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획의도
오는
11일이면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지 4주년이 된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가 이라크에 존재하지
않음이 드러나고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전쟁의 양상은 바뀌고 있다. 이라크에 참전
명령을 받았거나 참전했던 미군들 중 전쟁을 거부하고 탈영한 미군수가 지난 5월,
5천여 명을 넘어선 것. 이들은 왜 탈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나? 그들이 이라크에서
보고 겪은 것은 무엇이었나?
본
프로그램에서는 전쟁거부 후 캐나다에서 난민 지위 신청을 한 미군 탈영병을 만나보고
그들의 증언과 사례를 통해 전쟁이 개인에게 미친 상흔이 무엇인지, 조국의
명령을 뛰어넘는 양심의 자유와 개인의 선택에 대해 살펴본다.
4. 주요내용
미국
여론의 축소판,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

8월
6일부터 한 달 가까이 전 세계의 이목은 미국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에 집중되었다.
지난 4월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은 미군 케이시 시한의 어머니인 신디 시한이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선 것. 신디 시한은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구호를 외쳤고, 그녀의 1인 시위는 일파만파로 퍼져
전국의 반전주의자들을 크로포드 목장에 모았다. 한편 길 건너편에는 부시 지지자들이
“신디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들은 “신디는 적들을 이롭게 하고
있다”며 “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크로포드
목장 앞 반전주의자들과 부시 지지자들의 대립을 통해 9.11테러 이후 미 국민들의
변화하는 이라크전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고 전쟁의 부당성이 부각되고 있는 최근,
미군 전쟁거부자들의 ‘선택’을 통해 이라크전을 바라본다.

미군
전쟁거부자들의 생생한 증언!
*
그들의 증언 1 - 우리는 민간인들을 죽였다
2004년
이라크에 참전했다가 탈영한 데럴 앤더슨은 미군이야 말로 이라크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초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미군들이 정해 놓은 경계선을
넘는 이라크 차량은 무차별 발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차 안에 가족들이
타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 명령을 거부했다. 그러자 상관이 와서 “다음번에는 총을
쏘던지 아니면 니가 처벌을 받던지 둘 중 하나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 후 데럴은
처벌을 받았다.
데럴은
실제로 9.11테러 이후 미군들이 무슬림에 대한 공격을 당연시 여기고 있어 민간인
학살에도 거리낌이 없다고 한다. 오늘도 이라크에서는 미군들의 정지 명령을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모르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
그들의 증언 2 -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한 것은 이라크가 아닌 미국!
2003년
1월 28일 부시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언급하며 후세인의
무장해제를 강요했다. 후세인은 망명하지 않았고 이를 빌미로 미국은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1년 6개월 후 미국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취재진이
만난 카일과 지미 매시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방사능 무기인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집 한 채를 순식간에 날려버리고, 물과 땅을 오염, 기형과 불임,
암과 백혈병을 유발시키는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미국이 유일하다.
그리고 2003년 3월 28일, 미 국방부도 열화우라늄탄 사용을 시인했다. 결국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한 것은 미국이었다.
그들은
왜 캐나다를 선택했나

이라크
탈영병들이 캐나다를 찾기 전부터 캐나다에는 미군 탈영병들이 있었다. 40년 전 베트남전쟁에서
탈영한 5~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당시 미군들은 ‘군사주의로부터의 피난처’인
캐나다로 가기위해 국경을 넘었다. 현재 그들은 이라크전 탈영병들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다. 이제는 캐나다에서 정착된 삶을 살고 있는 베트남전 탈영병들은 이라크전과
이라크전 탈영병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4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미국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전쟁거부자들의
투쟁, 그리고 미래
현재
캐나다에서는 10여 명의 미군 탈영병들이 난민 지위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낙하산병이었던
제레미 힌즈먼 역시 난민 지위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말 캐나다 이민난민심사위원회는
‘불허’라고 판정을 내렸다. 항소를 준비하고 있는 힌즈먼이 또 다시 난민 지위를
거절당하면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취재진이
만난 미군 탈영병들은 모두 지하방에 살고 있었고, 가난했고, 삶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이 여전히 이라크에 남아 있었다면 두 다리를 뻗고
편히 잠들 수 없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들은 ‘떳떳한 불편함’을 선택했다. 세계
일등 국가의 국민이기를 거부하고 당당한 불법체류자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의 모습을 통해 양심의 자유를 위해 조국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보고, 9.11테러 이후 4년 이라크전을 새롭게 조명해 본다.
2005/08/2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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