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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1일 목요일 방송 원고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56화 -당신의 가족


(M) 주제음 (Open your mind- 성시경 & 장나라)


남     (전화 통화하는 듯) 예 어머니. 금요일 밤에 버스 타고 가려구요. 그러게요. 이번엔 연휴가 짧아서.. 월요일 아침에는 올라와야죠. 네. 화요일부터 출근이에요. 예. 그럼 출발할 때 다시 전화 드릴께요.


(E) 집 전화 내려놓는


여     (차분) 금요일 밤에 가서..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올라오자구?

남     어. 그래야지? 당신도 화요일부터 출근 아니야?

여     그렇지.

남     그러니까. 월요일 오전엔 올라와야. 오후쯤에 도착할 거고.

        좀 쉬었다 다음날 출근...

여     (버럭) 그럼 우리집은!!!

남     깜짝이야.

여     깜짝? 깜짝 놀란 건 나야.

        아니.. 어떻게 나랑 상의 한마디 없이 그런 걸 맘대로 얘기해?

남     올 추석은 연휴가 짧잖아.

        금요일밤에 가면 어차피 토요일 아침에 도착할텐데.

여     그런데?

남     아니.. 그러면 토요일엔 차례 음식 같은 거 좀 준비하고.

        일요일 아침엔 차례 지내야 할거고. 그러고..

여     일요일 오전에 차례만 지내고 우리집으로 가서

        하룻밤 자고 월요일 아침에 오자. 그런 생각은 안 들어?

남     어떻게 그래... 달랑 하룻밤 자고 오자고? 어머니 서운하시게..

        그리구 월요일 오후나 돼야 누나들도 올거고...

여     진짜 이럴거야?

(M) 너 정말 -김현정


(E) 물 벌컥벌컥 마시고, 컵 탁 놓는


남     내가 뭐 틀린 소리 했어? 추석인데 누나들 얼굴 좀 보고 오자는 게

        나빠?

여     어떻게 그렇게 딱 자기 생각만 하니?

        난 오빠랑 언니 없어? 난 저번 설에도 우리 언니 얼굴 콧빼기도

        못보고 왔어.

남     그거야 처형이 늦게 왔잖아.

여     우리가 일찍 간거지.

남     그래서 어쩌자고!

여     당신이야말로 그래서 어쩌자고!

        지금 하는 말은, 추석에 당신 집만 딱 갔다오자 그거잖아!

남     야.. 당신 집이라니. 시집 왔으면 우리집이지. 왜 당신집이냐?

여     하하.. 웃겨 진짜. 그런식으로 말하면 당신도 장가 왔으니까

        처갓집도 우리집인거야. 당신은 그렇게 말한 적 있어?

남     같냐?

여     뭐가 틀린데?

남     관두자.. 

여     얘기하다 말고 막히면 관두재? 왜 관둬?

남     아니.. 결론이 안나잖아. 괜히 명절 앞두고 서로 얼굴만 붉히지.

여     아니야. 난 얘기하고. 결론도 짓고 넘어갈래.

        잘 들어. 어머니 섭섭해하시는 만큼. 아니 그 이상.

        우리 엄마도 섭섭해하셔. 그리구, 형님들은 어머니 딸 아냐?

        어머니는 당신 딸 하루라도 일찍 오길 원하시면서.

        왜 며느리는 하루라도 더 붙들려고 그러시는건데?

        나도 우리집에선 딸이야.

남     무서워 죽겠네.

여     원래 진실이 무서운 거야.

남     그런 얘기가 아니라..

여     그럼 뭐! 내 말이 틀린 거 있어?

남     논리로 따지면 당신 말도 맞지만.

        현실이 논리로만 돼? 대한민국에서 아직은. 시댁이 먼저야.

여     당신이 더 나뻐. 원래 그런 거라고 누가 가르쳐 주디?

        헌법에 정해졌어? 학교에서 가르쳐? 누가 그래?

