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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PD만
아는 이야기
글 | 조정선
MBC-FM4U PD
‘호랑나비’의 주인공 ‘김흥국’만큼 방송가의 에피소드를 많이 남긴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의 일화는 재미있지만 방송은 물론, 글로 읽어도 남세스러운 것들이 종종 있으니 이해하시길 바란다.
1986년쯤으로 기억된다. 무명인 그가 ‘이종환의 디스크 쇼’ 공개방송에 초대되었다. 아니 초대되었다기보다는 당시 프로그램 PD가 평소 알고 지내던 그가 불쌍해서, 한 번 구제해 주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첫 번째 솔로앨범을 낸 ‘김흥국’으로서는, 라이브 무대에 처음 서게 되었으니 얼마나 떨렸겠는가? 게다가 복장은 금속 구슬이 잔뜩 달린 올 백 (All 白)의 본격 카바레 의상. ‘이종환’씨는 그를 보자. 속으로 “뭐 저런 게 다 있어!”라며 못마땅해 했지만, 어차피 노래 2곡과 중간 인터뷰는 예정된 것이니 서둘러 끝낼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솔로 데뷔 곡인 ‘창백한 꽃잎’이 끝나고, 진행자와의 인터뷰는 아슬아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터지고 만다. 갑자기 진행자가 “혹시 ‘김흥국’씨는 여자 목욕탕을 들여다 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솔직히 말해야 할지 요즘 말로 내숭을 부려야 할지 정신이 혼미해진 듯 그는 이렇게 답했다. “네, 저희들은 그것을 ‘새’를 잡는다고 하죠” 순간 진행자 ‘이종환’씨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겠다 싶었는지, 그대로 “‘김흥국’씨 수고하셨습니다”라며 마무리 인사를 하고 말았다. 그의 솔로 데뷔 무대는 이렇게 끝나고 만다. 프로 가수가 아닌, 졸지에 노래 한 곡만 부르고 만 아마츄어 ‘포수’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냐고? 여러분 중에 80년대 중반 광화문 거리를, 얼굴은 눈물범벅이 된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걷던 한 콧수염 ‘카바레 맨’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가 ‘김흥국’이었음에 틀림없다. 또 이 일화를 접하고 몇몇 사람은 ‘새를 잡는다’는 표현이 뭐 잘못되었는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새’는 온갖 ‘잡새’에 등장하는 ‘조류’의 새가 아니라, ‘틈새’를 의미하는 것이니, ‘그들만의 리그’에서나 씀직한 표현이었다고나 할까.
우리는 갖은 고생 끝에 스타덤에 오른 이들이 가끔 인터뷰를 통해 의외의 인물을 거론하며, 그 분에게 자신의 영광을 돌리겠다고 하는 경우를 본다. ‘김흥국’ 역시나 데뷔 무대에서의 충격(?) 때문인지, 스타가 된 이후에 ‘이종환’씨에게 영광을, 그것도 직접 만나서 그 뜻을 전하고자 한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이종환’씨는 미국의 한인방송에서 활약 중이었으니, 직접 만나 원수(?)를 갚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LA 교포 위문 연예인 단’의 멤버에 그가 낀 것이다. 위문 공연보다는 ‘이종환’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그는 설렌다. 그리고 출발 전에 방송 관계자 여럿을 찾아다니며 묻는다. “이종환 선생님에게 무슨 선물을 드리면 좋을까요?” 라디오 PD 한 사람이 “이 선배는 ‘X피린’ 감기 약 한 상자를 갖다 드리면 좋아할 걸. 미국에는 없을 테니까” 이렇게 충고를 해 주었다. ‘이거다’ 싶어서, 그는 ‘X피린’ 감기 약 한 상자를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LA공항을 나서려는데, 그만 세관원에 잡히고 만다. 얼굴은 거무튀튀하겠다. 콧수염은 길렀겠다. 영어는 한 마디 못하는데, 이상한 약 상자를 들고 있으니, 그야말로 그는 누가 보든 마약 밀수범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여곡절 끝에 주위의 도움으로 공항을 빠져나오기는 했고, 이런 눈물겨운 스토리가 ‘이종환’씨를 더욱 감동시켰음은 물론이다.
훗날 이제는 게스트가 아니라 라디오 진행자로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김흥국’의 신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인가? MBC 라디오에서 저녁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젊은층에 인기 높던 그룹 ‘터보’가 ‘사이버 러버’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음반에는 유감스럽게도 한글이 아닌 영어, ‘Cyber Lover’로 표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담당 PD는 무심코 프로그램 진행표에 ‘Cyber Lover/터보’ 이렇게 써 놓았다. 이것을 받아 든 우리의 주인공 ‘김흥국’은 전 국민이 듣는 방송에 이렇게 소개한다. “네, ‘터보’의 노래입니다. ‘X벌 러버’.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준비성 하면 철저하기로 소문난 ‘김흥국’은, 매일 생방송 전에 그 날 그 날의 의미를 살리는 애드리브로 사람을 감동시킨다. “오늘은 ‘경찰의 날’이군요. 경찰관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철도의 날’이네요. 기관사 여러분 축하드리고 감사 드립니다”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4월 20일에 일은 벌어졌다. 오프닝 사설이 끝나고 그는 즉시 자신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신체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시고 자립하시는 모든 장애인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여기서 그치면 천하의 ‘김흥국’이 아니다. 어렵게 모신 초대 손님과 예정된 시간이 다 되자 “벌써 끝날 때가 되었나요? 시간이 아깝네요” 이래서, ‘아쉽네요’와 ‘아깝네요’를 졸지에 형제지간으로 만든 그다. 그러니 “‘거미’의 노래입니다.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해야 할 것을 “‘친구’의 노래입니다.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쯤은 애교로 봐 줄 수 있을 것이다.
‘김흥국’ 그는 천성이 착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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