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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는 더 이상 못살아.”
이지랄 샘의 사모인 이슬여사의 발악이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쥐꼬리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쓸쓸한
이야기다. 하필이면 왜 쥐꼬리가 작고 초라하다는 상징이 되었을까? 쥐는
생각만 해도 왠지 온몸이 근질근질 거린다. 쥐벼룩이 떠오르고, 시궁쥐가
떠오른다. 한마디로 너무 더럽다. 특히 털도 없는 쥐꼬리는
징그럽기 짝이 없다. 작고 초라하다는 건 결국 더럽고 징그럽다는 의미인가!
“아, 가장
노릇하기 정말 힘들어.”
“꼴값 떨고 있네. 쥐꼬리도 가장이라고 행세하긴.”
“뭐야! 이걸
그냥 팍!”
“때려봐, 때려봐. 마누라 팰 용기도 없는 주제에.”
“제발 그만해!
지겨워 죽겠어. 엄마, 아빤 왜 애들처럼 맨날
싸워. 사이좋게 지내면 어디가 덧나?”
딸아이의 고함소리에 지레 야코가 죽어 앙앙거리던
이지랄 부부가 꼬리를 내린다. 그 꼬락서니가 쥐꼬리처럼 초라하다. 애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 마신다더니, 아홉 살배기가 어디서 배웠는지 이젠 어른처럼 훈계를 하고, 그래서 부부싸움도 눈치가 보여서 더 이상 할 수가 없다.
“복주야, 그게
아니고, 훌쩍훌쩍, 아빠가 엄마를 때리려고 하니까, 훌쩍훌쩍.”
“재미없어! 연기
그만해!”
“저렇다니까.
니네 엄마가 좀 싸가지가 없어.”
“아빠도 똑같애.”
그리고는 딸아이는 문을 쾅 닫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심정으로 이지랄 부부는 딸아이의 닫힌 방문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머쓱해져서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둘 다 피식 웃는다. 세상사는
게 참 싱겁다. 그래도 왠지 쑥스러워 흥! 하고는 서로가
다시 고개를 돌린다.
결국 이슬여사는 쥐꼬리를 자르고, 그곳에다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단비의 탐스런 꼬리로 환골탈퇴 하기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 며칠째 동네에 뒹굴러 다니는 생활정보신문이란 신문은 다 주어다가 목하 사색 중이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애 낳고 기르면서 10년째 남편 쥐꼬리만 쳐다보고 살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남편 회사 가고, 애 학교 가면
여성잡지의 연애기사만 열독하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도 지치면 컴퓨터로 들어가 채팅하고, 테트리스하고, 고스톱의 삼매경에 빠져 살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식당 아줌마. 이건 너무 고달프다.
공장에서는 왜 아줌마를 구하는 것일까? 이것 역시 고달플 것이다. 텔레마케팅. 전화상담이라, 이건
실적을 따질 것이다. 아무 번호나 눌러 모르는 사람한테 땅을 사라고 권하고, 물건을 사라고 권하다보면 욕만 먹을 것이다. 보험 아줌마. 역시 영업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다단계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노래방 도우미. 딸아이나 남편에게 걸리면 맞아죽을 것이다. 학원 강사. 그래, 바로
이거야!
“자기야, 나
학원 강사 시켜 줘.”
“나 참, 개나
소나 다 난리들이네. 실력 있어? 요즘 똘똘한 처녀 강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실력도 없는 아줌마가 어디다 명함을 디밀어. 나도
겨우 목숨 부지하고 있는데.”
“치사하다, 치사해. 그 학원 오라고 사정해도 안 간다!”
“또 싸우는 거야?”
“아, 아니.”
“싸움은 무슨.”
이번에도 이지랄 부부는 딸아이 때문에 싸움이
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슬여사는 속이 상한다. 도대체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생활정보신문을
일주일간 정독한 끝에 마침내 이슬여사는 취업에 성공했다. 조그만 속셈학원인데, 오전엔 유치부를 가르치고, 오후엔 초등학생을 가르친다. 가르친다기보다 돌본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낡은 주택가의 시장
통에 위치한 이 학원의 주변은 맞벌이 가정이 많아 부모들은 그저 탁아소처럼 ! 아이들을 맡긴다.
사실 가르치는 일보다 돌보는 일이 더 힘들다. 자기 자식도 힘든데, 딸아이만 키웠는데, 남의 아이를 돌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한 둘도
아닌 무더기의 아이들을. 그런데도 보수는 박하다. 이 학원의
원장은 형편이 썩 넉넉지 못한 동네라서 학원비를 많이 받을 수 없단다. 그것이 보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어차피 봉사도 아닌데, 이슬여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꾹 참기로 했다. 비록 남편보다 못한 쥐꼬리지만, 쥐꼬리 둘을 합치면 담비의 꼬리는 못되어도 다람쥐꼬리는 되리라 위안을 삼으면서.
이슬여사가 생계전선에 나서면서 이지랄 가정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지랄 샘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해야
할 때가 많아졌다. 딸아이도 학교 갈 준비는 스스로 하고, 자기
방도 치워야 했다. 안주인의 부재로 힘들어진 이지랄 샘과 딸아이가 급기야 동맹을 맺었다.
“엄마는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해.”
“그래, 예전처럼
채팅하고, 테트리스하고, 고스톱 치면서 놀아.”
“싫어! 내가
이 집 종이야! 내게도 인생이 있고, 일이 필요해. 앞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가 해!”
확실히 이슬여사는 강해졌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그동안 고양이 노릇을 하던 이지랄
샘과 딸아이는 이슬여사의 기세에 눌러 찍소리 못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만 했다.
어느새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이슬여사가 첫 월급을 받는 날이다. 돌이켜보면 살림을 하면서
일하기란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은데, 무던히 잘도 버틴 걸 보니 대견스럽다. 그래서 이지랄 샘과 딸아이가 이벤트를 마련했다. 케이크을 준비하고
촛불을 밝혔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슬여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제히 폭죽을 터뜨렸다.
“엄마, 축하해!”
“그동안 수고했어.”
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슬여사가 현관문 앞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는 게 아닌가. 그동안 이슬여사는 어린아이의 똥 기저귀를 빨아야 했고, 말 안 듣는
남자아이들에게 시달려야 했고, 박한 보수에 원장 커피 심부름, 담배
심부름까지 했던 것이다. 오늘은 즐거운 월급날인데, 한 아이가
싸워서 얼굴에 상처가 나 그 아이 집까지 찾아가 부모한테 죄송하다고 연신 빌고 왔단다. 그러고서야 월급봉투를
받으니, 설움이 북받치는 걸 꾹 참고 왔단다.
딸아이가 이슬여사를 안고 같이 울었다. 이지랄 샘은 그저 허공에다 시선을 돌렸다. 연애시절 이슬만 먹고, 이슬 똥만 산다고 애교를 부리던 아이였는데.
“당장 그만둬!
서울 쥐보다 시골 쥐처럼 맘 편하게 살자.”
“그래 엄마,
우리 맘 편하게 살자.”
“싫어! 내게도
인생이 있고, 일이 필요해!”
그렇다. ‘이렇게는
더 이상 못살아’라는 이슬여사의 발악은 꼭 쥐꼬리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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