        강제력도 없는 관습. 좀 바꿔가면 안돼?

        솔직히 바꿀 마음이 없는 거잖아. 당신한테 편하니까.

        안 그래?

(M) 대화가 필요해


(E) 밥 조용히 먹는 소리


남     (참다가 답답한) 언제까지 말 안할거야?

여     ....

남     얘기했잖아. 처가댁은 다음주 주말에 다녀오자고.

        그럼 되는 거 아냐?

여     ......

남     에이 몰라. 맘대로 해.


(E) 전화기 열더니 누르는


여     여보세요? 엄마? 나에요. 우리 일요일 오후쯤 도착할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사이) 끊어요. 나중에 출발할 때 전화할께요.


(E) 끊는


남     지금 뭐하는거야?

여     뭐하긴? 들었으면 알 거 아냐.

남     아니.. 나랑 상의 한마디 없이. 혼자서 그렇게 얘기해 버리면

        어떡해?

여     당신은 나랑 상의해서 통보했어?

남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여     누가 할 소릴. 우리 말 나온 김에 톡 까놓고 얘기해보자.

남     뭘!

여     내가 당신보다 못한 게 뭐 있어? 우리 대학도 같은 데 나왔고.

        똑같이 직장 생활 하고 있어. 심지어. 연봉은 내가 더 많아.

남     야.. 그런 얘길 뭐하러..

여     왜? 따져 보자는 건데? 그런데도. 나 우리집에 용돈 한번 제대로

        드린 적 없고. 당신은 따박따박 어머님 생활비 보내드리고 있어.

        안 그래?

남     우리 어머니는 능력이 안되시잖아. 장모님이야 장인어른도 계시고.

        처남도..

여     여보. 이건 성의 문제야. 단돈 십만원이라도. 내가 말 안해도

        당신이 먼저 우리집 챙겨주면. 나 당신 집에 백만원 드리는 것도

        안아까울거야.

남     또.. 당신 집! 계속 이렇게 니네 집 우리 집 편 가를거야?

여     이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당신이야!!!!

(M)  이브의 경고


(E) 시계 초침 똑딱똑딱


남     (초조하게) 안 일어설거야? 차 시간 다 돼 가.

여     결정을 하고 가야 할 거 아냐. 어떻게 할건데?

남     뭘~

여     계속 두 번 말하게 할래? 일정을 어떻게 할거냐구.

남     난 어머니한테 벌써 다 간다고 얘기했는데.

여     얘기는 나도 했거든?

남     그래서! 진짜 안 가겠다구?

여     공평해지자는 게 나빠? 난 공평하게 하자는 거고.

        당신은 당신 몫만 챙기자는거잖아.

남     매번 그래? 이번엔 연휴가 짧으니까. 이번 한번만 그러자는 거잖아.

여     그러면? 다음번에 이렇게 짧은 연휴가 있을 땐.

        당신 집.. 그러니까 어머니 댁 안가고. 우리집에만 가서

        연휴 다 보낼 거야?

남     아니 그건.. 그때 가 봐서..

여     그때 가면 안 그럴걸?

남     아 이여자 피곤하네 진짜.

여     뭐?

남     당신 공평한 척. 잘난 척. 얘기하니까 나도 한마디 할까?

        당신.. 친정 갔을때 왜 꼭 새언니는 찾아?

여     (약간 당황) 뭐? 내..내가 언제?

남     언제는! 갈 때마다 그러면서. 먼저 친정 갔다 그러면.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이러면서 삐죽댔잖아.

여     아니야. 그건 새언니가 평소에 엄마한테 하는 게

        워낙 싸가지가 없으니까....

남     우리 누나들만 욕하지 말고. 당신도 한번 돌아봐.

        우리 누나들 눈에는 당신도 그렇게 싸가지 없어 보이는 거거든?

(M)  너에게 원한 건


남     우여곡절 끝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하지만. 


