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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0일 화요일 대본 및 수록곡
 

박해지 


- 세상의 밝은빛 -

  

"자기야~ 나 과일 먹고 싶어~~ "

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 남편은 옷을 챙겨들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과일 집으로 뛰어갑니다.

그럼 전, 임산부의 여유로움으로 배를 앞으로 쭈욱 내밀고 배란다에 서서

남편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는 이런 행복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결혼 7년차가 지났는데도 아이소식이 없었거든요.

장남에 장손인 우리 남편, 그리고 때마다 몸에 좋다는걸 잔뜩해 오시는

시어머니 뵙기가 너무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늘 임산부들만 제 눈에 띄고 이쁜 아기용품점을 볼 때면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남편이 곁에서 많이 다독거려 주고

위로해 줬지만, 제 맘은 늘 가시방석이었지요.

너무 힘들어 남편과 이혼법정까지 갔는데, 차마 마지막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저를 웃기기 위해 참 많이도 애를 썼습니다. 유머책에 있는 내용을 전부 외워 들려주기도 하고, 연예인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고, 큰 덩치로

춤을 추기도 했답니다. 그러다가 기적처럼 하늘이 선물을 주신 거지요.

게다가 쌍둥이라서 더 행복하답니다. 온가족과 세상이 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아가들아~ 건강하게 잘 자라서 우리 예쁘게 만나자.

그리고 너무도 지극정성인 우리 남편에게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신청곡:        If I Ain't Got You / Alicia Keys

미국 출신의 R&B 여가수 '알리샤 키스'의 2004년 작품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3위까지 기록했던 그녀의 대표적인 히트곡.






김외순 



- 빛바랜 앨범 속, 한 통의 연애편지를 읽고 -

  

안녕하세요? 김기덕 아저씨~!!

봄을 시샘하던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이제는 제법 봄내음이 느껴지네요.

얼마 전, 주말을 맞아 가족들과 나들이를 하려했지만, 감기 기운이 있어

남편과 두 아들 녀석은 영화를 보러 가고, 저 혼자 음악을 들으며 모처럼

집안 대청소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구석에 쌓아둔 앨범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 앨범에는 아주 색이 바랜 한 통의 편지가 끼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15년 전인 1992년 7월, 남편에게 받았던 추억의 연애 편지였습니다.

제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남편의 사랑이 듬뿍 담긴 추억의 연애편지를 보니,

다시금 추억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이런 글이 써있었답니다.


제목 : 너무나도 사랑하고픈 순이 에게

우리 만남이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 되지 말고 영원하길 바라고 또 바란다.

솔직히 만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구나.

이런 게 바로 사랑일까?

외순아! 우리 서로 믿자. 그리고 우리의 만남이 헛되지 않도록

각자 노력하자꾸나. 그리고 우리 만남을 축복하는 건배를 들자꾸나.

"한 잔은 너와의 사랑을 위해, 또 한 잔은 너와의 우정을 위해“

 - 너를 무척이나 보고파 하는 식으로부터 -


요즘 회사일로 매일 밤 12시에  퇴근하는 남편에게 힘을 주는 의미에서

이 말을 꼭 하고 싶네요.  "혁이 아빠! 힘 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신청곡:  I Believe In You / Kylie Minogue 

호주 출신의 미녀 가수,  '카일리 미노그'의 2004년 작품.



오명자 


- 어머니의 고향 -

  

고속버스 터미널 앞 마당에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며 노랗게 피어난 꽃이 상큼하고, 차창으로 스며드는

꽃향기는 찬물 만큼이나 신선하다.

낮 시간, 표정 없이 한산하게 앉아있던 승객들이 '산수유가 피었네' 라는

누군가의 나지막한 탄성에 다들 길게 목을 뽑고 약속이라도 한 듯,

표정들에 미소가 번진다. 그 모습을 보니 어머니가 생각난다.

팔순도 훌쩍 넘긴 모친께선 핑계 거리만 생기면 집에 다녀오고 싶어 하신다.

왜 안그러시겠는가. 평생을 살아오신 집이 거기 있고, 손 때묻은 세간과

두 손이 갈코리가 되도록 일구던 논밭이 거기 있는데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이 감옥같은 도시에 나와 함께 살기는 해도, 

마음은 항시 그곳에서 자유로운 당신이시다.

모친은 손맛이 참 맛깔스럽다. 그래서 장맛은 인근에 소문이 나있을 정도다.

장만큼은 한해도 빠짐없이 손수 담그셨는데 올해는 며느리가 대신 담갔다.

시집 온지가 스무 해가 넘는 며느리이니 이젠 넘겨주실만도 하건만,

물 얼마에 소금얼마를 넣고 메주와 숯과 붉은 고추 몇 개를 띄우라며

전화로 일러주기까지 하셨다. 그래도 못미더우신지 한번 다녀오자며

아이처럼 보채신다.   "야야, 집에도 산수유가 폈겠재?"

집엔 고목이 된 산수유가 열댓 그루나 울타리처럼 둘러서 있어,

꽃이 만개하면 무릉도원이 따로 있을까 싶을 만큼 곱다.

