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조회:
2006년 7월 27일 목요일 음악에세이 대본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46화 - 소나기를 맞다 


(M) 주제음 (소나기 / 부활)


여     뜨거운 여름햇살이

        가슴 속까지 달구고 있다.

(E) 힘들게 걷는 소리

여     택시비 몇푼 아껴보려다가

        이게 웬 고생이람.

        무거운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뙤약볕 아래를 걷는데

        온몸이 땀범벅이다.

(E) 열쇠로 문 여는데

여     집앞에 도착하자

        천국에라도 온 기분이 들었다.

        바로 이순간 전까진......


여2    (조금 멀리서) 이쪽으로 옮겨주세요. 607호에요.

(E) 다가오는 소리

여     처음엔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2    책은 맨 나중에요. 좀 많거든요?


여     그녀였다.

(M) 아름다운 이별 / 옥주현


(E) 열쇠로 서둘러 문 여는, 대문 닫고

여     내가 왜....

        그렇게 도망치듯이

        집안으로 들어와야 했을까.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남     당신 뭐해?

여     (깜짝 놀라는) 어? 어..... 언제 왔어?

남     방금. 그건 다 뭐야?

여     ......삼계탕 좀 하려구.

남     간만에 월차 쓰면서 좀 쉬지.


여     어떻게 할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입술까지 말라오고 있었다.


남     밖이 그렇게 더워?

여     어? 좀... 덥네...

남     어디 안좋은 거 아냐? 얼굴이 창백해졌는데....

(E) 쥬스 따르는

남     쥬스라도 마셔.

여     응.....

(E) 마시는

남     약이라도 사다줘?

여     (다급) 아니? 안돼.

남     안돼...? 

여     그러니까.... 밖이 너무.... 더워서....

남     괜찮아.

여     아니야 정말. 나 정말 괜찮아서 그래. 그냥... 옆에 있어. 나가지 마.

남     ........그래.... 그럼.


여     내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남편은 모른다.

        남편이 가장 사랑했던.....

        어쩌면 지금도 가장 사랑하고 있을지 모를 그 여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M) Manha De Carnaval / Astrud Gilberto


(E) 아주 멀리서 이삿짐 나르느라 시끌벅적한

여2    (아주 멀리서) 수고하셨어요. 이게 마지막 짐이에요.


여     베란다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본다.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산뜻한 단발머리며, 새하얀 피부며, 경쾌한 말투까지.

        언제나 나를 주눅들게 했던....

        그 여자......

(BG) 과거 회상으로 - Like Wind / S.E.N.S


(E) 사무실 소음

여     김봉덕 사우. 점심 안 드실건가?

남     왜 또? 나 돈 없다.

여     알았어, 내가 쏜다 뭐.

남     진짜지? 


여     5년 전, 그와 나는 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였다.

        물론, 취업 분야가 같기도 했지만....

        내가 그가 취직하려던 이 회사에

        일부러 원서를 넣기도 했다.

        그리고,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하면서

        우리는 부쩍 친해지고 있었다.

        난 그와 더욱 가까워질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던 셈이다.


(E) 복도 걷는

남     너, 혹시 기획부에 새로 들어온 신입 봤어?

여     아니? 왜?

남     ..... 내 이상형이야.

여     또 시작이다. 니 이상형은 어떻게 된 게, 버스만 타도 있고

        백화점만 가도 있고, 식당에만 가도 있냐? 어쩜 그렇게

        아무한테나 이상형이래?

남     이번에는.... 좀 틀려.

여     치... 틀리기는 무슨......

남     잠깐만...... 


(E) 누군가 또각또각 걸어오는

남     (용기 내어) 저... 안녕하세요?

여2    네?

남     저, 홍보실에 있는 김봉덕이라고 합니다.

여2    아, 네. 그러세요? 전 이번에 기획실에 새로 들어온

        한윤아라고 해요.

남     정말.... 반갑습니다. 한윤아씨.

여2    (웃음) 네. 선배님. 앞으로 잘 부탁드릴께요.

