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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 Conte||||크리스마스... 그리고 당케

12월의 김치말이국수

솜처럼 보송보송한, 코튼 100%의 티슈는 아기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끔은 어른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보송보송한, 청결한 따뜻함이 그리운 날. 아침에 타 놓은 커피는 이미 차갑게 식은 뒤다. 어학원으로 향하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 아침의 여유를 위하여, 코냑 몇 방울을 차갑게 식은 커피 잔에 따른다. 이곳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는, 짓궂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닮았다. 오전 내내 우울한 회색하늘이, 몇 분 전부터 화사한 금빛 하늘이 되어 창을 밝게 비운다. 따뜻한 브로컬리 스프에 바게트빵을 뜯어 넣어 아침 겸 점심을 먹었는데도, 허전함이 가시지 않는다. 이럴 땐 익은나머지 식초가 되버린 김치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어야겠다. 오이도 없고 당근도, 양배추도 없는 12월의 국수말이. 단지 신 고춧가루국물만이 가라앉은 허전함을 채워낸다. 5층짜리 흰건물 아래엔 시에서 관리하는 묘지공원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방은 4층. 직사각형의 긴 창을 열면 바로 아래 묘지공원이 보인다. 아침이고 밤이고 창가에선, 공원의 커다란 나무들이 흔들린다. 행복해도 혹은 불행해도 언제나...흔들리고 있는 나무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시에서 지은 이 아틀리에 건물엔, 각 나라의 화가들이 싼 가격의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고 1년에서 3년씩 세 들어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방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리투아니아 출신의 남자 화가가 살던 곳. 6개월 정도 방을 비우게 되어, 급한 김에 내가 들어와 살게 됐다. 그렇다. 난 유학온 지 한달 된, 살 곳도 마땅히 정해놓지 못한 채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이 방으로 들어왔다. 6평 남짓한 방에선 유화물감 냄새와 먼지 냄새가 적절히 섞여, 묘한 쾌쾌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한국인이라고는 오로지 나 하나.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이 건물에서 몇 달을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온몸을 주눅들게 했지만...이 방만은 알 수 없게도 친근감 있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당신의 부재

며칠간은 리투아인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조금 주저했으나 혼자 있는 시간을 죽이기에, 남의 물건을 뒤적이는 행위만큼 적당한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물건들이라고 해봐야, 봐도 읽을 수 없는 책들과 서랍 속에 뒹굴고 있는 팬들, 주변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얻은 성냥갑들과 전시회 카다로그들...이들은 여전히 먼지로 반쯤 모습을 가린 채, 주인의 부재를 알리고 있었다. 냉장고를 여니, K가 며칠 전 가져다 놓은 깻잎 전이 눈에 띈다. 먼 이국땅에서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전을 먹는다는 게 호사스럽게 여겨져 먹지 않고 놔두었던 것. 이제야 김치말이국수와 함께 먹기 위해,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깻잎 전을 올려놓았다. 기름이 지글지글거리고, 그 고소한 냄새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는다. 바보같이...

리투아인이 남겨놓고 간 물건 중엔 라디오도 있다. 옆으로 긴 직사각형의, 적갈색의 나무판넬로 만들어진 라디오. 칙칙 거리는 소음들 사이, 투박하고 경직된 독어가 튀어나올 때면 내가 먼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어떤 프로그램에서 어떤 종류의 음악을 틀어주는지, 뉴스의 내용이 무엇인지...디제이들과 아나운서의 높낮이 다른 독어들 사이에서 긴장과 불안의 높낮이 또한 들쑥날쑥이다. 어제,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 핀을 엄지손가락으로, 수도 없이 돌리던 끝에 클래식을 틀어주는 채널을 발견했다. 일요일 아침,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곡 ‘죽음과 소녀’가 유화물감냄새와 함께 방안을 두텁게 덮는다. 라디오가 없었다면 이 고요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따따아 따닥~ 기름이 튀는 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깻잎전은 이미 다 타고 말았다. 연기를 빼려고 창문을 여니 어느새 날씨는 바뀌어 잔설이 흩날리고 있다. 기막힌 일이야...하루에도 네다섯 번의 변덕을 부리는 날씨. 하루에도 열두 번씩 울렁이는 내 마음... “내일 11시쯤에 올께.” 작은 베란다에 몸을 기대고 얼굴로 떨어지는 눈의 차가운 촉감을 느끼며, 아래쪽 공원 나무 아래를 바라본다. 이미 시간은 12시를 넘은 지 오래다.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가. 저 아래, 키 큰 나무 아래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갔을까. 어느덧 라디오에선 아트 가펑클의 ‘All I Know’가 흐르고 있다. 너는 무엇을 알고 있느냐고...