그래, 일단 한번 다녀와야 하리라. 꽃이 피고 안 피고가 무슨 대순가?

당신 마음이 거기 있음이거늘.  다음 주중에 다녀 오쟀더니 금세 아이처럼

표정이 환해지신다. 구순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고향은 어찌 가슴 절절한

그리움이 아니겠는가...


신청곡:  Evergreen / Susan Jacks

캐나다 출신의 포크가수 '수잔 잭스'의 1980년 작품으로 인기 차트에

오르지 못한 숨겨진 포크의 명곡.



서현희 


 - 할머니는 내 마음 속 라일락 -

 

그 날, 새벽을 흔드는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전화라니,, 조금은 의아하고, 조금은 불안한 음성으로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했더니, 수화기 너머에선 엄마의 젖은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희야 할머니께서 방금 돌아 가셨어"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비어갔습니다. 지난 아버지의 생신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커피 한 잔 씩을 마실 적에, 할머니께서도 커피 한잔을

맛있게 비우시던 모습이  마지막이었군요. 명주올처럼 호호백발 쪽진

낭자머리 할머니께선 92세이셨지만, 어찌나 정갈하게 자신을 가꾸시던지

할머니 몸에선 늘 은은한 냄새가 배어있었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할머니를 ‘라일락 할머니’라 부르면 할머니는 함박웃음으로 화답해 주시곤했지요.

당신의 방안에선 먼지 한 톨 묻어나는 걸 보지 못하였고,

주무시고 난 이부자리는 꼭 두부모처럼 반듯하게 손수 개키셨습니다.

치매라는 환상의 세계에 사시면서도, 서너살 짜리 증손녀가 곁에 있으면

옷도 갈아입지 않으시던 당신의 의식은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했었답니다.

할머니와 제가 한 방에서 잠을 잘 땐 할머니와 저는 꼭 연인 사이나

되는 것처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깍지를 낀 채 잠들었습니다. 전 이제 어디서 그런 따뜻한 이불을 덮을 수 있을까요?

제가 사다 드린 아이스크림을 그렇게도 좋아 하시고, 과일향 사탕을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하다가 환하게 웃으시던 나의 할머니!

"참 세상 조타,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어보고,, 차암 조타" 

할머니께서 가장 자주 하시던 말씀이 바로 ‘차암 조타’ 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하시면서도 ‘너무 늙어 부끄럽다며’ 저희 집에

오기를 꺼려하셨던 할머니... 결국 당신은 영영 가시거로군요.

할머니는 제 인생의 가장 내밀한 서정이고, 자연이며, 그리움입니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신청곡: Qui A Tue Grand Maman / Michel Polnareff

프랑스 출신의 프렌치 팝 가수 '미셸 뽈라레프'의 1972년 곡.



진경숙 


- 머리 삔 사연 -

  

아침에 일어나 꽃단장 하려고 거울 앞에 앉았습니다.

빗으로 머리를 빗고 머리 삔을 하려고 하는데, 여러 모양의 캐릭터 스티커

들이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듯합니다.

머리 삔을 하고 거울을 보니, 괜히 아침부터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네요.

사실, 어제 아침은 이렇지 않았거든요.

어제 아침에 머리 삔을 하려는데 삔에 있던 그림들이 다 벗겨지고 녹슬어서

도저히 할 수 없을 지경이 됐습니다. 그래서 괜히 한숨을 쉬었는데, 그 모습을 남편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더라구요. 아무튼 남편을 출근시켜 놓고,

예쁜 머리삔을 사기위해 팬시점에 들렀습니다.

삔 종류가 어찌나 많던지, 계속 구경하다가 마음에 든 것의 가격을

확인하니까 세상에,, 몇 만원하는 겁니다.

2~3만원하는 머리삔을 사자니까 괜히 한 달 생활비가 떠오르는 거있죠.

"에휴~"  그냥 또 한숨이 절로 나오더니, 터벅터벅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저녁이 되고, 회식 때문에 집에 늦게 온다는 남편의 전화에 혼자 외롭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늦게 집에 돌아온 남편은 얼큰하게 취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옷을 갈아입다 말고, 갑자기 봉투 하나를 내밀더군요. "당신,, 수고 하는거 알아. 당신 사고 싶은거, 당신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언제든지 사줄테니까. 그리고 이 돈은 내가 500원짜리 동전을 모았거든. 돈이 꽤 돼더라구. 그래서 지폐로 바꿨어. 이걸로 뭘할까 고민했는데, 우리 마누라 머리 삔을 사줘야겠더라구. 내가 직접 사려고 했는데 도무지 어떤 삔이 이쁜지 모르겠더라. 그러니 당신이 이쁜걸루 사“

남편이 건넨 봉투를 받자, 갑자기 마음이 울컥하며 오늘 하루 종일

속상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어제 살까 말까, 망설였던 그 예쁜 머리 삔을 오늘 사러가야겠습니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신청곡: I.O.U / Carry & Ron

독일 출신의 부부 듀오 '캐리 앤 론'의 1996년 작품으로 MBC 미니 시리즈 '애인'에 삽입되어 빅 히트한 노래.



 





2007-03-2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