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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이맘때만 되면 하는 말이지만.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특히 이지랄 샘에게 있어 올해는 악몽같은 시절이었다.
시작부터가 좋지 않았고, 설마 하는 우려가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새해의 전망 역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올 벽두에 터진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한 해
내내 학원이 된서리를 맞은것이다. 시절이 하도수상하니. 한 해가 저무는데도 망년회
하자는 말이 없다. 원장은 원장대로 한숨만 쉬고. 강사들은 책상 지키기에 급급해
낮은 포복중이다. 그래도 어찌 술 한잔이 없을 수 있으랴. 술로써 시름을 달래야지.
나서기 좋아하는 교부과장이 원장 몰래 눈치껏 술자리를 마련했다. 이지랄 샘이 술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부랴부랴 마지막 수업을 정리하고 있다.그런데 컴퓨터 한 대가 꺼지지
않는다. 화면보호기에 메세지와 함께 암호가 걸려 있다.
"암호는 없다. 희망은 없다".
어떤 녀석인지 참 염세적이다. 희망이 없기는 이지랄 샘도 마찬가지다.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 이 컴퓨터의 마지막 사용자를 찾아본다. '아낙네'라는 닉네임을 가진
아이다. 이녀석들은 아씨 성을 좋아한다. 아프리카 잡종 토인어어서 닉네임이 '아잡토'인
아이가 있고, 스스로는 아,유식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아. 유치해서 닉네임이 '아유다'가
된 아이도 있다 . 반지의 제왕이 유행하던 때에 아,골룸처럼 생겼다고 해서 '아골룸'이
된 아이도 있다. '아낙네'역시 '아,낙지처럼 생겼네'에서 따온 닉네임이다. 이지랄
샘은 잘 모르지만. 개그맨 중에 낙지라고 있단다. 그 자가 머리를 박박 밀고 사람들을
웃기는데, 이녀석도 머리를 박박밀고 다닌다. 개그맨 낙지처럼 웃기는 아이는 아니고.
인상을 박박 쓰고 다닌다. 성적 역시 바닥을 박박 기는 아이다. 암호 해체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파워키를 눌러 컴퓨터를 강제로 종료시키고 다시켜서 바탕화면 등록정보로
들어가 화면보호기의 암호를 해제하면 된다. 그러나 이지랄 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단은 컴퓨터를 강제종료 시키고, 암호해제는 밤인을 잡아다가 직접 시킨다. 그래야
그 놈의 못된 버릇을 고칠수 있기 때문이다. 요 녀석 어디 낼 보자. 낙지처럼 박박기게
만들어주마. "그래도 명색이 망년회 술자린데 분위기가 너무 침울하다. 모두들
술잔만 들이키면서 씩씩 거린다.
** 사실 그럴만도 하다 원래 12월은 학원가의 화려한 성수기 시즌이었다 . 예비
중학생반이 넘치고, 예비 고등학생반이 넘쳐났다. 너도나도 외고를 가기 위해, 과학고를
가기위해 특목고 반으로 몰려들었다. 학원은 느긋하게 시험을 치러서 학생들을 선발했다.
"우째, 이런일이. 특목고반이 미달에다 정원의 반도 안 찰수가 있능교?"
특목고반에서 수학을 담당하는 강선생의 하소연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하소연을
받아주지 않는다. 이미 예견된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특목고가
존폐의 기로에서 있기 때문이다. 특목고에서 다른 계열의 수업을 금지시키고, 대학
지원시에도 계열을 이탈하면 불이익을 주기로 대학입시가 조만간 바뀐다. 무슨 말인고
하니 외고는 법대 경영대 가지말고 어문계열만가고, 과학고는 의대가지말고 과학계열만
가라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내신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특목고 인데 더이상 매력이
없다.
** "수준별 수업하라고 교과서 바꾸고 특목고 허가할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특목고 없애겠다는 심보는 대체 무슨 심보야."
- 수능에서 2만 4천명을 똑같이 1등급으로 만들겠다니. 이건 완전히 코미디야.
공부하겠다는 아이에게 발을 걸고 그저 적당히 공부라고 신호 보내는 꼴이라니깐.""10시까지
학교에서 강제로 붙잡아놓고 보충수업 시키고, 10시 이후에 학원 수업 하지말라니.
