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 글짱 in 라디오 > 컬쳐 91.9
 
  조회:
좋은 생각을 그리는 사람 만화가 박광수 / 글:박미경

신뽀리와 만화가 박광수|||||||||||||||||||||||||||||||||||||||||||||||||||||||

'나 몽둥이…'라고 쓰인 길다란 각목 그림이 있다. '선생님 절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다음 장면에는 이쑤시개가 그려져 있다. '어쩌면 선생님이 노력해주셔서 몽둥이 녀석을 깎고 또 깎는다면 이쑤시개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그 이쑤시개로 당신과 제자 사이에 마치 이빨에 끼인 고춧가루 같은 묵은 감정들을 모두 다 빼주십시오. 그래도 당신이 어른이지 않습니까?'

'그 애들에게 한번뿐인 인생, 사랑으로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라는 제목이 붙은 <광수생각>이다.

 생각해보면 광수생각이 꼭 그랬다. 아이들의 전유물 정도로나 여김 받으며 주류문화 뒤켠에 밀려나있던 만화라는 '각목'을 섬세하게 깎고 다듬어서, 그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덮고 있던 더께를 건드렸다. 건드려서 그 속에 들어 있던 말랑하고 따뜻하고 촉촉한 것들을 되살아나게 했다. 사랑, 가족의 가치, 행복, 꿈 같은 것들 말이다. 위의 광수생각을 보고, 교실에 두었던 '사랑의 매'라는 이름의 몽둥이를 없앴다는 선생님 이야기나 그의 만화에 등장했던  '들꽃반'(에어컨 시설이 갖추어진 좋은 환경의 명문대 반을 제외한 나머지 반들)이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떠올랐던 것이 그 증거다.

 '광수생각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소재를 스스로 생각해낸 것은 아니에요. 학창시절 썼던 일기장을 들추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 이야기나 TV, 라디오, 인터넷을 통해서도 얻습니다.'     

 무가지 <페이퍼>에 간간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눈에 띄던 만화 캐릭터 '신뽀리'가 조선일보에 전격 기용된 것은 97년. '바퀴벌레 퇴치법'을 주제로 한 작품을 통해서였다. 바퀴벌레 중 '말 많은 놈'을 붙잡아 사흘 밤낮을 고문한 뒤 풀어주면 풀려난 바퀴벌레는 자신의 고초를 동료들에게 말하고, 사실을 전해들은 동료들은 모두 겁을 먹고 옆집으로 간다는 내용이었다. 이 '황당한' 만화를 시작으로 뽀리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더불어 그 만화 밑에,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신뽀리를 주인공으로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펴는 중. 나이는 29세'라고 간략하게 소개되었던 무명의 만화가 박광수의 이름 역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설가 마광수 혹은 영화감독 박광수일 것이라고 더 양명한 이름들로 인한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이내 웬만한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안다고 해도 좋을 '국민 만화가' 박광수가 된 것이다.

 

라디오에 관한 '광수생각'|||||||||||||||||||||||||||||||||||||||||||||||||||||||

'중고등학교 시절 제일 가까웠던 게 라디오였지요. 당시만 해도 TV는 마루에 두고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거였잖아요. 근데 라디오는 밤에 공부하는 척 이어폰 끼고도 듣고, 이불 속에서도 듣고. '별밤'을 포함해서, 당시에 듣던 프로그램들의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있어요.'

광수생각을 보면 '얼음땡', '오재미', '찜뽕'과 같은 어린시절 놀이에서부터 '달고나'와 '쫀득이'같은 먹거리까지,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들에 대해 유난히 유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디오를 이야기할 때 그의 표정이 꼭 달고나와 찜뽕을 이야기할 때처럼 개구져진다.

'사실, 그림을 그리게 된 직접적인 동기도 '라디오'였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라디오 프로그램에 노래를 신청하거나 사연을 소개받으려면 엽서에 적어서 보내야했는데, 그때 방송국에서 정성이 많이 들어간 예쁜 엽서들을 뽑아 상을 주었다. 바로 그 'MBC 예쁜그림엽서전'에, 그는 친구들의 이름까지 빌어서 여러 장의 엽서를 보내곤 했다. 비록 MBC엽서전에서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 아류로 한 제과회사에서 했던 예쁜엽서전에서 대상을 타서 '빵을 평생 공짜로 먹을 수 있는' 포상을 받았다.

 또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라디오 방송국을 연애의 '전파매체'로 삼기도 했다. 마음은 혼자 짝사랑했던 그녀들을 향해, 주소는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해서, 그는 자주 'K'라는 익명으로 엽서를 보냈다. 비록 그 대상에게 사연이 직접 가 닿지 않더라도, 세상을 향해 고백함으로써 마음 한 귀퉁이에 환기창을 내었던 것이다.

 만화가 지망생시절, 한번은 가수 양희은씨를 무작정 찾아가 재킷 디자인을 해드리겠노라 우긴 일도 있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라디오 때문이다.

'라디오를 통해서 자주 듣다보니, 양희은씨가 너무 친숙한 거예요. 그 재킷 디자인을 꼭 해드리고 싶었지요. 그래서 무작정하고 찾아가 떼를 썼으니… 결국 디자인을 하게되었는데, 비록 비정규앨범이었지만 저에게는 좋은 추억이지요.'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라디오와 가깝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정과 정성이 더 많았던 것 같다며 즉석에서 나름의 '광수생각'을 펼쳐 보인다.  

 

그가 열중하는 두 가지 일|||||||||||||||||||||||||||||||||||||||||||||||||||||||

 현재 그는 두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도 같다. 하나는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 대해 궁금해하는 150문150답'을 책으로 묶는 일이나 '조마조마'란 이름의 축구동호회 활동에 푹 빠져 있는 게 다 그 일이다. 오늘도 조마조마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날인데 친구 중 한 명이, '재미있게 살려고 계획을 세워요. 별다른 게 없으면 괜히 지하철 앞 칸에서부터 끝칸까지 걸어다녀요. 재미있을려구요.' 라며, 만화가 박광수가 뽀리보다 더 만화주인공 같은 사람임을 들려준다.

 또 한가지는 물론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광수생각이 단행본으로 묶이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스테디셀러 같은 그림을 꾸준히 그리는 것이 그의 목표다. 저 먼 옛날 환초도인(還初道人)의 어록이 지금까지 읽히듯이, 자신이 한 때 들었던 별밤지기의 프로가 아직도 그 이름을 이어가듯이,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될 '좋은 그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