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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공화국
극본: 이영미
연출: 오성수
*기획의도:
정권을 가진 권력자들의 주변에는 그 권력의 힘을 얻어 일신의 안돈을 꿈꾸는 정치 브로커들이 상존하고 있다. 또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보다. 때문에 정치 브로커들은 그 정보를 매개로, 권력과 기득권을 흥정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정보기관인 안기부나 국정원이 그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국정원의 불법 도감청이 우리 사회에, 나아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우선 국정원의 감청이나 도청의 실태가 드러나면서, 이들에 대한 원활한 첩보 수집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국정원 본래의 업무가 소홀해져 국익에 적잖은 피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 저하의 문제도 있다. 세 번째, 사회 전반적으로 불법 도청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건전하고 생산적인 사회 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때문에 개인의 이익이나, 정권의 목적을 위해 국정원을 수단으로 이용한 인물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단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에 <격동 50년 제56화 ‘도청공화국’>을 통해, 불법 도감청의 문제점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특히 불법 도청이 자행되었던 정치적 배경을 YS 정권, 97년 대선 직전, DJ 정권으로 나누어 면밀히 살펴보고, 이들이 불법 도청의 유혹을 어떻게 받았으며, 불법으로 취득한 정보를 이떻게 이용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국익에 어떤 폐해를 가져왔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줄거리
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2년.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근무하던 공운영은 대공정책실 정보관으로 근무하던 중, 미림팀장으로 임명된다. 미림(美林)팀의 역사는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인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정식 명칭은 <국내 정보 수집부서 산하 여론조사팀>이었다. 이들은 주로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에 대해 불법적인 도청 활동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고, 그렇게 수집된 정보는 정권 핵심 인물들에게 제공되었다. 그러나 도청의 수준은 사찰 대상 정치인들이나 언론인 등이 드나드는 업소의 종업원에게 도움을 받는 정도였다. 바로 이 미림팀의 업무를 좀더 과학화 하고 체계화 해서 관리하라는 임무가 공운영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공운영은 일부 요원들을 직접 선발해 훈련을 시키면서 본격적인 도청업무에 매진했다.
1993년 YS가 집권하면서 문민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문민정부의 김덕 안기부장은 미림팀을 해체한다. 그 과정에서 몇 개월 간 미림팀 요원들은 무보직 상태로 방치되었고, 공운영은 이에 극심한 분노를 느끼며, 상황에 따라 언제 도태될는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1994년 오정소가 대공정책실장에 부임해 오면서 미림팀은 재결성 된다.
오정소는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으로, 사실상 안기부 내 김현철의 눈과 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미림팀을 통해 입수된 모든 정보는 김현철과 대통령 정무수석이던 이원종에게 직보 되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찰 대상이 되어 있었다.
사석에서 김현철의 전횡을 비판하던 박관용 대통령 비서실장 등 반 김현철의 입장을 취하던 인물들이 경질되거나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특히 미림팀의 도청을 기반으로 한 김현철의 정보 획득은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국정을 농단하게 된다. 김현철은 안기부 내 개인 라인을 통해 황장엽의 망명 의사까지도 먼저 접하고, 공식 보고 절차보다 먼저 아버지 김영삼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다. 결국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거듭되면서, 김영삼은 국가 공식 라인보다 김현철의 정보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또한 김현철의 전횡은 더욱 극렬해지는 계기가 된다. 1997년 대선 과정에서 미림팀은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과 삼성그룹 이학수 비서실장의 대화를 총 세 차례에 걸쳐 도청하게 된다.
1997년 대선을 통해 DJ가 집권을 하게 된다. 98년 공운영은 예상대로 국가정보원(안기부의 후신)에서 면직 처분을 받고, 국정원을 물러난다. 물러나올 때까지 그는 모두 더블백 두 개 정도에 해당하는 도청 테이프를 은밀히 반출하기에 이른다. 혹시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불이익에 대한 일종의 보험성 대비였으며, 또한 그가 어떤 일을 할 때 특정인의 약점이 망라된 도청 테이프가 적지 않은 도움을 주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운영의 이와 같은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 천용택 국정원장을 만난 공운영은, 도청 테이프를 통해 천용택을 협박했으며, 천용택은 자신과 관련된 테이프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공운영의 청탁을 들어주는 모종의 거래를 하게 된다.
1998년 국정원에서 면직된 공운영은 국정원 동료 임모를 통해 재미교포 박인회(윌리엄 박)를 소개받게 된다. 박인회는 삼성의 핵심간부들이나 박지원과의 친분 관계 등을 과시하며, 삼성과 관련된 도청 테이프를 요구하자, 공운영은 이에 응해 그에게 도청 테이프 복사본을 전달한다. 동료 임모의 국정원 복직과 자신의 사업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1999년 박인희는 수차 삼성 측을 만나, 이와 같은 테이프를 근거로 딜을 시도하는 한편, 박지원에게도 녹취록을 전달하게 된다. 삼성그룹의 이학수는 이와 같은 내용을 국정원에 신고하게 되고, 국정원은 공운영에게 테이프의 반납을 요구, 1999년 공운영은 테이프 반납하게 되는데...
3) 인물구성
-김영삼, 김대중 전직 대통령
-김현철, 김홍업, 김홍걸등 전직 대통령 아들
-김중권, 권노갑, 정치인들
-이종찬, 천용택, 김은성, 공운영 등 전 국정원 간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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