아예 학원 문 닫으라는 소리잖아.""수능을 EBS방송강의에서 출제한다는것도
웃기는 발상이야""수능을 EBS방송강의로 보충수업 한다니. 그게 어디 학교야
입시학원이지.그러니 전교조가 반발하는 것 아냐" 울화통이 치미는지 고등부강사들의
말문이 트이자 도무지 끝이 없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중등부야 특목고반이 크게
타격을 받았지 일반반은 그런대로 버텨나가는데 고등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 강사들의 보따리를 싸고 나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그 잘나간다던 강남 학원권도 타격을 입어 그곳에서 밀려난 강사들이 이것까지 진출하다보니
그나마 남아있는 강사들조차도 자리 보존하기 힘든 처지가 돼버린것이다. "외환위기의
실업대란때 청년실업의 최대 취업처가 사설학원이었는데. 정부가 어찌 우리에게 이럴
수 있냔 말이야."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이 청년실업을 초래하는 아이러니가
되고 말았다니까""나 어떻게! 여기서 짤리면 더 이상 갈 데가 없단 말이야."
마지막 교무과장의 말에 다들 고기 굽는 연기로 뿌연 술집 지붕을 멀뚱히 쳐다본다.
실력도 없이 원장 빽으로 들어온 교무과장은 그야말로 있으나마나한 존재다. 아무리
사촌동생이라지만 원장도 지 밥그릇 챙기기 바쁜 현실에서 끝까지 그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 이지랄 샘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EBS방송강의가 인기를 끌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이 온라인 학습쪽이다.원장은 다른 학원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일찍
부터 온라인 학습을 학원수업과 병행시켰다. 시작할때만 해도 기대가 무척 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조화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비록 아이들은 이지랄이라도 놀렸지만.
원장은 온라인 학습을 EGR이라고 명명했다. education growth revolution. 교육의
성장 혁명이라고. 그런데 이젠 아니다 애물단지가 되었다 . 그 일을 이지랄 샘이
하고 있다..고등부는 온라인 학습이 이미 없어졌다. 다행이 중등부는 내신관리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다보니 타격이 덜하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지랄 샘이 입에 풀칠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오늘 같은 날은 술맛이 더럽다.
** 다음날 이지랄 샘은 학원에 오자마자 '아낙네'부터 찾았다. 기분도 꿀꿀한데.
요놈부터 조지고 보나는 심사다. 머리를 박박 민 개그맨 낙지처럼 웃기지도 못하면서
인상만 박박쓰고 있는 놈의 귓볼을 질질 끌고서 컴퓨터실로 간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되었다.녀석이 운다. 대머리 박박에다 험상궂게 인상 쓰던 놈이 지레 울어버리니깐
왠지 싱겁다. 얼씨구, 또 엉뚱한 말까지 한다. "샘, 나 신문배달 할거예요"
"아니 왜?집안이 그렇게 힘드니?" "아빠가 나같이 공부 못하는 놈은
가문의 수치라고 돈, 아깝다고 나가서 신문배달이나 하래요.난 희망이 없어요. 세상이
온통 캄캄한 게 앞이 보이질 않아요." 내참. 이런 녀성을 혼낼수도 없고. 비록
학원이지만, 사제지간 아닌가. 이지랄 샘은아낙네를 달랜다. "얘야,공부가 인생의
다는 아니란다. 그리고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란다. 결코 희망을 잃어서는
안돼.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거야." 말해놓고보니, 이지랄 샘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참 멋있는 말인 것 같다. 자신도 학원의 위기와 실업의 위기에서 희망이 없다고 여기지
않았던가, 동병상련이 되어 아낙네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달랜다. 이지랄 샘의
지나친 친절에 아낙네가 감동을 받는다. 이젠 마음이 안정이 되는지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는 웃으며 컴퓨터실을 나간다.
"아차, 암호가 뭐니?"
"거기 있잖아요.암호는 없다."
"뭐라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이지랄 샘이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고 암호를 쓴다
없다. 그러자 화면보호기가 걷히고 컴퓨터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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