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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랄이란 무엇인가. 벌써 몇회째 언급했거니와 원래의 뜻은 실로 거창한 것이었다.
교육의 성장 혁명. Educational Growth Revolution. 줄여서 EGR. 이 거창한 EGR이
장난 끼 많은 아이들에 의해 이지랄로 격하되었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EGR을 가르치는
우리의 주인공 역시 이지랄 샘으로 놀림을 받았다. 사실 이지랄 샘이 근무하는 학원에서는
EGR이라는 프로그램이 다른 학원과 차별되는 대단한 자랑거리다. 비록 아이들로부터
이지랄이라고 수모를 당할지라도 그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EGR 수업은 능력개발 프로그램과 학습 프로그램으로 구분된다. 우선 능력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집중력, 변별력, 수용력, 파악력, 이해력 등을 발달시킨다. 즉 문제를
보다 빨리 이해하고 보다 빨리 풀게 하는 훈련이다. 그 다음 인터넷 상에 올려진
에듀바이탈이라는 학원 전용 홈페이지에서 국어, 영어, 수학 등 학교 교과과정의
문제들을 제한된 시간 내에 풀도록 하여 테스트를 실시한다.
인기의 비결은 바로 에듀바이탈에 있다. 에듀바이탈에는 학습 프로그램 외에 학습게임이
있고, 쪽지를 보낼 수 있는 기능과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그래픽 아이콘인
아바타를 꾸미는 쇼핑몰이 있다. 그 중에서 아이들은 아바타의 세계로 푹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이 학원이 아이들을 유치하는 영업 전략의 핵심이다.
이제 봄이 오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원에서는 신입생 유치와 기존 아이들
이탈 방지를 목적으로 ‘아바타 콘테스트’라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아이들의 참여는
실로 대단했다. 더불어 이지랄 샘의 인기도 하늘을 찔렀다.
“아잉, 샘. 나 이뽀. 뽑힌 걸로 해주세요. 제발.(문천식 버전으로)”
“샘, 수업하느라 힘드시지요. 박카스 드세요.(꼭 박카스 광고 같다.)”
“공부도 못하고, 바이트도 없고, 이건 절 두 번 죽이는 일이에요. 제발, 바이트
좀 주세요. 샘, 새엠.(정준하 버전으로)”
그동안 지랄포라고 놀리더니 도대체 아이들이 왜 이리 난리일까? 그건 우리의
이지랄 샘이 콘테스트의 심사위원이고,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서는 돈을 갖고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야 한다. 이곳에서는 돈을 바이트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바이트를 버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공부를 해서 에듀바이탈에서 문제를 풀고, 그러면 맞은 개수당 5바이트가
지불된다. 나머지는 강사들에게 잘 보여서 바이트를 선물로 받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아이들이 이지랄 샘에게 애걸복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아이들이 콘테스트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자신을 뽐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사실은 상금에 눈이 멀어서이다.
1등에게는 무려 5천 바이트가 지급되고, 2등에게는 3천 바이트, 3등에게는 2천 바이트가
지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이지랄 샘에게는 더 이상의 바이트가 남아 있지 않다. 모든
바이트를 한 아이한테 몰아줘서 이지랄 샘의 주머니에는 먼지만 쌓여 있다. 대체
그 막대한 자금의 수혜자는 누구일까? 그는 ‘반지의 제왕’이 낳은 최고의 스타
골룸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아골룸(아, 골룸이 온다.)으로 불린다. 아골룸은 아잡토(아프리카
잡종 토인)처럼 공부엔 젬병이고,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아유다(아, 유치하다.)에게
곧잘 놀림을 당한다.
이외에도 골룸에게는 남다른 무엇이 있다. 유난히 낯을 가리고, 그래서 말수가
적다. 출석을 불러도 대답은 하지 않고 눈만 껌벅인다. 그래서 아예 출석을 안 부른다.
어쩌다 실수로 부르게 되면 자기 속만 터진다. 질문을 해도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드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아예 질문을 안 한다. 어쩌다 실수로 질문을
하게 되면 열 받아서 저걸 그냥 팍! 하고 자신의 더러운 성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어디 그뿐이랴. 아잡토처럼 얼굴색이 거무죽죽하고, 어려서 열병을 앓았는지 머리숱이
적고, 깡마른 게 진짜 골룸 같다. 아직도 아토피를 앓고 있어 붉은 반점이 얼굴 전체에
오돌토돌 돋아있고, 그 큰 콧구멍이 마주보고 있으면 그대로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래도 그 정도라면 참을만하다. 손톱에 시커멓게 때 낀 손가락으로 코딱지를 판다.
