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조회:
2004년 12월 9일 목요일 지금 듣고 계신 이 노래는+음악에세이 대본

 

M   Winter Time / Steve Miller Band

 미국 출신의 록 그룹으로 1977년 작품. 혹한기의 겨울의 추위를 멋지게 표현한 겨울을 대표하는 노래.

 

In the winter time

When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wind blows so chill

And the birds have all flown for the summer

I'm callin', hear me callin', hear me callin'

겨울이 되어

나뭇잎들은  갈색으로 변하고

찬바람이  불어올때면

여름철새는 따뜻한 남쪽지방으로 날아가고

나는 허공에 소리치며, 내 목소리를 들어 봐요

 

In the winter time

When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wind blows so chill

And the birds have all flown for the summer

I'm callin', hear me callin', hear me callin'

I'm callin', hear me callin', hear me callin'

In the winter time

겨울이 되어

나뭇잎들은  갈색으로 변하고

찬바람이  불어올때면

여름철새는 따뜻한 남쪽지방으로 날아가고

허공에 소리치며, 내 목소리를 들어 봐요.

나는 허공에 소리치며, 내 목소리를 들어 봐요

겨울이 되면

 

In the winter time

When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wind blows so chill

And the birds have all flown for the summer

I'm callin', hear me callin, hear me callin'

겨울이 되어

나뭇잎들은  갈색으로 변하고

찬바람이  불어올때면

여름철새는 따뜻한 남쪽지방으로 날아가고

나는 허공에 소리치며, 내소리를 들어 봐요.

 

M   눈의 꽃 / 박효신

 KBS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주제가.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162화 - 내 생애 단 한번

 

1   Ace Of Sorrow / Brown And Donna

 미국 출신의 포크 듀오로 년도 미상의 노래... 국내에서는 트윈폴리오가 60년대 후반 '슬픈운명'으로 번안해 잘 알려진 노래.

 

2   굳세어라 금순아 / 현인

 1953년 발표곡.

 

3   California Dreamin' / Mamas & Papas

 포크 록 그룹 '마마스 & 파파스'의 데뷔 히트곡으로 1966년 작품.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4위까지 기록했던 60년대 포크의 명곡.

 

4   Keep On Running / Tom Jones

 70년대 발표돼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탐 존스의 대표적인 히트곡.

 

5   She's A Lady / Tom Jones

 1971년 싱글 차트 2위까지 기록했던 노래.

 

6   Love Me Tender / Elvis Prelsey

 1956년 싱글 차트 1위 기록.

 

7   슬픈 운명 / 트윈폴리오

 

8   Scarlet Ribbons / Roger Whittaker

 미국 출신의 컨트리 가수로 1970년대 컨트리 풍으로 리메이크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

 

9   Ace Of Sorrow / Brown And Donna

 

10  And I Love Her / Beatles

 1964년 싱글 차트 12위 기록.

 

11  Barco Negro(검은 돛배) / Amaila Rodrigues

 

12  I Love How You Love Me / Bobby Vinton

 1968년 #9위 기록.

 

13  To Treno Fevigl Stis Okto / Agnes Baltsa

 그리스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가 1986년 부른 곡으로 기차를 타고 떠난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언제까지나 기다린다는 내용의 노래. 그녀의 명반 '내 조국이 가르쳐 준 노래(Songs My Country Taught Me)'에 수록. 작가 신경숙의 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데'란 제목을 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

 

14  La Boheme / Charles Aznavour

 샹송 가수로 1969년 작품.

 

15  Maggie / Jean Redpath

 스코틀랜드 출신의 포크 여가수로 80년대 발표한 노래.

 

16  As Time Goes By / Chet Baker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제가로 쳇 베이커가 짙은 분위기로 리메이크했음.

 

17  P.S. I Love You / Mel Torme

 매력적인 저음의 벨벳 보컬로 재즈사에 한 획을 그었던 남성 가수로 멜 토르메의 1980년대 리메이크 곡.

 

18  Ace Of Sorrow / Brown & Donna

 

    음악에세이 노래가 있는 풍경

    162화 내 생애 단 한 번

 

(M) 주제음 Ace Of Sorrow / Brown And Donna

(E) 비행기 착륙음

남  몇십년만에 돌아온 고국인가...