(E) 버스터미널 소음


여     내 표는 따로 끊어줘.

남     뭐?

여     따로 끊어 달라구. 당신은 당신 집 가고.

        난 우리 집 가자. 그게 낫겠어.

남     진짜 끝까지 이럴거지?

여     그리구. 우리도 다시 생각해 보자.

남     뭘!

여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애도 없구.

        서로를 이렇게 이해 못해주는데. 계속 같이 살 수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

남     막 나가자 이거지?

여     나는 합리적으로 나가고 싶은거야.

남     그놈의 합리. 그래 좋다. 그러니까. 합리적으로.

        이혼하고 싶다 이거잖아?

여     (그렇게까진 아니었지만 자존심 상) 그렇지!

남     그러면. 우리집 가서. 그만 살겠다 얘기하고.

        니네 집 건너 가서. 그만 살겠다 보고하자.

여     ...뭐?

남     어차피 집에서도 알아야 할 거 아냐.

        괜히 홧김에 그랬다 말거면. 말도 꺼내지 말고.

        진짜 그럴거면. 이번 추석에 그냥 확 터뜨려 버리자 이거야!

여     하! 그래?

남     그래! 그러자고!

여     좋아 그럼! 그러자! 그렇게 하자구!

(M) 권투 중계방송 음악


남     일단 터뜨려놓고 버스에 함께 타긴 했지만.

        가는 내내. 계속 불안했던 건 사실이다.

        아내 역시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E) 버스 가는 소리 한참 가다가


남     (조용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여     말 시키지 마. 헷갈리니까.

남     헷갈릴 게 뭐 있어? 이미 생각 다 정했다면서?

여     암튼. 차 타고 가는 동안엔 당신이랑 말 섞고 싶지 않거든?

남     나도 뭐 좋아서 말 시킨 건 아니야.

여     유치하니까 따라하지 말고. 얌전히 좀 가자.

남     그래 뭐..


(정적 흐르다가)


여     어머니한텐 말씀 드렸어?

남     뭘.

여     우리 일요일에 간다구? 우리집 가겠다며.

남     진짜.. 지독하다.

여     뭐가 지독해.

남     조용히 가자며.

여     그래. 알았어. (참나.. 치..)

남     (하이고.. 치..)


(E) 버스 멈추고. 치이익. 문 열리는 소리


남     휴게소에 도착하자

        아내와 나는

        서로 누가 먼저 내리나 내기라도 한 사람들처럼

        어깨를 밀치며 버스에서 내려섰다.


여     아 밀지마.

남     내가 뭘. 당신이나 밀지 마.

(M)  으?으? - 신화(전주부터)


(E) 커피 뽑는 소리


남     아내와 신경전을 벌였더니.

        더 피곤한 기분이다.

        커피를 한잔 뽑아 들고 돌아서는데.

여     내꺼두 한잔 뽑아봐.

남     니 돈 내구 뽑아먹어.

여     아이구. 유치해라. 알았어.


(E) 동전 꺼내서 넣고

(E) 커피 뽑는


여     내가 극단적인 얘기를 괜히 꺼낸 게 아니야.

        홧김에 한 얘기도 아니고.

남     뭐? 그럼 이유가 있어서. 예전부터 생각해 왔다. 뭐 그거냐?

여     그렇지. 

남     하하.. 참... 이유가 뭔데?

여     여자는 큰 이유로 이혼 생각하지 않아.

        진짜 사소한 이유 하나. 예를 들면. 당신이 시댁 식구들 앞에서

        나한테 면박을 줬다거나. 내가 하두 어깨가 아파서 좀 주물러

        달랬는데. 모른 체 하고 자빠져 잠이나 잔다든가....

남     장난해? 그런 이유로 갈라서면 어떤 부부가 남아나냐?

여     암튼. 그런 작은 이유들이 쌓이고 쌓이면. 정이 뚝떨어지는 거야.

