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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주년 특집 한일공동기획 <해방둥이 패전둥이>

1. 프로그램 명

                

                


 

2. 방송일시

 

제1부  2005년 8월 28일
    밤 11시 30분 ~ 12시 25분 (55분)
 

제2부  2005년 9월  4일
    밤 11시 30분 ~ 12시 25분 (55분)

 


3. 기획의도


식민지 수탈로 인한 궁핍을 유일한 유산으로 물려받고도 일본만은 넘겠다는 의지로 압축성장의 주역이 된 한국의 해방둥이. 그리고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일본을 끌어올린 패전둥이. 해방둥이와 패전둥이가 양국의 주요한 성장 동력인 전자 산업에서 펼치는 치열한 각축전을 살펴보고, 미래지향적인 양국의 경쟁 관계를 전망해 본다.
 


4. 이 프로그램의 흥미로운 포인트


- 해방둥이, 패전둥이가 말하는 양국의 60년과 기술 개발에 얽힌 비화

- 한국에서 근무했던 일본인 기술자들이 말하는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한국 기업

- 세계 최초 CD를 개발한 나카지마 헤타로 등이 밝히는 일본인 특유의 기술에 대한 고집

- 일본 도시바 니시무라 회장, 산요의 이우에 회장 등 일본 경제계 거물들이 털어 놓는
   한국과의 기술 협력, 그리고 일본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한국 경제와 삼성전자

- 삼성전자 최고 경영자들(부회장 2명, 각 사업부문 사장 5명)이 말하는 일본과 한국

- 한국 1945년생(해방둥이)들에 물은 대일 의식 변화(설문 조사)


 

5. 주요내용


2005년 소니가 한국의 기업과 손을 맞잡고 대형 텔레비전용 액정표시장치(TFT-LCD)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부품의 공급처와 수급처의 안정적인 확보라는 양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 이 같은 제휴의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불과 30여 년 전, 흑백 텔레비전조차 만들지 못했던 우리 기업에 텔레비전의 대명사 소니가 손을 내민대는 그 이유가 있었다.

 

1부

해방둥이 VS 패전둥이

한국의 1945년생 ‘해방둥이’에게 남겨진 유산은 식민지 수탈이 낳은 궁핍이 유일한 것이고, 전쟁과 독재를 거치면서 그 궁핍의 크기는 줄어들 줄 몰랐다. 그들이 성년이 되던 해(1965년)에 한일협정이 체결되었다. 굴욕적인 외교라는 생각이 들어 반대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때부터 한국의 해방둥이들은 경제 개발의 최전선에 서게 된다. 반면 일본의 1945년생 ‘패전둥이’는 불과 열 살 무렵 아버지들로부터 ‘이제 전후가 아니다’라는 자신있는 선언을 듣게 된다. 궁핍을 벗어난 패전둥이에게 주어진 역할은 세계 중심의 일본 경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일본재건과 삼종신기 (三種神器)

1956년 일본은 경제백서를 통해 ‘이제 전후가 아니다’라는 호언을 한다. 패전을 했지만 수백만의 이공계 인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고, 수년간의 전쟁을 자력으로 치렀던 기술력이 기본적인 바탕이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일본재건”이라는 기치로 소니와 같은 전자 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은 일본의 전후 극복에 가장 극적인 사건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결국 거기서 벌어들인 외화를 바탕으로 일본 역사상 최대의 호황이라는 신무경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각 가정은 ‘삼종신기‘라고 일컬어지는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를 갖게 되기에 이른다.


“그 땐 백지상태였죠”

“기술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외국 회사하고 기술제휴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해서 미국 구라파 여러 회사들을 접촉을 했습니다만은 전부 거절 당했습니다.”

백지상태의 한국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외국 기업과의 기술제휴였고, 그나마도 일본 내에서 경쟁력을 잃으면서 해외 생산기지를 찾던 회사들과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 합작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DEAD COPY (데드카피)

“세트를 분해해서 데드카피 하는 거죠” 일본이 한국을 생산 기지로만 활용하고자 했지만 한국의 기술자들은 어떻게든 일본의 기술을 배워 일본을 넘고 싶었다. 그 첫 걸음이 무조건 분해해서 똑같이 만드는 것이었다. 때로는 개인적인 친분으로, 때로는 읍소해서 기술을 얻어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기초 기술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이해 없이 베끼는 것만도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2부

학생, 선생을 추월하다?

2000년대 초반, 반도체 사업에서 성과를 내던 한국의 삼성전자는 2005년 소니를 제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되어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2002년에는 시가총액 규모에서 소니를 앞질렀고, 2004년 순이익 규모에서 압도했으며, 결국 2005년 브랜드 가치에서도 소니를 누르게 되었다. 그밖의 여러 전자 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련의 이런 흐름 속에서 외신들은 “학생이 선생을 추월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원인과 전망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해방둥이 기술자 중 한 사람은 소니를 비롯한 일본 전자업체들의 기술을 보면서 “넘지 못할 벽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 촉발한 급격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은 기초 기술(아날로그 기술)이 부족했던 한국의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디지털 기술이 속도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한일 양국의 전문가들은 공감하고 있고 한국의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소니는 자국내 업체들에게 유아독존이라는 비판까지 얻어가며 자기 기술에만 집착하고 협력을 꺼려해 결국 자신들이 필요할 때 협조를 받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일본은 아직 죽지 않았다!!

“최근 한국 기업의 좋은 성과는 시대의 흐름” 한 때 미국이 그랬고,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때가 되어 그렇게 된 것이라는 일본 전문가의 지적과 함께, 일본의 전자 산업은 튼튼한 기초가 있기 때문에 곧 부활할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실제로 일본의 샤프社는 대형 액정 텔레비전 분야에서 부동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전을 하고 있는 소니 역시 음악, 영화, 게임을 아우르는 콘텐츠를 확보하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적과의 동침

21세기 오늘날 기업과 기업의 경쟁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직 세계 시장에서 제품 간 경쟁이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기술과 제품을 필요한 파트너와 함께하는 것이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여전히 여러 분야에서 한국보다 앞서있는 일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협력을 하는 것이 서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2005/08/22(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