    바깥 풍경을 보려고

    비행기의 작은 창문에 얼굴을 대본다

    짙은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E) 비행기 안내음 (웰컴 투 서울~ )

남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 받은 한 통의 전화는

    이곳 서울로 나를 이끌었다

    낯선 남자의 전화였다

    그는 자기 아내의 부고를 알리고 있었다

    아내의 이름은 윤소이라고 했다

 

(E) 차 달리는 소리

남  택시는 한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따라

    속력을 내서 달린다

    한강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들은

    각각 환상적인 색채의 빛을 발하며

    밤의 정취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저곳에 강나루가 있었고, 또 저곳으로 장삿배가 드나들었는데...

    배가 들어오면 사람들이 까맣게 몰려들어 흥정을 했고

    여자들은 얕은 물가에서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빨래를 했었다

(E) 자동차 창문 열면 바람 불어오는 소리  

남  한강의 바람은 지금보다 훨씬 매서웠고

    하루하루의 삶이 남루하고 고단했던 우리는

    겨울을 가장 두려워했다

    도시 구경 처음 온 시골 꼬마처럼

    창밖 풍경에 넋을 잃고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옛기억에 적잖이 당황한다

    아무리 되살리려 애써도 희미하기만 했던 기억들이

    변해버린 서울의 풍경 앞에서 갑자기 뚜렷해져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M) 굳세어라 금순아 / 현인

 

(E) 시장 시끄러운 소음

남  전쟁이 끝난 뒤. 동대문 시장은 또 하나의 전쟁터였다

    한집 건너 한집. 전쟁 때문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던 시절.

    남편을 잃은 과부와 자식을 잃은 노파가

    시장에 포목상이나 생선 가게를 차렸다

    전쟁통에 일터를 잃거나 다리를 잃은 청년들도

    시장 한 구석에서 일을 시작했다

    모두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사연들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는 터라

    장사는 장사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그 척박한 시장통 속에 나도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둬야 했던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할 욕심으로 악착같이 장사를 했다

    미제를 최고로 쳐주던 시대였다

    영어를 할 줄 알았던 나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을 팔았다

    정해진 물건은 없었다

    초컬릿, 가루분, 나일론 양말, 커피 가루 등을 판 돈을

    거의 쓰지 않고 모아 두었다

    당시 내 꿈은 하나였다

    살기 위해 바둥거려야 하는 이곳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하는 것. 그 뿐이었다.

(M)     California Dreamin' / Mamas & Papas

 

(E) 시장 소음

남  (물건 파는) 미제 커피 가루 있어요. 10년을 신어도 안 늘어나는

    나일론 양말 있어요

(E) 다가오는

여  커피 가루 한봉지만 주세요

 

남  한복 치마를 동여묶은 걸로 보아

    결혼한 새댁인 듯 싶었다

    당시 결혼한 여자들은 치마 뒤를 돌려서 묶었고

    처녀들은 불편해도 멋을 내느라 묶지 않았었다

 

남  이것만 필요하세요? 저기... (속삭) 이거 가루분인데...

    저도 딱 한개밖에 못 빼왔거든요? 아무한테나 안 팔아요.

여  저는 필요 없는데...

남  안 사도 좋으니까 이거 향이나 맡아봐요.

 

남  여자가 가루분을 코밑에 대고 향을 맡는다

    탐은 나지만 조금 망설이는 눈치다

 

남  끝내주죠? 이게 요즘 미국 아가씨들이 다 바르고 다니는 거잖아요.

여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남  .... 네?

여  미국 가 봤어요?

남  ........ 아니 뭐 그건 아닌데...

여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 순 거짓말쟁이네...

 

남  내게 가루분을 돌려주며 툭 쏘아붙인 여자가

    홱 돌아서 걸어가버린다

    사람들 사이로 여자가 사라져 버린 후에야 깨닫는다

    

남  커피값...!!! 저 여자가... 내 커피값!!!

(E) 후다닥 뛰어가는 소리

(M) Keep On Running / Tom Jones  

 

남  일진이 안좋으려고 했는지

    그날은 일이 계속 꼬였다

    난 그게 다 그 재수없는 여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다시 만나지지 않을까 하고

    그 비슷하게 생긴 여자를 만나면

    다시 한번 돌아보는 게 습관이 될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어머니의 생신이 다가왔다

    큰맘 먹은 난 어머니에게 한복감을 선물하기로 하고

    시장 한 바퀴를 돌고 있었다

    장이 모두 파할 시간이어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문득 어느 포목상 앞에서 멈춰섰다

    은은한 옥색의 한복감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가 입으시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여  한복감 보시게요? 누가 입으실 건데요?

남  예, 저희 어머니.... 어???

 

남  한복 치마를 질끈 동여맨 그 여자.