남     선배님은요 뭘~ 그냥 편하게 생각하시구요, 모르는 거나 불편한 거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해 주세요. 아참, 그리고 이거.. 제 명함.....

        젤 아래 폰 번호....

여2    네~ 고맙습니다. 저는 아직 명함이 안 나와서요. 나중에 나오면

        제일 먼저 드릴께요.

남     네? 제일 먼저? 감사합니다!!!

(M) 그대여서 고마워요 / 신승훈


여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관심을 보이는 여자.....

        예뻐 보일 리가 없었다.

        난 처음부터 그녀가 싫었다.


여     기막혀. (흉내 내는) 저는 명함이 안 나와서요~ 나중에 나오면

        제일 먼저 드릴께요???? 어우~ 딱 보니까 완전 불여시다~

남     무슨!! 딱 보니, 순진 덩어리구만.

        애가 아직 사회물을 안 먹어서 그런지, 순수해. 때가 안 묻었잖아?

여     그럼 사회물 먹은 난, 때가 묻었고?

남     넌..... 좀 그렇지... 아무래도.....

여     내 보기엔, 별루야. 너랑 그림도 안 나오고.

남     또....또.... 질투한다. 너 언제, 내가 좋다는 여자 괜찮다고 한 적

        있었냐? 하여튼... 질투의 여왕이야.

여     질투? 하아... 꿈도 크세요. 그래~ 그냥 그 불여시랑 사귀든가 말든가

        난 상관 없거든요?


여     .........라고 말은 했었지만, 정말 불안했었다.

        나는 수년간 말도 못하고 숨겨왔던 그 사랑을.....

        그녀가 단숨에 채 가 버릴 것만 같았다.

(M) 한 여름밤의 꿈 / 권성연


여     그리고 얼마 후......


여     저녁에 뭐해? 더운데 맥주나 한잔 할래?

남     나 약속 있어.

여     무슨 약속?

남     윤아씨랑.

여     어???

남     우리 사귀기로 했어.

여     어??????

남     놀랐지?

여     그런 말, 없었잖아.

남     내가 좀 세게 밀어붙였지. 아직 다른 사람들은 모르니까, 비밀 지켜줘        야 돼. 너니까 내가 얘기해 주는거야.

여     ......어. 물론이지.

남     축하 안해주냐?

여     축하는 무슨 축하야? 언제 깨질줄 알고?

남     두고 봐라. 가을 안에 국수 먹여줄테니까~ 먼저 간다.


(E)나가는 

여     그 여름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난 혼자서 맥주를 홀짝대다가, 또 혼자서 눈물을 찍어내다가.....

        그랬던 것 같다.

(M) 이별연습 / 임정희


여     두 사람은 정말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E) 백화점 소음

여     어느 일요일. 백화점에 갔다가...

        난 우연히, 어떤 남자와 쇼핑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게 됐다.

        내 남자가, 외도를 하고 있는 현장이라도 본 양,

        묘한 배신감이 밀려왔다.

        동시에, 왠지 모를 흥분감도 함께 느꼈다.


(E) 또각또각 다가가는

여     안녕하세요? (또박또박) 한윤아씨.

여2    (약간 당황, 하지만 침착하게) 네. 안녕하세요. 이런 데서 뵙네요.

여     그러게요. 쇼핑 중이신가봐요?

여2    네. 그럼...

여     남자친구세요?

여2    네? 아뇨. 그냥....


여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     그럼, 쇼핑 계속하세요. 전 가 볼께요.

(E) 또각또각 걸어가는데

여2    저기요~

(E) 빨리 뛰어오는

여     왜요?

여2    잠깐.... 얘기 좀 해요.


여     그녀의 표정엔

        불안함이 가득했다. 

(M) 슬픈정사 / Kiss Me Much OST


(E)까페 소음, 차 달그락 Before I Go / Yanni

여     커피 마셔요.

여2    네.... 

(E) 찻잔

여2    오해하실까봐요. 방금 그 사람은....

여     (OL) 됐어요. 나한테 변명할 거 있나요 뭐?

여2    사실 얼마 전에 선을 봤는데요. 부모님이 하두 권하셔서.