        알아? 

남     나는, 그런 건 모르겠고. 이번 일로 당신한테 정이 떨어진 건

        사실이야.

여     하... 누가 할 소릴...

남     그래. 잘된거야. 솔직히. 누구 하나가 이혼하자 그러고.

        누구 하난 싫다면서 버티고. 이것만한 비극이 어딨냐?

        깔끔하게. 서로서로 정떨어져서. 굿바이하는 거. 쿨하잖아.

여     그래. 우리 같이 산 3년 동안. 처음으로 맘 맞는다.

        결코 그 마음 변치 마라.

남     어. 너나 잘하세요.

(M) 뜨거운 안녕.


-----------------------1부 끝 ---------------------


* 잠시 후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부가 이어집니다.



(M) 


(E) 텔레비젼 보는 소리들


남     집에 도착해.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요기를 하고. 과일을 먹고. 텔레비젼을 보았다.

        마음 한 구석에. 언제 얘기를 꺼내나..

        걱정꺼리가 있긴 했지만. 당장 말문을 열기 어려워

        그냥 그러고 있던 참이었는데.

        

(E) 문자 메시지 오는 소리


남     아내였다. 


(E) 핸드폰 여는 소리


여     (에코) 주방으로 잠깐 와.


(E) 주방에서 설거지 하는 소리 달그락 거리고


남     왜. 오라가라야.

여     (소리 죽여가며) 왜 오라가라? 당신, 아가씨한테 와서 설거지 좀

        도우라 그래!

남     미정이? 밥 먹고 졸린다고 들어가 자는데?

여     나도 졸리거든? 나는 서울에서 네 시간 차 타고

        여기까지 온 사람이야.

남     추석인데 네 시간 차 안타는 사람이 어딨어.

여     아 그러니까! 난 오자마자 앞치마 주워 입고.

        국수 삶고. 과일 깎고. 지금 설거지까지 하고 있고.

        당신이랑 당신 어머니. 당신 동생은. 그냥 거실에 앉아서

        하하호호 수다 떨다가. 피곤하면 들어가 자고. 텔레비젼 보고.

        왜 노는 손들이 그렇게 많은데. 나 혼자서 여기서 복닥복닥

        이래야 돼?

남     야.. 너 무슨 연설문 써왔냐? 외운 것도 아닌데. 뭔 말을

        그렇게 잘하냐?

여     이게 말로 들리냐?  내 복장 터지는 소리다!

남     아 비켜봐. 이깟 설거지? 내가 할께 내가.

여     하...

남     미정이 차례까지 갈 거 뭐 있어. 내가 한다고.

(E) 고무장갑 벗어 던지고

여     그래. 해. 난 발 닦고 들어가 잘거니까.

남     ......야 어머니 보는데.

여     아 보시면 어때. 작은 아가씨도 들어가 잔다며.

        아무 한 일 없는 아가씨도 자는데. 나는 왜 못자? 

        내가 뭐 죄인이야? 노예야? 내가 왜 못자?

남     그래. 알았어, 들어가 자라. 잠 못 자 죽은 귀신 붙었나...

여     여기 접시 다 씻어놓고. 마른 행주로 깨끗이 닦아서 엎어놓고.

        저쪽에 반찬 남은 거 있지? 그거 여기 다 부어놓고.

        이 그릇들도 다 씻어야 돼. 다 하고 나면. 싱크대 물기 없이 닦고.

        걸레 빨아다가 주방 한번 훔치고. 별 거 아니지? 간단하지?

        당신이 다 해!

(E) 가 버리고.

남     뭐야.. 가란다고 진짜 가냐?

        (사이) 하.. 뭐가 이렇게 많어.... 에이....

(M)  핑계 - 김건모


남     다음날 아침.


여     일어나..

남     (졸린) 왜...

여     장 보러 가는데. 같이 가.

남     뭐 언제 같이 다녔다고 같이 가. 그냥 혼자 갔다 와.

