려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자신의 권력이 위협받을만한 상황에서 덩샤오핑이 쓴 방법은 “돌을 만지면서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우선 일부 지역을 서서히 개방하면서 조심스레 상황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오 시대와 같은 급진적 변화 속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덩샤오핑은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자유 경쟁으로 부유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열의에 보수파의 주장은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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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리더십> 포토갤러리
2005/12/21(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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