여     그럼, 우리 봉덕이는 뭐에요? 그냥 갖고 논 거에요?

여2    아니에요. 그런 거.... 저도 봉덕씨 사랑해요.

여     봉덕이 보기보다 순진한 애에요.

        괜히 상처 주지 말구요. 결혼 할 거 아니면 놔줘요.

여2    네? 아니... 선배님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세요?

여     뭐라구요? 

여2    좀 웃기네요. 선배님이 봉덕씨 어머니라도 되세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여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여2    뭐...에요?

여     내가 7년을 한결같이 좋아했던 사람이니까!

        그런데 한번도 난 그런 고백 같은 거 못해봤어!

여2    .....그래서요?

여     그런 사람을 가져놓고,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고 재는 너!

        싫고 가증스러운 거, 당연한 거 아니니?

(M) 내남자 / 박지윤


(E) 사무실 소음

남     은서야, 나 좀 봐.

여     어? 얘기해.

남     아니... 옥상에서 보자...

(E) 옥상 위, 바람 부는 소리 정도

여     무슨..일인데?

남     너, 윤아한테 무슨 소리 한거야?

여     내가... 뭘?

남     윤아가, 너랑 인연 끊어달래,

        아니면, 나와의 관계도 다시 생각해 보겠대. 

여     뭐가..어째?

남     무슨 소릴 한거야? 우리 윤아, 맘도 약한 앤데 도대체 무슨 소릴

        했길래....

여     걔,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착한 애 아니야.

남     뭐? 너 정말....

여     윤아, 딴남자 있어. 너 말고 딴남자랑 선보고, 그남자랑 쇼핑다니고

        그남자가 사준 옷입고 너 만나고 그래. 걔, 그러는 애야!

(M) 사랑이라는 이유로 / 서예나


여     사랑으로 용서되는 유치함은 어디까지일까.

        사랑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비겁함은 어디까지일까.

        내가 생각해도 너무 치졸하고 못난 방법으로

        난 그와 그녀를 갈라놓았다.


(E) 소주 따르는

여     그만 마셔.

남     윤아한테... 너무 심하게 화를 내버린 거 같애.

여     뭐라... 그랬는데?

남     그냥.... 다시 생각해 보자구....

여     그래. 그럼 차분하게 두 사람 관계를 다시 돌아봐. 그래도 되잖아.

남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걔 없인 안돼.

        윤아가 딴남자를 만났든, 더한 짓을 했든....

        내가 약자야. 내가 걔를 더 사랑하니까.

여     그렇게... 윤아가 좋아?

남     어. 은서야. 윤아가 좋아. 나는.... (취한 채 정신 잃는)

여     (한숨 쉬고, 작게 혼잣말) 그렇게 좋으니. 나는 하나도 안 보일만큼?

(E) 핸드폰 벨소리

여     그녀였다. 순간, 수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E) 전화 받는

여2    여보세요. 봉덕씨? (눈물) 봉덕씨 미안해.

        나는... 자기 그렇게 상처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윤은서가 자기한테 뭐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엄마가 하두 원하셔서 선봤구

        몇 번 만나긴 했지만, 자길 배신하겠단 생각은 아니었어. 믿어줘.

        그리구, 다신 안 그럴게. 응? 봉덕씨. 뭐라고 좀 해봐.

        나 지금 회사 앞 벤치에 있어. 이리로 좀 와줄래?

여     봉덕이 지금 나랑 있어요.

여2    여보...세요?

여     그리고, 그쪽으로 안 갈 거에요.

여2    윤...은서씨?

여     미안한데요, 내가 두 사람 갈라놓은 거 아니에요. 봉덕이가...

        그쪽한테서 마음이 떠난 거에요.

        이 사람은.... 당신한테 갈 생각이 없대요.

(M) Everytime / Britney Spears


여     얼마 후, 윤아는 회사를 그만 뒀고.

        곧이어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E) 캔커피 따는

여     마셔..... 

남     윤아 결혼식이 오늘이래.

여     어... 들었어.

남     은서야.... 나... 참.... 마음이 안좋다.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해줬는데....

