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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랄 샘의 좌충우돌 5 화

   중등부 수업이 모두 끝나고, 고등부 수업이 시작되는 30분간의 한가로운 공강 시간, 예슬이가 야참을 가지고 이지랄 샘을 찾아왔다. 찬합에는 생선초밥이 담겨 있었다. 해바라기 모양으로 예쁘게 담겨 있는 게 맛있게도 생겼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초밥이네. 자, 같이 먹자.”

  “선생님 먼저 드세요.”

  이지랄 샘에게 있어 예슬이는 예사 아이가 아니다. 예슬이 아빠와 이지랄 샘은 친구지간이고, 엄마는 얼마 전까지 이지랄 샘과 같이 학원에서 일했었다.  

  예슬이가 자꾸 출입문 쪽을 기웃거린다.  

  “왜 그러니? 깜빡이 기다리니?”

  “아, 아니에요.”

  깜빡이는 예슬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우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학원을 다닌다. 깜빡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계기는 늘 깜빡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가방 왜 안 가져왔니?”

  “깜빡했어요.”

  “왜 지각했니?”

  “깜빡했어요.”  

  야참을 들고 올 때면 예슬이는 종종 깜빡이와 같이 오곤 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깜빡이는 아직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예슬이가 애가 타는 모양이다.  

  이지랄 샘은 이 아이들이 이렇게 가까워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들은 견원지간이었다. 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예슬이 말만 믿고 깜빡이를 혼내다가 이지랄 샘이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다음날 바로 깜빡이 엄마가 학원으로 항의 방문을 온 것이다.  

  “이것은 강사 자질 문제예요. 어떻게 우리 애만 혼낼 수 있어요?”

  어디 그뿐이랴. 학교에서도 큰 사건이 터졌다. 예슬이가 학원에서의 다툼에서 분이 안 풀리자 이번에는 학교에서 맞짱을 뜬다고 친구들을 데리고 깜빡이 반으로 쳐들어가 깜빡이를 울렸다. 결국 애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으로 번져 예슬이 엄마와 깜빡이 엄마가 시비가 붙었다. 하지만 가해자가 예슬이고, 피해자가 깜빡이였으므로 예슬이 엄마가 사과하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봄이 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깜빡이를 혼내던 씩씩한 우리의 예슬이한테 큐피트의 화살이 꽂힌 것일까. 다음은 예슬이 엄마의 증언이다.

  "아 글쎄, 깜빡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더라구요. 밥 달라고. 얼떨결에 밥을 챙겨 주었어요. 그래도 안 싸우니까 마음이 놓였어요. 근데 다음날도 데리고 왔더라구요. 밥 달라고. 자세히 보니 두 녀석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어요. 어쩜 저렇게 깜빡깜빡 하는 애를 좋아할 수가 있어요? 너무 속상해서 깜빡이를 내쫓았어요. 그랬더니 예슬이가 울면서 대들지 않겠어요. 왜 깜빡이를 미워하냐고. 말은 안 해도 눈치를 보니까 깜빡이 집에도 같이 간 모양인데, 거기서도 혼난 것 같아요. 당연하죠. 그 여자가 우리 예슬이를 예쁘게 봐줄 리가 없잖아요. 대체 이 일을 어쩜 좋아요, 선생님?"

  불쌍한 예슬이와 깜빡이. 이루어질 수 없는 비련의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 신세가 되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깜빡이는 아직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자꾸 출입문 쪽을 기웃거리며 애타 하는 예슬이 모습을 보는 이지랄 샘의 마음이 더 안타깝다.

  내일이면 예슬이네는 외가가 있는 시골로 내려간다. 예슬이 아빠는 학원을 운영하다 쫄딱 망했다. 빚에 쫓겨 집을 나간지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생활비는 예슬이 엄마가 카드 서너 개로 돌려막기를 하며 버텨왔는데, 그마저 구멍이 났다.

  이지랄 샘은 예슬이네가 사는 게 너무 안쓰러워 예슬이 엄마에게 학원강사 자리를 알아봐 주었지만, 실력이 없어 몇 달 버티지 못하고 쫓겨났다. 경기가 안 좋은 요즈음, 젊은 강사들 노하우를 따라가기가 그리 만만치 않은 것이다. 결국 얼마 안 되는 전세금으로 겨우 카드 빚을 정리하고 모녀가 시골 외가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예슬이는 여전히 출입문 쪽을 기웃거린다.

  "이 녀석이 오늘도 깜빡하나 보구나. 우리 예쁜 예슬이 내일이면 떠나는데...."

  예슬이의 두 눈에서 이슬이 살짝 맺힌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나오려는지 꾹 참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예슬이.

  "늦었어요. 이제 가봐야겠어요."

  "그래. 우리 예슬이 씩씩하게 잘 살아야돼."

  "선생님도요."

  "근데 예슬아, 깜빡이가 왜 좋은 거니?"

  잠시 망설이더니,

  "아빠처럼 세모 얼굴이라서...."

  "................?"

  "아빠도 깜빡깜빡 해요. 술 마시고는 핸드폰 잃어버리고, 지갑 잃어버리고..... 그래서 처음엔 그 아이가 미웠어요. 얼굴을 볼 때마다 막 때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빠가 보고 싶어요. 그 아이를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아빠가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예슬이가 떠나고 한참 후에야 깜빡이가 헐레벌떡 이지랄 샘을 찾아왔다.

  "선생님, 예슬이는요?"

  "벌써 떠났단다. 근데, 넌 왜 늦은 거니?"

  "깜빡했어요. 근데, 선생님 수업 안 들어가세요?"

  "아차, 나도 깜빡했구나."

  이지랄 샘과 깜빡이는 실없이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허공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