여     짐이 얼마나 많은데. 이혼하는 마당에 내가 혼자 그 짐을

        뭐하러 다...

남     (깜짝) 에이 어머니 들으시겠어!

여     뭐 어때. 어차피 말씀 드릴 거잖아! 아니면 지금 당장 얘기하든가.

남     말했잖아. 차례는 지낸 다음에 말씀드리자고.

여     그래. 그러니까 그때까진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달라는거지.

남     아우... 진짜... 알았다. 뭐뭐 사면 되는데?

        가자 가. 장 보는 게 뭐 별 거야?

(E) 시장 소음들


(E) 비닐 봉지 부스럭거리며 걸어가는


남     아직도 살 게 남았어?

여     아직 반도 못샀거든? 이번엔 생선.


(E) 비닐 봉지 부스럭부스럭 거리며 걸어가는


남     야.. 대강 사 대강.

여     대강?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당신 모르시는구나?

        그 잔소리 당신이 다 듣고 싶으면 대강 사든가.

남     아.. 진짜 왜 이렇게 더운거야. 어우 열나.

여     열나지? 나는 늘 열통이 터졌었어.

        다음은. 돼지고기.

(M) 난 괜찮아 - 진주


(E) 전 지지는 소리

(E) 들어오는 소리


남     왜 또 불러내고 난리야.

여     전 붙이는 거 좀 도와줘.

남     미쳤어? 어머니 보시면 난리 나.

여     그럼 말씀 드리지 뭐.

        “어머니. 사위한테는 여자들 일 도와주고 그래야 멋진 남자라고

        그렇게 강조하시면서. 왜 아들이 며느리 일 도와주는 건

        그렇게 못 보세요? 그거 좀.. 모순 아니에요?”

남     우리 엄마 혈압 올라가!

여     그래도 할 얘긴 할래. 어차피 막판이야.

남     야 너 진짜....

여     아니면 당신이 어머니께 요령껏 말씀드려봐.

        내가 몸이 불편한데 좀 도와줘야겠다든가...

        머리 굴리면 얼마든지 그럴 듯한 변명 할 수 있잖아?

남     와.... 너 진짜.. 대단하다.

여     어머니 입장에선. 내가 말하는 거 보단 당신이 그렇게 둘러대주는 게

        나을거야. 어떡할래?

남     그래.. 하자 해.... 뭐.. 뭐부터 하면 되는데?

여     호박전. 생선전. 고기전. 버섯전. 이렇게 차례대로 할거야.

        내가 재료들 줄테니까. 이거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이렇게.

        후라이팬에 타지 않게 부쳐주면 돼.

남     그래? 별것도 아니구만. 명절 때마다 전부치는 게 어떻고..

        그 난리를 쳤냐?

여     (훗..) 그래? 알았어. 한번 해보고. 다시 얘기하지 뭐.

(M) 사나이 가는 길 - 젝스키스


(E) 전 부치는 소리


남     어지럽다.

        다리에서 쥐가 나고

        기름 냄새를 조금만 더 맡으면 토해버릴 것 같다.

        좁은 부엌에서 계속 전을 부치고 있었더니.

        눈앞이 핑핑 도는 게. 아주 죽겠다.


여     자... 이번엔 고기전.

남     야.. 잠깐만..

여     왜. 시간 없어.

남     니가 좀만 해봐. 나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께.

여     바람은 무슨! 나 지금 생선 찌는 거 안 보여? 저거 다 하면

        나물 무쳐야 되고. 할일이 태산이거든?

남     에이.. 알았어. 뭐 하면 된다고?

여     고기전.

남     뭔놈의 전을 이렇게 많이 해. 다 먹지도 않는 걸.

        한가지만 하면 되지.

여     내 말이!


남     순간 할 말이 없어져 다시 쭈그리고 앉았다.

        아... 이놈의 기름냄새. 진짜 토할 것 같다.