        아직은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여     이렇게 힘빠진 너 보는 내 마음도.. 안좋아.

남     .....

여     너한테 윤아가 그렇듯이, 나한테 너도... 소중한 사람이야.

남     무슨.... 뜻이야...

여     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아. 그냥.... 나한테 기대도 된다는...

        얘기 해 주고 싶어.


여     모든 것이 즉흥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윤아가 그 남자와 결혼을

        한 것도, 그가 나와의 결혼을 선택한 것도. 한바탕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모든 일이 그렇게 순간적으로 이뤄졌다.

(M) 소나기 / 부활


(E) 쏴아~ 비오는 소리

여     그 모든 일은 3년 전에 일어났다.

        우리가 결혼하고 얼마 안 돼 그녀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언뜻 들었었는데. 

        그녀가... 바로 옆집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내 마음이 불안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남     비가 꽤 오네?

여     여보..... 우리 이사가는 거 어때?

남     갑자기 이사는 왜?

여     그냥.... 여긴 교통편도 불편하고 회사도 멀고...

남     공기 좋다고, 마음에 든다며.

여     그런데.... 이거저거 불편한 점들이 많아서.

남     그럼 당신이 알아서 해.


여     결혼 후의 그는 언제나 허수아비 같았다.

        모든 일에 흥미도 열의도 없었다.

        빈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할 때가 많았고.

        감정표현도 없었다.

        난 그게.... 슬펐다.

(M) 나쁜 여자 / 서영은


(E) 우산 위로 비떨어지는, 빗물 흥건한 도로 위를 걷는

여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를 우산으로 막아가며

        그와 함께 출근하는 길이었다.


여     그럼 내가 오후에 집주인한테 전화할게.

남     아직 계약기간도 다 안됐는데.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야?

여     그냥.... 말 난 김에 빨리 진행하고 싶어서.... 원래 이런 일은..


여     순간, 남편의 눈동자를 보며

        난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본 곳에.....

        그녀가 서 있었다. 우산을 놓쳐버린 그녀는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M) I Will Wait For You / Danielle Licari


남     ....어떻...게.... 여기....?

여     (얼른, 어색하게) 윤아씨..맞지? 이 동넨 어쩐 일이야? 

여2    아... 이사왔어요. 얼마 전에...

남     그랬..구나... 


여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왜 이사를 서두르는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난 할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건, 오히려 그녀쪽이었다.


여2    출근하던 길인 거 같은데, 가세요. 오랜만에.... 반가웠습니다.


여     그녀는 우산을 주워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나 같은 건, 옆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M) 나 같은 건 없는건가요. / 추가열


(E) 와이퍼 빗물 닦아내는

여     차를 타고 가면서도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불편해서가 아니라, 뭔가 생각에 깊이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     무슨 생각 해?

남     어? 어... 아무 것도....

여     사실... 얼마전에 난 먼저 봤었어.

남     그래서 이사가자고 했던 거고.

여     그래. 

남     그것 때문이라면, 이사까지 갈 필욘 없어.

여     아닌 것 같은데? 지금 당신 표정, 행동, 얼마나 날 불안하게

        만드는 지 알아?

남     미안해..... 


여     하지만 그는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딴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M) My Heart Always Goes / Anne Vada


(E) 비내리는

여     그리고 며칠 후

        비가 많이 내리던 날 밤이었다.

        먼저 퇴근한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던 그 사람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왠지 조급한 마음에 베란다를 서성이던 나는

        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모습을 보고 말았다.

        취해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하고 걸어오는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E) 계단 마구 뛰어가는

여     어떤 정신으로 현관까지 뛰어 내려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바로 저 앞에, 내 남편과 그 여자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2    (조금 멀리서) 이제 들어가세요. 많이 취했어요.

남     윤아야... 그때.. 내가 미안했다.

여2    그 말만 벌써 몇 번째야. 다 지난 일 갖구 왜 그래요.

        지금 생각해 보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내가 너무 어렸어.

남     이제 와서... 아무 소용 없는 얘기겠지만....

