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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가요시상 논란에 대해 / 글:임진모

연말 방송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가요대상 시상식 결과를 놓고 시끄럽다. 주지하다시피 그 발단은 SBS와 KBS에서 최고가수로 이효리를 선정한 것 때문이다. MBC는 이효리 대신 '79클럽의 동료'인 이수영을 꼽아 네티즌과 팬들의 비판에서 살짝 비켜갔지만, 일각에서는 '과연 이수영도 2003년 최고가수라고 할 수 있느냐'며 회의적 시선을 내비치고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효리가 아무리 지난해 스포츠신문의 1면 헤드라인을 단골로 장식하면서 가요계 특급 화제를 독점, 양산했지만 '그렇더라도 방송사가 최고가수로 선정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하자면 최고 엔터테이너라면 몰라도 최고 뮤지션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효리의 히트곡 '텐 미니츠'와 솔로 앨범은 평단과 팬들로부터 '재미없는 졸작이며 이효리의 목소리는 너무 심심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앨범 판매량도 스포츠신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1면 기사를 장식한, 압도적인 미디어 커버리지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15만장 선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효리가 노래 못하는 것은 참겠는데, 춤까지 못 춘다'며 비아냥대는 의견도 나왔다.

과연 이효리 선정이 잘못된 것일까. 이 점을 의문으로 띄우고 한번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내가 방송 가요담당자였다면 누구를 뽑았을 것인가?' 굳이 골라야 한다면 아마도 나 역시 이효리에 손을 들어줬을 것 같다.

방송가요부문으로 한정하고, 2003년을 결산했을 때 다른 대안의 인물이 언뜻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수영을 택한 MBC가 도리어 이상해 보인다. 이수영이 좋은 발라드가수이고 뛰어난 활약은 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와 그의 '덩그러니'를 2003년의 베스트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팬들은 그래도 방송사의 이효리 선정이 심하다고 생각한다. 반론 중에는 과거 80년대의 조용필이 연말 가수왕을 싹쓸이하고 90년대에 서태지, 김건모가 최고가수가 됐던 것과 비교한다면 과연 이효리를 그 인물들의 위상에 견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국내 가요계는 주류 음악인들이 전부였다. 주류가수 중 뛰어난 능력을 보인 인물이 최고가수로 직결되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는 국내에도 비록 지분은 적더라도 서구처럼 비주류가 정서적 측면에서는 급부상했다.

방송가요는 그리하여 주류와 비주류를 포괄하는 전체가 아닌, 주류만을 선전하는 '부분'으로 축소된 감이 있다. 방송을 무대로 활동하는 가수 가운데 인기정상이라고 대표성을 부여받기 곤란하게 된 것이다. 이효리를 선정한 게 포만감을 주지 못하고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전한 대표성을 띠려면 방송이 비주류까지 통괄해야 하는데, 우리 방송실정에서 아직 그것은 힘든 일이다. 방송에서 가요순위프로가 없어지고 가수의 무대가 방송국이 아닌 공연장으로 옮기는 상황이 정착된다면, 방송의 연말 시상식도 저절로 의미가 사라질 것이다. 이게 가장 바람직한 그림이다.

그러나 방송 연말시상식이 오랜 역사를 쌓으며 시청자의 연말 주요 놀이문화 중의 하나로 인식됐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12월 말이 되면 안방의 시청자들은 '올해 최고가수는 누가 될까?'하는 호기심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그 점에서 연말가요대상 프로그램의 폐지는 아무리 자주 대중적 관심의 도마에 올라도 막상 실현될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도 그 포맷이 지속된다면 방송은 어차피 방송에서 활동한 가수를 중심으로 정리해 시상식을 꾸릴 게 분명하다. 2003년 그래미상에서 신인 여가수 노라 존스가 주요부문을 휩쓸며 일약 주목할 뮤지션으로 부상하는 상황은 불가능하다.

해결책은 방송 연말시상식은 방송대로 놔두고 다른 새 연말 시상식 모델을 찾는 것이다. 바로 미국의 그래미상처럼 방송을 비롯한 주류 매체와는 완전히 독립된 음악계 주도의 시상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방송처럼 '정리'만이 아닌 노라 존스의 예에서 보여주듯 '비전'도 제시하는 시상식을 주조해낼 수 있다.

연말 음악대상이 던지는 의미망은 그처럼 한해를 결산하면서 앞으로 활약이 기대되는 유망주를 부각하는데 있다. 우리 방송의 연말대상은 그래미상과 같이 과감하게 기대주를 최고로 밀어붙이기가 힘들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이번 가요대상 논란의 핵이라고 할 '공정성'은 자연스레 포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해 음악계의 흐름을 충실히 고찰하고, 그해 발표된 앨범들을 상당수 접한 음악전문가들이 모여 공정하게 심사하는 그런 시상제도를 만드는 쪽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주최는 그 전문가들에 의한 순수한 모임 또는 협회로 충분하다. 아무래도 이리저리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주류 매체가 나서면 공정과 객관을 유지하기 어렵다. 다만 방송PD와 신문기자가 개인자격으로 그 모임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

어차피 '부분'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방송에 아무리 질러봐야 이상적인 연출을 목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지상파 방송3사가 통합해 연말 시상식을 꾸리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음악계 인사들과 그 단체가 주도하는 순수 시상제도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달리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래야 이효리를 방송에서 최고가수로 포상해도 '너그러워지는' 환경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