    그 여자였다.

(M) She's A Lady / Tom Jones

 

남  어~ 아주머니. 잘 만났네요. 내 커피가루값 주세요

여  .... 누구세요?

남  나 기억 못해요? 요전날 나한테 커피가루 사갔잖아요. 아니지, 사간 게 아니라

    그냥 가져갔지!!

여  네?

남  나보고 미국 가봤냐 어쨌냐 성질만 내고는... 커피값은 계산도 안치르고

    갔잖아요!!

여  아~~ 그 미제 파는 아저씨!

남  이제 생각나요? 얼른 돈이나 줘요

여  내가 돈 안줬나?

남  어? 이 아주머니가 완전 딴소리시네! 그렇게 잡아떼면 내가 넘어갈 줄 알아요?

여  잡아떼긴요. 알았어요. 생각해 보니까 그냥 왔던 것 같기도 하네.

    그럼 이렇게 해요. 우리집에서 한복 하면 내가 커피값 빼고 쳐드릴께

남  뭐에요?

여  아까... 이거 보지 않았어요?

(E) 한복천 펄럭 펼쳐 보이는

여  은은한 옥빛이에요. 너무 우아하고 예쁘죠?

 

남  마치 가을 하늘 한쪽을 똑 떼어다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빛깔이었다

    난 화내던 중이었던 것도 잠시 잊고

    그녀가 펼쳐 보인 한복천을 바라보았다

    

여  어때요? 이걸로 끊어드릴까?

남  .... 네.... 그렇게 해주세요

(M) Love Me Tender / Elvis Presley

 

남  여자는 커피값보다 훨씬 많은 돈을 계산에서 빼주었다

    그동안 이를 갈았던 그녀에 대한 내 복수심이 왠지 머쓱해졌다

    그후로 포목점 앞을 지날 때마다

    난 그녀와 눈인사를 나누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가벼운 인사말을 주고 받았고

    더 지나자, 잠시 앉아서 사는 이야기를 할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윤소이였다

    윤소이 역시 동대문 시장 속의 상인 답게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혼인을 치른 날, 남편이 동원군으로 끌려갔고

    전쟁이 끝난 지금까지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혼인이 치러졌으니 시댁 식구가 되어

    그집에서 시부모를 봉양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여  다음에 들를 때, 커피 가루나 한봉지 더 갖다 줘요

남  네. 무슨 커피가 그렇게 자주 떨어져요?

여  밤에 잠이 잘 안와서요. 난 잠 안 올 때 그거 뜨거운 물에 타서

    먹고 나면 잠이 오던데...

 

남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오는 게 보통인데

    참 이상하다고 말을 하려다 만다

    깊은 밤. 혼자 커피를 타서 마실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의 깊은 외로움이... 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M) Ace Of Sorrow / 트윈폴리오

 

남  요전에 커피값 대신 우리 어머니 한복값 깎아줬잖아요

여  네. 그런데요?

남  이번엔 커피값 대신 시간 좀 내줄래요?

여  .... 시간요?

남  나한테 요즘 취미가 생겼는데요. 판을 사모으는 거에요. 내가 좋아하는

    팝송들..

여  구두쇤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요?

남  이번에 좋은 판이 나왔다고 해서 사러 가려는데

    (조금 망설이다) 같이 가줄래요?

(M) Scarlet Ribbons / Roger Whittaker

 

(E)사람들 소음

남  다음날 종로

    그녀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한복을 동여맨 여자를 찾기 위해

    내 눈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녀가 바로 앞에 나타날 때까지

    다른 곳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내 앞에서 웃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다른 사람 같았다

    단정히 틀어올렸던 머리를 풀고

    하얀색 블라우스에

    당시 유행하던 일본 빌로드 천으로 만든 치마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자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여  (변명하듯) 나들이 나간다는데.. 입을 옷도 없고.. 심심하기도 하고... 해서...

    옷을 좀 만들어 봤어요. 양장이 좀 어색한가요?

남  아뇨.. 시부모님이 장사 안하는 날 외출한다고 뭐라고 안하세요?

여  .... 그냥요....(얼버무리며) 가요

 

남  그녀는 뭐라고 변명을 하고 나왔을까.

    오랜만의 나들이를 위해 옷을 지어 입고

    가슴 졸이며 시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했을 그녀.