        나... 살면서 내내 벌받는 기분이었어. 너한테 잘못한 거...

        이렇게 벌을 받는구나.... 어떤 일을 해도 기쁘지 않고....

        설레지도 않고...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느낌....

        그렇게 살았어......

        은서한테도 미안하고.... 너한테도 미안해하면서.... 그렇게....


여     거기까지 듣고 난 몸을 숨겼다.

        내가 그 사람에게 벌이었구나.

        나와 살면서 그 사람은....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구나.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고, 그저 내것으로 갖게 되면 괜찮을 거라고.

        사랑은..... 살면서..... 생기기도 할 거라고.....

        그렇게 믿었는데. 믿고 싶었는데.

        아니었다. 

        입술이 떨려오고,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눈물이 흘렀다.

(M) 굿바이 / 이수영


(E) 벨 누르는

여2    누구세요? 

(E)나오는, 문 여는

여2    .....무슨 일이세요?


여     열린 문틈으로, 이삿짐들이 보였다.

        내 시선을 느꼈나보다.


여2    저, 다시 이사가요.

여     우리... 때문인가요?

여2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이제 저... 신경 안쓰셔도 될 거에요.

여     나 잠깐 들어가도 되죠?

(E) 찻잔에 커피 따르는

여     나는 그쪽 신경 안쓸 수가 없어요. 그동안 쭉... 신경 써왔어요.

        어떻게 들리는 소문이든, 소식이든... 더 자세히 알려고 귀기울여

        왔구요. 늘 궁금해했어요.

여2    미안해요. 그냥 저는.. 살면서 우연히 한번 정도 봉덕씨 만났으면 좋        겠단 생각 하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만났고. 이제 정말 괜찮아요. 두         분이 행복해지는 거, 진심으로 바래요.

여     나랑 있으면... 그 사람이 행복해지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M) When I Told My You Love Me / Jessica Simpson


남     방금 뭐라 그랬어?

여     가도 괜찮다구......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제 가도 괜찮아.

남     (괜히 화내는) 하...참.... 그걸 말이라구..... 하... 말이 되는 소릴 해!

여     당신, 결혼해서 처음으로... 화내는 거 알아?

남     응?

여     그동안은... 웃지도, 화내지도,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잖아.

남     ........

여     당신 화내니까... 오히려 시원해. 

        (울먹이는) 사람이....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순 없나봐.

        난...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알았어. 안되는 거.

(M) 안되겠니 -조은


(E) 새소리

여     시간이 지났다.

        세 번의 다른 계절이 지나.

        또 다시 여름이 왔다.

        새로 구한 직장도 좋고,

        새로 이사온 집도 좋다.


(E) 자전거 출발하는

여     차를 팔고, 자전거를 한 대 새로 샀다.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길엔

        양옆에 푸른잎의 나무로 우거진

        오솔길이 하나 있다.

        난 그곳을 지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여름 향기가 있다면....

        내가 이곳을 지날 때 느끼는 바로 그 향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M) Love Affair / K.D. Lang


(E) 공원 소음

여     일요일 오전, 읽으려고 뒀던 책을 한권 들고

        공원에 갔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그곳 한켠 그늘에서

        난 마음에 드는 구절에 줄을 쳐 가면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저만치 가는 그들을 보게 됐다.


여2    (멀리서) 오늘 소나기 온다던데. 우산 가져올 걸 그랬어.

남     왜? 난 비맞아도 괜찮은데. 간만에 비 좀 맞고 싶다.

여2    치.... 산성비 맞고 머리 다 빠지게?

남     왜? 난 머리 좀 빠져도 중후할 거 같지 않아?

여2    뭐?? 

두사람 (웃는 소리 멀어지고)


여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목멍울이 따뜻하게 울음이 고인다.

        글귀 위로

        눈물이 떨어진다.

        그곳엔 이렇게 쓰여 있다. 

        ‘사람들은 끝을 가보지 않고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달아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냥 그렇게 애달파하면서 살것을.....

        그냥 그렇게 그리워하면서 살것을.... ’

(M) 주제음 소나기 / 부활





2006-07-25(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