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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7월 29일 새벽 1시 30분, 그림을 위해 생을 바치고,
자신의 이성을 반쯤 잃어버리면
서 까지 그림을 사랑했던 자의
마지막을 알리는 총소리가 검푸른 하늘을 울렸다. 빈센트 반
고흐, 100년이 훌쩍 넘은 21세기에도 그에 대한 호기심어린
시선과 관심은 그의 그림보다
엽기적인 삶의 한 단편에만 머문다.
자신의 귀를 자르고, 권총 자살을 한 미치광이 화가 고흐.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에 대한 풍문은 수십 가지의 오해를
낳기도 했다.
생애 총 열 한 점의 해바라기를 그린 그가 노랑색에
집착한 나머지 "노랑색만큼 높은 음을 듣고 싶어"귀를 잘랐다는 둥, 자신의 그림을 혹평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니 귀를 자르라는 이명이 들렸다는 둥, 자신의 자화상을 얼마나
정확히 잘 묘사했는지 확인시켜주기 위해 귀를 잘랐다는 등등, 고흐의 인기에는 이런
스캔들 같은 뒷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다. 그는 정말 미쳤던 것일까?
1853년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난 고흐는 어린시절부터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
다. 순종적이지 못하고 고집이 센 성격은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고 그의 외로움은
자신을 자꾸 더 신경질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했다. 그러나 고흐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언제나 있었다.
●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던 고흐는 심심하면 홀로 마을길을 따라 걸으며 하늘을 나는 새의
움직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새둥우리 등을 관찰하기를 좋아했다. 그의 모든 뇌파는 자
연의 속삭임과 별들의 색을 감지할 수 있었고, 그의 영혼은 바람의 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감수성이 예민했다. 그가 동생들이나 사람들과 다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그의 이런 거미
줄같이 섬세한 감성의 현이 무시되거나 잘못 건드려졌을 때였다.
● 고흐의 그림엔 알 수 없는 열기가 느껴진다. 마치 열에 들뜬 사람처럼 휘몰아치듯 그리
는 그의 화풍은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마그마가 끓을 대로 끓어올라 당장 터져버
릴 것 같은 활화산의 에너지가 감지되는 그림들. 고흐 그림의 이런 '열기'에 대해 고갱은
"마치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그린 것 같아. 자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금방
터져 버릴 것처럼 흥분된다"고 말했다. 고흐의 그림을 곁에 두면 며칠 안가 미쳐버릴 거라
는 고갱의 말은 결국 진실이 되고 말았다.
●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오로지 그림에만 매달렸으나 고흐의 그림은 전혀 팔리지 않
았다. 뜨거운 태양을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아를르로 간 고흐는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으
로 하루 한 잔의 커피에 마른 빵 한 쪽을 적셔 먹거나 그나마도 없는 날이면 술과 담배로
허기진 배와 외로움을 달래야 했다. 아를르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모자도 쓰지 않은 채 하
루도 빠짐없이 그림을 그리는 그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빨간 머리 미치광이'라고 놀려댔
다.
● 이 시기에 최초의 발작이 일어나고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의 평전에 의하면 고흐가 가장 좋아했던 아를르의 노란집에서, 고갱과 동거를 시작한 고
흐는 다른 사람을 비꼬길 잘하고 놀리기 잘하는 고갱과 잦은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고흐가
존경하는 밀레를 헐뜯고, 고흐의 그림마저 가혹하게 비판하길 서슴치 않는 고갱의 태도는
기쁨과 슬픔의 굴곡이 심했던 고흐의 정신을 더욱 팽팽하게 당겨 놓았을 것이다. 결국 고흐
의 자화상의 귀가 잘못 그려졌다는, 고갱의 지적을 참지 못했던 고흐는 자신의 귀와 그림
속의 귀가 꼭 맞음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자신의 귀를 자르게 된 것이다. 당시 고흐는 뜨거
운 태양아래서 오랜 시간 작업을 한 탓에 머리가 무겁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고갱을 존경하고 그의 스케치를 닮고 싶어 했던 고흐에게 고갱의 혹평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 귀를 자른 이후 고흐는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신의 자화상 두 점을 그린다. 비평가들
은 엽기적인 일을 벌인 후 그린 자화상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자화상에서 집중력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 이 사건 후 고흐의 그림에 태양의 춤이 시작된다. 그의 그림은 타오르는 불빛의 폭발과
같은 불꽃으로 형태가 바뀌어갔고, 태양빛 앞에서 나무도 불을 뿜고, 보리밭이 바다처럼 출
렁였다.
● 첫 번째 발작 이후로 고흐는 자신의 정신이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
게 되고 스스로 생 레미 정신병원에 들어가 그림을 계속 했다. 그곳에서 최후를 맞기까지
그는 '삼나무와 별이 빛나는 밤', '두여인과 삼나무','의사 가세의 초상','까마귀가
나는 보리밭' 등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을 완성시킨 후 테오에게
보낼 편지(보내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가지고 있었던)에 그는 "무서운 죽음이 보리밭 위를
가로질러 검은 까마귀처럼 다가오는 것 같다"고 서술했다.
이제 그림 그릴 힘을 다 소진해버린, 이제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같은 서른 일곱
의 나이에, 고흐는 이만하면 살만큼 살았다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
긴 것이다.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발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맞
이한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고흐가 죽기 바로 전 '붉은 포도원'이 400프랑에 팔렸다.
비로소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 고흐가 화가로서 살았던 시기는 단 10년. 그 10년 동안 유화 800여점과 연필 스케치 900
여점이라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겼다. 고흐는 외로움에 울고, 태양과 함께 춤을 추며, 고
통에 몸부림치면서 인간의 비극을 평생의 목표로 삼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선명한 노랑으로
활짝 피었다가 야생의 바람을 맞으며 빛 속에서 스러지는 해바라기처럼, 태양이 걸어 놓은
멈추지 못할 마술에 걸려 회오리처럼 살다간 것일까.
● 그의 귀는 그림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이성을 반쯤 잃으면서까지 몰두했던, 그림과 태양
의 제단에 바친 제물이었다. '먹을 수도, 숨을 쉴 수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오직
그의 곁을 지켜준 그림을 위해 바친 제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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