라타슈-욕망과 배반의 변주곡

축제를 좋아하는 사람들답게 이들은, 12월이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음악을 틀고, 푸른색과 빨간색의 리본으로 쇼윈도우를 장식했다. 도시 한가운데, 다리 너머에 있는 광장에 축제가 시작되었는지 어제 밤엔 몇 시간동안 불꽃놀이를 하였다. 검은 나무의 실루엣 너머, 화려한 불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혼자 방안에서 지켜보면서... 방주인이 남기고간 라타슈란 이름의 와인을 홀짝였다. 어느 책에서 이 와인의 맛을 ‘복잡한 쾌락의 맛’이라 했던 것이 기억났다. 복잡한 쾌락의 맛...욕망과 배반의 변주곡. 붉은 와인 한 잔이 혀를 마비시키고, 심장을 녹이는 동안, 난 울컥 슬퍼져 뻐근해진 목을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불꽃놀이를 바라보았다. 옆방에 사는 이집트 출신의, 마흔 다섯 쯤 돼 보이는 모니카는, 두 번의 이혼과 재혼으로 세 명의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을 재혼한 지금의 남편이 키우고 있다고 했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날 위해, 손발을 써가며 열정에 넘치게 설명하던 모니카는 여기서 사귄 애인과 축제에 갈 거라고 함께 가자고 청했다. 언제나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는 모니카. 난 내키지 않아, K가 올 거라고 K가 오면 함께 갈 거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끝내 K는 오지 않았다...


K가 이곳 뒤셀도르프에 온 지는 7년이 되었다. 그는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곳 독립영화계에서는 꽤 실력 있는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와 내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2년 전, 그가 한국에서 주최하는 독립영화제에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기 위해 왔을 때였다. 우연히 영화제 취재를 갔다가, 우연히 재회하게 된 우리는 놀라움을 애써 감추며 서로의 안부만 묻고 헤어졌었다. 대학 선배였던 K, 나와 3년의 동거 후 갑자기 독일로 유학을 떠난 사람. 내게 아무 말도 없이...다른 여자와 결혼함과 동시에. 그가 떠난 후 난, 그의 아이를 지워야했고, 내 몸을 발기발기 찢어놓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잠시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었다. 자신의 일을 위해선, 죽을 때까지 성에 찰 것 같지 않은 야망과 성공을 위해선,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었던 그가, 이 세상에 자신 외에 어떤 누구도 중요하지 않던 그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때마다 먹을 것을 날라왔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한국음식을 찾는 그를 위해, 그의 아내가 정성스레 만든 도시락을 내게 가져다 주는 것이다. “내게 보상하려 하지마. 안 그래도 돼...”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 자상함, 그에게 없을 것 같았던 부드러움. 그의 이런 변화는 오히려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불행하다고도 말할 수 없어. 이곳 생활이란 게 그래...” 예전보다 살이 좀 붙은 편이나, 보기 좋은 체격의 그에게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배어나왔다. 그러나 예전처럼 그를 동정할 수도 위로할 수도, 더더욱 사랑할 수 없는 나. 더 나쁜 건 아직도,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는 나였다. 기다림은 녹이 스는 것과 같다. 오랜 시간 서서히 과도한 습기와, 산소가 부족한 공기에 노출된 채, 하냥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서서히 기다림이 만든 붉은 녹을 뒤집어 쓴 채, 어두운 마음 한 구석에 꺼질 듯한 전구알 하나 빛을 밝히는 일, 새로운 현실을 거부하는 일...  내일 그는 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도시락을 건네겠지. 어쩌면 유부초밥이나 불고기 버섯덮밥일지도...어쩌면 따뜻한 된장국을 보온병에 담아올지도 모르지. 이제 3일만 지나면 크리스마스다. 혼자 지낼 나를 위해 어쩌면 그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달콤한 저녁파티를 마련해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낯선 풍경을 상상하면서...리투아니아인의 라타슈를 마신다. 그리고 기다림만으로는 이 향과 맛을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당케 

베란다에 널어둔 빨래를 개어 가방에 넣고, 양말을 꺼내 신는다. 냉장고를 깨끗이 청소하고, 리투아니아인의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여전히 밖은 잔설이 날리고, 라디오에선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한 디제이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라디오를 끄고, 그 자리에 아까 마켓에서 사온 와인을 놓는다. 붉은 리본으로 장식된 와인병. 얼굴도 모르는, 방주인에게 주는 나의 소박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빨간 카드엔 단 한마디 ‘당케’라고 썼다. 대신 그의 낡은 라디오를 가져가기로 했다. 라디오는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니까. 외로운 방문객에게 유일한 친구였던 라디오. 낡은 라디오의 몸체에 끈을 둘둘 말아 들고, 다른 손에 가방을 든 채 방을 나선다. 이곳의 삶이 그리 나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잔설이 흩날리는 현관문 밖으로 발을 들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