    그녀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M) Ace Of Sorrow / Brown And Donna

(E) LP 판 느낌으로 지직거리는 음반(You Are My Destiny / Paul Anka)

(50년대 유명 팝송/ 조용하고 애잔한 느낌 - 이 음악이 주제음이 됐으면 합니다)

남  이게 요즘 미국에서 엄청 유행하는 노래거든요.

여  .... 좋다...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암튼 좋네요. 이거 살거에요?

남  네~!

 

남  자신있게 계산을 하러 갔던 나는 조용히 돌아서야 했다

    가지고 온 돈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E) 문 열고 나오는

 

남  (변명하듯) 저건.. 다른 거보다 비싸네...

여  내가 돈 빌려줄까요?

남  아니에요. 사실 꼭 갖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나중에 사도 돼요.    

    에이, 이 돈 남았는데... 우리 이걸로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갈래요?

 

남  죽기 살기로 돈을 모으고 있던 나였다

    음반을 사려고 했던 돈이 남았다고 해서

    그 돈으로 뭘 사먹을 형편이 못됐다

    하지만 그날만은 그러고 싶었다

    그녀가 지어입고 나온 새옷이 아깝지 않게

    그녀가 시부모님에게 했던 거짓말이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M) And I Love Her / Beatles

 

(E)포장마차 도마질 소리

남  잘해 주고 싶은 마음만 컸지

    그녀를 데리고 기껏 들어온 곳은

    성북동 근처의 작은 포장집이었다

    꼬치에 끼워진 오뎅을 먹으면서도

    그녀는 무척 즐거워했다

 

여   (흥얼거리는)

 

남  아까 들은 노래의 음을 서툴게 흥얼거리며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는 모습이 무척 예뻐 보였다

    

남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요?

여  네?

남  난 돈 모아서 미국 가 공부할거에요. 자리 잡히면 어머니랑 동생들도

    미국으로 데려가고... 거기서 성공해서 잘 살 거에요. 소이씬요?

여  저는.... (망설이다) 잘 모르겠어요

남  남편이 계속 돌아오지 않으면... 그래도 그렇게 살거에요?

여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어떻게 죽고 싶은지는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남  .... 어떻게 죽고 싶은데요?

여  내가 이 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죽고 싶어요

남  그게 다에요?

여  네. 내가 어떻게 살지는 잘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가장 행복했다고 떠올릴 순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M) Barco Negro / Amailia Rodrigues

 

남  그후로도 우리는 종종 우리들만의 나들이를 나갔다

    나들이라고 해봤자, 눈 오는 종로 거리를 걷거나

    단골이 되어버린 성북동 포장집에 가서 오뎅을 먹거나 하는 게

    전부였지만. 삶에 찌든 우리에게 그런 시간은

    큰 기쁨이 되었다.

(E) 낙엽 밟는 소리  

 

남  우리 다음 노는 날엔 좀 더 멀리 가볼까요?

여  (놀라지만 기대) 네? 어디루요?

남  기차 타고 좀 멀리요. 청량리역에서 기차 타고...

여  ....... 기차요?

남  힘들면 무리하진 말아요. 시부모님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테니까..

여  아니에요. 여고 친구들이랑 소풍 나간다고 하죠 뭐...

 

남  다음날부터 난 더 필사적으로 장사를 했다

    이제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을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찬바람에 손이 부르트고,

    하루 종일 입씨름을 해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M) I Love How You Love Me / Bobby Vinton

 

(E) 기차 소리 (옛날식)

남  나들이 복으로 한껏 멋을 내고 역사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그날...

    드문드문 앉아 있던 사람들 눈엔

    목을 빼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내가 초라해 보였나보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귓속말을 하기도 하고

    기차를 타러 가면서 한번씩 뒤돌아보기도 했다

    표 끊는 곳에 앉아 있는 남자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얼른 다른 곳을 보는 것이

    몇시간째 그렇게 서성이는 나를 주시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전화도 핸드폰도 없던 그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하루를 꼬박

    청량리역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보냈다

(E) 바람 소리 + 걸어나오는 소리

남  어둑어둑해진 역 앞을 걸어나올 때

    나를 휩쓸고 가던 바람이

    내 생애 가장 차가운 바람이었다

(M) To Treno Fevigl Stis Okto / Agnes Baltsa

 

(E)  시장 소음

남  며칠 동안 포목점 앞을 서성여 봤지만

    그녀를 볼 순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멀리서였지만, 초췌해진 그녀의 얼굴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원망보다 반가움이 앞서 달려가려다 멈춰섰다

    그녀의 옆에는 다리 한쪽을 절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한눈에도 그녀의 남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남편은 그녀가 옷감 옮기는 걸 도와주기도 하고

    그녀가 피로해하는 것 같자

    어깨를 주물러주기도 했다

    모든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선명히 알 수 있었다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설핏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듯 했다

    난 그대로 시장을 빠져 나왔다

    얼마 후, 난 미군부대에 다니던 친구의 도움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녀에게 말했던 내 꿈은 이루어졌다

    난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자리를 잡아 가족을 데리고 왔고

    학자로 대학 교수로 큰 명성을 얻었다.