더 엽기적인 것은 코딱지를 맛있게 먹는다. 웬만한 비위가 아니고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자, 이제 골룸에 대해 정리를 해보자. 우리는 이런 아이를 뭐라고 부르는가. 한마디로
왕따. 골룸은 왕따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아이들은 곁에 있는 것조차
자존심을 상해하고, 강사들 역시 말 걸기를 꺼려한다. 그래도 학원은 골룸을 사랑으로
감싼다. 왜냐하면 요즘 학원 경기도 안 좋고, 어쨌든 학원비만 꼬박꼬박 들어온다면
최고의 고객인 것이다. 이건 순전히 원장만의 생각이다.
아바타 콘테스트가 한창이던 때, 이지랄 샘의 컴퓨터로 이상한 쪽지가 날아왔다.
발신자는 오늘의 주인공 골룸이다.
“안냐세요. 살기가 실허요.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놀아주지 않고, 학원에서도
놀아주지 않고, 샘들도 날 실허하고, 아바타 콘테스트에 나가고 싶어도 바이트가
없고, 이렇게 살아서 뭐하게서여. 그냥 콱!!!!!”
우리의 이지랄 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러다가 송장 치르는 것 아냐’,
‘괜히 나까지 덤탱이 써서 짤리게 되면 뭘로 먹고 살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잖아도 얼마 전 ‘왕따 동영상’ 파문으로 이웃 학원에서 담당 강사가 짤리고,
심지어 학원마저 문을 닫는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일로 인해 우리의 이지랄 샘은 골룸에게 바이트를 다 털리고 말았다.
골룸을 살맛나게 하기 위해 무려 장장 5천 바이트를 선물한 것이다. 그리고 또 결심했다.
골룸을 더욱 살맛나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콘테스트에서 골룸의
작품을 1등으로 뽑아주겠노라고. 그것이야말로 아이를 가르치는 스승으로서의 사명이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승부조작이 힘들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심사위원들을 모아놓고
골룸의 사정을 얘기하면 덤탱이 쓰기 싫어서라도 동참할 것이고, 원장한테는 ‘잘못하면
학원 문 닫을 수 있다’고만 얘기하면 누구보다도 먼저 발벗고 나설 것이다.
드디어 골룸이 1등상을 받았다. 골룸의 작품은 대략 이렇다. 아바타는 대장금의
장금이다. 장금이는 성형을 해서 용만이 얼굴이 되었다. 용만이 얼굴을 한 장금이가
떡을 먹고 있다. 애완견으로는 빡빡이가 선택되었다. 빡빡이가 떡 먹는 용만이, 아니
장금이 뒤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영화 ‘실미도’의 포스터다.
근데 실미도의 등장인물이 안성기도 아니고, 설경구도 아니고, 옥동자다. 전반적으로
산만하고 유치한 작품이지만, 1등은 1등이다. 더! 가관인 건 1등을 했다고
뽐내며 인사말을 올린다고 딴에는 ‘웃긴 대학’에서 퍼서 올렸는데, 리플자들의
반응이 신통찮다.
작성자: 사파이어 왕자
여보, 보일러댁에 아버님 좀 놔드려야겠어요.
리플1 : 그래서 뭐? 설렁해서 춥다. 울집에 보일러 좀 놔주라.
리플2 : 진짜 춥다. 울집에 아버님 좀 놔주라.
리플3 : 너 골룸 맞지. 솔직히 말해. 안 때릴께.
드디어 시상식 날, 행사가 끝나고 골룸이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며 인사차 이지랄
샘을 찾아왔다.
“샘,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요. 한번 살아봐야겠어요.”
처음으로 골룸의 목소리를 들은 이지랄 샘은 기쁜 나머지 눈시울이 다 뜨거워졌다.
“그래, 우리 열심히 한번 살아보자.”
이때 골롬이 주머니에서 과자 봉지를 꺼냈다. 情이 듬뿍 담긴 초코파이였다. 그런데
봉지를 까려는 순간 골룸의 그 큰 콧구멍에서 누런 코가 흘러내렸다. 골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으로 누런 코를 쓱 닦더니 이지랄 샘에게 초코파이를 내미는 것이었다.
코 묻은 초코파이를.
“샘, 이것 드세요. 선물이에요.”
얼떨결에 초코파이를 받아든 이지랄 샘, 비위가 상하는 걸 꾹꾹 참으면서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초코파이를 맛있게 먹었다. 아, 바른 스승의 길은 험난하고도, 험난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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