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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PD만 아는 이야기 글|조정선

            라디오 PD만 아는 이야기

                    글|조정선


‘경옥고’라는 별명을 가진 매니저가 있었다. 우리나라에 자기 몸을 끔찍이 위하는 기혼남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분들이라면 한 번쯤 입에 댔을 보약이 바로 ‘경옥고’다. ‘정(액)을 채우고’ ‘머리를 검게 하며’ ‘치아를 낫게 한다’는 ‘경옥고’가 어찌 매니저의 별명으로 붙여졌는가 하면, 그가 이 보약병을 집에 쌓아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매일 몇 상자씩 갖고 나와 돌렸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바로 가요PD들에게다. 어렵사리 가요계에 일자리를 얻은 그는 자신을 알릴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하기야 이제 갓 들어온 신참 매니저에게 어느 가요 PD인들 눈길이나 돌릴까. 그렇다고 일당백의 센 연예인을 데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바로 ‘보약 돌리기’인 셈이다. 그는 일단 아는 약사에게 시중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건강음료의 성분분석을 의뢰한다. 그리고 ‘경옥고’로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부분의 PD가 그가 보기에는 ‘정(精)이 부족한 듯 하고, 흰머리인데다 군데군데 빠져 있으며, 틀니가 아닌 이상 그다지 건강치를 가진 인물은 없었으리라. 이윽고 그는 아버지와 담판을 벌이기 위해서 고향으로 내려간다. 말인 즉은 사업자금 조기 지원이었던 것으로, 당시로 봐서는 꽤 큰돈인 기백만원을 손에 쥐고 서울로 돌아온다. 가진 돈을 몽땅 털어 ‘경옥고’를 구입한 그는, 이튿날부터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풀보다 먼저 일어나 방송국에 출근을 한다. 물론 가요PD들의 책상에는 새벽부터 그가 뿌린 ‘경옥고’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안착한다. 당시에 그가 보기에 영양가 없는 프로그램을 했던 필자는 그 좋은 보약을 얻어먹지 못해, 이제껏 정이 부족하고 흰머리가 부쩍 늘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경옥고’라는 별명을 가진 그가 첫 번째 홍보앨범부터 대성공을 거두었는지 어쩐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말하면 하드코어 감각의 강한 임팩트가 오늘의 그를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오늘의 테마는 가요 매니저이다. 요즘은 가요계의 불황으로 다소 위축이 되었지만, 가요 매니저는 우리나라가 세계에 내놓아도 절대 꿀릴 일이 없는 최고 경쟁력의 직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출퇴근이 따로 있지도 않은 24시간 근무 체제이지만, 그만큼 신바람 나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또 안 되는 일이 없는 최고의 해결사이자 서비스맨이 바로 우리나라의 매니저다. 쇼 프로그램 연출자가 만일 성수기에 강원도의 어느 리조트에서 공개행사를 했다고 치자. 경쟁력 있는 매니저라면, 그 어렵다는 왕복 비행 편, 넉넉하고 편안한 콘도, 행사 경비(警備)에다가 뒤풀이 음식점까지 모두 차질 없이 준비하는 것이 기본이다. 과연 재벌 집이라든가 정계 실력자의 자제도 아닐 터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 이유는 알고자 하지 마라. 그들만의 노하우이니. 다만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언젠가 매니저 몇 명과 점심 식사를 하러 영등포 시장 쪽 교통이 복잡한 칼국수 집을 들르게 되었다. 마땅한 주차시설은 없었고, 그저 길가에 불법 주차를 해야만 했는데, 운전을 하던 매니저가 일단 근처에서 내리란다. 차에서 내려서 어떻게 하는가 보니, 관공서로 불쑥 몰고 들어간다. 잠시 후 키를 흔들며 여유 있게 걸어오는 그에게, 어찌 된 영문인가 물으니 피식 웃으며 “영화 촬영 왔다니까, 세우라 하더라”고 간단히 답한다. 그러고 보면, 최고의 해결사가 되게 한 것은 연줄이나 배경보다는 임기응변 요컨대 애드리브였음을 귀띔해 드린다. 하지만 가요 매니저를 단순히 최고 경쟁력의 전문직 종사자나 해결사로 단순 정의하기에는 좀 모자라는 점이 있기에, 그들을 특정 지울 수 있는 몇 가지 명제를 추가하고자 한다. 

첫째, 매니저는 최고의 스피드 광

원래는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스피드 광’으로 바꾸었다. 왜냐하면 최근에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다가 사고를 당한 이가 꽤 있기 때문이다. 매니저들의 운전에 관한 무용담을 듣자 하면, 비싼 돈을 들여가며 경부고속전철을 왜 뚫었나 싶다. 부산까지 3시간에 주파를 했다느니, 목포까지 2시간대에 끊었다느니 자랑삼아 하는 말들은 그래도 재미는 있다. 하지만 혹 운전석 옆에 앉기라도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발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가빠지며, 눈이 절로 감기는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그들에게는 댈 수 없는 스케줄이란 애초에 없다. 언젠가 퇴근 시간에 여의도에서 강남의 테헤란로 공개 행사장까지 20여분만에 도착했길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매니저의 대답은 “차도뿐만 아니라 인도까지 도로를 넓게 씁니다”였다. 그렇지만 매니저 출신 전문 운전기사는 좀처럼 볼 수 없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운전이 특기일 뿐 직업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매니저는 대식가이다

좋은 매니저가 되려면 프로듀서를 많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얼마나 깊이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떠난 관계를 자주 만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일을 떠난 관계라면 무엇이 있을까? ‘쎄쎄쎄~ 아침 바람 참 바람에’를 외치며 손뼉치기를 할 것인가? 아니면 느닷없이 취미를 공유한답시고 낚시터나 영화관을 데려가자면 그들이 순순히 따라 나설까? 그보다 간단한 것은 함께 먹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대부분 혼자 밥을 못 먹는다. 식사시간이 끝날 무렵에 제작 부서를 둘러보면, 때를 놓친 가요 PD 한두 명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들을 구제(?)하면서 조금씩 친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방금 식사를 끝내고 전열을 정비하여 제작 부서에 들어선 매니저에게, 아무개 PD가 밥이나 먹자고 말을 건넸다고 치자. 눈치 있는 매니저라면 아직 식전이라면서 한 끼쯤은 대수롭지 않게 더 먹을 것이다.

셋째, 매니저는 모두 중견 간부다

방송 생활 20년 만에 겨우 ‘부장 대우’ 직위를 달은 것이 필자다. 하지만 매니저는 누구든 들어오자마자 정식 ‘부장’이다. 아무리 가수 옆에 붙어 말이 떨어질 때마다 물건을 대령하든, 가방만 주구장창 몇 년을 들고 다니든, 하루 열몇 시간을 운전만 하든, 그들은 기본이 부장이니, 직급 인플레이션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실장’이요, 가수 한 명 데리고 독립하면 ‘사장’이다. 그리고 ‘사장’이란 타이틀은 현역이 아니라도 죽을 때까지 갖고 간다. 심지어는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하더라도 여전히 ‘사장’이니, 걸 맞는 대우만 보장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으리라.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고구마 줄기에서처럼 줄줄이 달려나올 것 같은 직업, 매니저 이야기는 다음 호에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