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 표준FM > 격동 50년 방송 : AM 11시40분 ~ 12시    해설 : 원호섭   작가 : 이석영   연출 : 오성수
방송 작품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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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70화 민주화 연대기(年代記)
  69화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68화 16대 총선과 낙천·낙선 운동
  67화 참여정부의 도전과 위기
  66화 아홉 굽이 헌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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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화 문민정부, 개혁의 시작과 끝
문민정부, 개혁의 시작과 끝


극본: 김광휘

연출: 오성수


*기획의도


 현재 노무현 정권의 최대 화두도 개혁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해찬 국무총리, 유시민 장관으로 이어지는 이상추구형 개혁파와 고건 전 총리, 정동영 의장, 염동연 사무총장 등으로 대별될 수 있는 온건합리주의의 최종적 목표도 개혁인 것이다. 따라서 지난 1993년에 출범하여 엄청난 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하였던 문민정부의 개혁에 대한 도전과 실패를 살펴보는 일은 현재의 정치를 위해서도 미래의 정치를 위해서도 유용한 일이 될 것이다.

 YS 정권, 그러니까 문민정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은 ‘개혁’ 그 자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개혁을 진행 시켜 나갈 때 그 의도가 순수하지 않거나 깊은 철학이 없이 이벤트 형으로 진행해 나가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적으로는 10여 년 전의 지난 역사에 지나지 않지만 YS 문민정부의 개혁과 그 실패를 살펴보는 일은 오늘의 개혁을 진행시켜 나가는 주체자들이나 국민들이 거울로 삼아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줄거리


 우리의 현대 정치사 속에서 김영삼, 즉 YS라는 존재는 특이하다. 20대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8선 이상의 직업 정치인이 되고 야당 지도자가 된 YS의 전력은 화려하다. 그러나 평생 야당 정치인으로 투쟁을 업으로 삼아 온 그는 사실상 대통령감이 될 수 있느냐하는 명제에서는 늘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그래서 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에게 밀리고 대권을 놓치고 나자 참모들은 YS의 ‘자질론’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른바 상도동계의 민주 인사들과 차남 현철은 92년 대선을 앞두고 YS라는 대통령 후보에게 대통령 자질을 가질 수 있도록 동숭동팀이라는 특별 싱크탱크팀을 구성한다. 그 팀의 총책은 전병민이라는 인물이었고 연락책은 차남 현철이었다. 이 동숭동팀의 노력과 시운이 맞아 떨어져 YS는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통령에 당선된 YS는 ‘성역 없는 사정’과 문민정부라는 청사진으로 개혁을 시작한다. 검찰 조직을 통하여 역대 대통령과 기득권층의 비리를 조사하고 그들의 부정축재 내역을 조사해 나간다. 그 실무를 맡았던 검사는 중수부의 함승희 검사였다. 그런데 개혁의 청사진을 만들고 가다듬는 전병민과 김정남 수석이 여러 가지 과거 전력 때문에 도중하차하게 되자 개혁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함승희 검사가 조사한 비리 속에는 노태우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의 어마어마한 정치 자금과 부정 축재가 있었지만 바로 그 판도라의 상자 속에는 이원조를 통해 받았던 YS 자신과 가신들의 정치자금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YS는 절대로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자신과 가신들의 과거가 함께 담겨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덮어 버린다. 그리고 함승희 검사를 서산 지청장으로 내보낸다. 그러나 큰 틀의 개혁은 지속해 나간다. 예를 들면 박정희 정권 이후 대한민국 군을 좌지우지하고 쿠데타까지도 할 수 있었던 ‘하나회’를 숙청한다. 그리고 기득권층들이 더 이상 검은 돈을 숨길 수 없도록 ‘금융실명제’를 전광석화처럼 실시한다. 이런 와중에서 전임 국회의장이나 다선 의원들이 재산 공개를 통해 자진 사퇴를 하고 YS 당선을 위해 애썼던 많은 기득권층이 여론 재판에 의해 정치적 생명을 박탈당하게 되자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회자되면서 YS는 자신의 개혁을 위해서는 누구도 희생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다. 그리고 YS 정권의 출범과 함께 구포 열차사고, 서해 페리사고, 항공사고 같은 대형 사고가 이어지게 되어 YS의 인기는 출범 당시 90%에서 임기 2년차를 넘어선 94년에 들어서는 30%대로 급강하 하게 된다.

 너무나 급격한 개혁, 특히 차남 현철을 중심으로 한 신흥세력의 발호, 원칙 없는 사정 같은 일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YS 정권이 인기를 잃게 되자 YS는 돌파구를 찾게 된다. 바로 그때, 국회에서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전임 대통령의 비자금을 공개한다. 그렇게 되자 YS는 국면전환을 위한 제 2의 개혁 프로그램을 내놓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역사바로세우기’였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에 영국으로 나가 있던 DJ가 들어와 정치 재개를 선언하고 나서자 YS는 DJ의 정치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광주문제까지도 포함하여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의 역사적 심판을 준비하게 된다.


*인물구성


김영삼, 김현철, 김대중, 정주영, 한승주 (비서실장), 서석재 (총무처장관)

김영수 (민정수석),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함승희 (대검 중수부 검사)

전병민 (동숭동팀 총무), 김정남 (교문수석), 김덕룡 (정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