(M) La Boheme / Charles Aznavour

 

(E) 차 멈추고 내리는 + 상가집 소음

남  전화 속의 남자가 불러준 주소대로 찾아왔다

    동네가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주소가 옛날 그집일 줄은 몰랐다

    가끔 늦은 밤 헤어지게 될 때면   

    남들의 눈을 피해 그녀를 데려다 주곤 했었다

    사는 동안 잘 가꿨음이 분명한 오래된 이 집은

    이층 삼층의 연립주택 가운데에서도

    전혀 초라하지 않고 고고히 아름다웠다

(E) 한옥문 열고 들어서는 + 상갓집 소음

남  그 안으로 들어서면서도

    난 내가 왜 이 먼 곳까지 왔어야 했는지

    또, 그 남자는 나를 어떻게 알았으며

    왜 윤소이의 부고를 내게 알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상갓집은 적당히 붐비고 있었다

    그리고 반질반질하게 잘 닦인 마루 위로

    한 노인의 사진이 보였다

    주름으로 뒤덮인 얼굴 속에서

    그 시절 아름답던 소이의 모습을 찾아볼 순 없었지만

    노인이 입고 있는 옥빛 한복으로 소이임을 알 수 있었다

    가을 하늘 한쪽을 떼어다 만든 듯이 곱고 청랑한... 빛깔이었다

(M) Maggie / Jean Redpath

 

남  상주와 인사를 하고

    내게 전화를 한 그녀의 남편과 만났다

    그는 내 얼굴을 금방 알아보았다

    어떻게 나를 알았으며, 무슨 방법으로 연락을 했냐고 물었더니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알아왔노라고 대답했다

    내가 미국에서 학자로 이름을 떨치면서부터...

    윤소이는 나에 대한 모든 기사를 가위로 오려

    앨범에 모으고 있었다고 했다

    남편은 한번도 그에 대해 아는 척 하지 않았지만

    묻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녀가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M) As Time Goes By / Chet Baker

 

남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마음 속에 품고 평생을 살았다면

    그녀를 미워하고, 또 나를 미워할 법도 한데

    그녀의 남편의 얼굴에선 한점의 적개심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내게 고마웠다고 했다

    자신은 아내와 헤어져 있는 동안 한쪽 다리를 잃어버렸고

    아내는 자신과 헤어져 있는 동안 한쪽 가슴을 잃어버렸다고..

    그래서 평생 서로에게 미안해하면서

    서로를 아껴주면서 살 수 있었다고...

    그녀가 잃어버렸다는 한쪽 가슴 속에 내가 살고 있었구나...

    난 다 잊고 살았는데, 그녀는 한쪽 가슴을 잃어버릴만큼

    아프게 나를 그리워하면서 살았구나....

    굵게 주름진 얼굴 위로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남편도 조용히 눈가를 훔쳤다

(M) P.S. I Love You / Mel Torme

 

남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 나에게 그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오래전부터 아내가 소중히 간직해 오던 것인데

    분명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일 거라고 했다.

    아주 낡은 포장지를 뜯자

    그 속에서 LP 판이 나왔다

    그녀와 처음 나들이 나갔던 그날.

    내가 사려고 했지만 돈이 부족해 사지 못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쪽지 한 장이 툭 떨어졌다

(E) 펼쳐 보는

여  그동안 시부모님 몰래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샀어요

    오늘 당신을 청량리역에서 만나면 주려고 해요

    내 선물, 부담갖지 말고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날이 그날이었거든요

    당신과 함께 처음으로 나들이 나갔던 바로 그날...

    죽기 전에 내가 떠올릴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바로 그때가 될 거에요.

    내 생애 단 한번...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당신일거라고 생각해요...

(M) LP 판 느낌으로 음악 흐르며 (Ace Of Sorrow / Brown And Donna)

남  그녀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를 생각해 주었을까..

    50년만에 내게 도착한 그녀의 선물을 품에 안은 채

    난 오래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M) 음악 계속 흐르며 엔딩 -  

 





2004-12-09(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