(M) Oh! happy


(E) 끙끙 앓는 소리


여     잠 좀 자자. 그깟 것 좀 해놓고 끙끙 앓기는?!

남     방금 뭐라 그랬어. 그깟 것? 그깟 것?

여     왜? 그깟 것 아니면 뭔데?

남     내가 그거 하느라 두시간을 일어나지도 못하고.

        기름 뒤집어 써가면서. 손도 다 데고!

        나 지금 어깨 빠질 것 같거든?

여     ....이라고 내가 말했을 때.

        당신이 뭐랬더라?

남     .....뭐?

여     그랬잖아. 첫 명절 때. 차례상 준비하느라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데.

        당신한테 어깨 좀 주물러 달랬더니.

        당신이 그랬잖아.

        “잠 좀 자자. 그깟 것 좀 해놓고 끙끙 앓기는!”

남     내...내..내가 언제... (자신감 없어지는)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 그렇게는 말안하고.. 그냥.. 조용히 자자..

        뭐... 그런 거 같은데...

여     또 이런 말도 했어.

        “일년에 두번이다. 매달도 아니고. 일년에 두번인데.

        그거 할 때마다 왜 이렇게 징징대냐? 옛날엔 일년에 서른번씩   

        제사도 지냈다는데!!”

남     .........

여     일년에 두번 아니라. 십년에 두번이라도. 힘든 건 힘든거고.

        위로 받고 싶은 건 위로 받고 싶은 거거든?

(M) 미안해요 - 김건모


남     다음날.

        정갈하게 차려진 차례상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냥 자연히 나오는 줄 알았던 음식들.

        겨우 일년에 두번씩 하는 건데.

        어려우면 뭐 얼마나 어렵겠냐.. 했던 일들.

        그 일이 아내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차례가 끝나고. 밥을 먹는 자리.

        그런데. 아내가 불쑥.


여     어머님.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남     눈을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 할 말은 하고야 말겠다는 눈빛이었다.


여     어머니.... 

남     여보. 내가 말씀드릴께.

여     ....?

남     사실은요. 오늘 오후에 처가에 가려구요.

        좀 있으면 누나들도 올거고. 이 사람 음식 장만하느라

        고생도 많이 했으니까. 엄마가 좀 이해해 주세요.

        조만간 또 올께요.

여     나 그 얘기 하려고 했던 거 아닌데?

남     .......어?

여     이거요. 얼마 안되는데요. 용돈 쓰시라구요.

        회사에서 추석이라고 보너스가 나와서요.

        

남     이 여자가.. 날 이렇게 보내버리는구나....

(M) 행복한 나를


(E)걸어가는 소리


남     일부러 그랬지? 나 챙피하라고?

여     그래. 일부러 그랬다.

남     암튼 뭐.... 생각은 좀 했어.. (쑥스러운)

여     무슨 생각?

남     그냥 뭐... 당신.. 힘들겠다... 그런 거...

여     치!


(E) 전화 진동 울리고


여     어? 엄마한테 전화왔네.

        여보세요? 엄마. 어. 지금 가고 있어.

        (사이) 아 새언니를 뭐하러 붙잡고 있어! 빨랑 자기 친정 보내.

        만나긴 뭘 만나. 엄마도 우리 시어머니랑 똑같애.

        엄마 딸은 친정 가는데. 엄마 며느린 왜 시댁에 있어야 되냐구!

        빨랑 보내줘! (어쩌고 잔소리하는)


남     우리집과 당신의집.

        우리 가족과 당신의 가족.

        하나가 되기까지.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할까.

        

여     (전화 끊고) 왜 그렇게 봐.

남     아니다. 얼른 가자. 우리집에.

여     뭐?

남     처가도 우리집이라며. 그러니까 우리집.

여     하.. 웃겨 진짜.


(E)웃음 소리 멀어지며


(M) 주제음














2008-09-10(1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