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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랄 샘이 다니는 학원에는 ‘수정’이란 이름을 가진 여강사가 둘이나 된다. 어디 강사뿐이겠는가. ‘수정’이란 이름을 가진 학생 또한 많다. 김수정, 이수정, 박수정, 한수정, 최수정, 수정, 수정, 수정….
“징글징글허게 많네.”
‘수정’이란 이름을 가진 여강사를 좋아하는 영어 강사의 말이다. oh-my-captain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영어 강사는 이지랄 샘의 오랜 술친구이다. 그 나이에 아직 미혼이고, 그래서 한쪽 가슴이 허전하고, 그래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
oh-my-captain이라는 닉네임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따 왔다. 영어 강사는 술이 취하면 한때 그 영화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좋은’ 영화라고. 자기가 꼭 로빈 윌리암스처럼 군다. 그 영화에서 영어 선생으로 나오는 로빈 윌리암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영화에서 로빈 윌리암스는 국어 선생으로 나온다. 미국에서는 영어가 국어니까, 미국에서 만든 영화니까 영어는 곧 국어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시간에 시를 배우지 않는다.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하는 문예사조 또한 배우지 않는다. 영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한 요원한 일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를 oh-my-captain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 마이 깡통’이라고 부른다. 심지어는 ‘도라무깡’이라고 부르고, ‘드럼스캔’이라고 부른다. 즉, 빈깡통이라는 얘기다.
“니들 러버냐?”
“뭐라고?”
“우리도 운명인가?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는데.”
“..........?”
“나 쟤 없으면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야!”
“...........!”
“가지마! 강인욱이랑 가지마!”
이 사람 또 취한 모양이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 히트한 이후 수정이를 좋아하는 영어 강사는, 요즘은 술만 취하면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 조인성 성대 모사를 지겹게 해댄다.
“정말 슬픈 이야기야. 재민이도, 수정이도 끝내 죽잖아.”
정말 슬픈 이야기다. 이수정이 나오는 드라마 이야기도 그렇고, 오늘 화제의 주인공인, 영어 강사가 좋아하는 김수정도 슬픈 이야기다.
김수정이 처음 이 학원에 왔을 때, 그녀의 일이란 접수실 카운터에 앉아 학생들에게 학원비를 받는 것이었다. 은행을 들락거리고, 원장이 시키는 잔심부름을 하고, 강사들 휴지통을 비우는 것이었다. 학교로 치면 급사 같은 존재였다.
blue-sky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김수정은 닉네임답게 교무실 분위기를 밝게 해주었다. 시키지 않아도 커피를 타다 주고, 책상을 정리해주고, 늘 환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했다. 남들보다 일찍, 남들보다 늦게까지 학원을 지켰다. 이런 아이를 누가 예뻐하지 않겠는가. 영어 강사가 좋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원장의 사촌동생인 영어 강사는 처음엔 교무과장 일만 맡았다. 원장의 빽으로 교무실을 장악하더니 짧은 영어 실력으로 영어 강사까지 되었다. 그러니 ‘깡통’이란 소릴 듣는다. 그런 그가 김수정을 급사에서 일약 강사로 데뷔시킨 것이다.
그러나 김수정이 강사가 되었다고 해서 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수정은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고학으로 대학을 가고, 학교를 다닌다고 학원일에 소홀하지 않았으며, 더욱 사람들을 애잔하게 만든 건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새벽에는 우유배달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 김수정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즐겨입던 청바지에서 치마로, 그곳을 치마로 가렸다. 운동화가 벗겨지고, 그곳을 하이힐로 가렸다. 투박한 손톱에, 얇은 입술에 붉은 물이 들었다. 귀가 뚫리고, 장식이 들어앉았다. 포인트마다 브릿지를 해넣은 머릿결은 김수정을 한층 성숙한 여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변화로는 김수정의 이미지가 격하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 여기까지가 좋았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김수정은 더 나갔다. 순박한 눈에 어느새 쌍꺼풀이 생겨 날카로운 이미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외모로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따르던 아이가 언니라고 부르고,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강사에게는 씨 자를 붙였다. 실로 가관이었다. 급기야는 스캔들까지 터졌다. 잘 나가는, 한마디로 돈 잘 버는 강사에게 붙었다는 소문이 돌고, 심지어 원장에게도 붙었다는 해괴한 소문까지 돌았다.
“오! 수정이, 김수정을 그렇게 만든 거야.”
원장의 사촌동생이고, 수정이를 좋아하는 영어 강사는 탕자가 되어버린 김수정의 갑작스런 변신의 원인을 엉뚱하게도 영화 ‘오! 수정’에서 찾았다. 두 사람은 학원 수업이 없는 어느 토요일 교무실 정리를 위해 학원을 나왔고, 우연히 원장실에 있는 TV의 케이블방송에서 그 영화를 같이 보게 되었단다. 그 다음부터 김수정이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예술의 수용미학적 입장에서 그 영화는 나쁜 영화다. 루카치나 브레히트가 보았다면 혹평을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김수정의 닉네임이 어느 날 blue-sky에서 oh-sujoung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학원에서는 김수정을 볼 수가 없다. 공금횡령 사건이 터지고 마침내 김수정이 종적을 감춘 것이다.
김수정을 일개 급사에서 강사로 데뷔시켰던 영어 강사가 부랴부랴 그녀가 사는 비산동의 반지하 골방을 찾았을 때 방 주인은 온데간데없고, 나쁜 기억들만 먼지처럼 빼곡이 쌓여 있었다. 카드 빚에 쫓겨다니는 수정, 대학생도 아니었던 수정, 계부에게 성추행을 당한 슬픈 기억을 가진 수정, 우유배달을 한 적이 없는 수정,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수정, 수정, 수정....
이지랄 샘이 인터넷에서 쪽지를 쓴다. oh-sujoung이란 닉네임을 가진 수정에게.
“우리는 오수정이 아니라 김수정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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