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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획의도
북방외교의 성과는 분단의 아픔을 딛고 우리나라가 외교의 지평을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
한.소, 한.중 수교를 계기로 우리는 동북아 허브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경제는 물론 국방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외교문제로 파생되지 않는 문제가 없으니 앞으로 한 국가의 운명은 외교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분단된 정치상황에서 통상외교조차 안보와 연관되어 거래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에 북방외교의 시작은 큰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격동 50년의 주요 내용이 우리가 어떻게 빈곤의 터널을 탈출할 수 있었고,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었던가를 과거의 경제활동을 통해 내부에서 에너지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우리의 외교 기록을 통해 시각을 국제무대로 돌려 국민들이 동력을 얻고 새로운 도전 의식을 가지게끔 해보자는 데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2. 줄거리
88년 6월, 공산체제의 냉기류가 여전하던 시대에 소련으로부터 획기적인 외교적 싸인이 대한민국으로 전해져 온다.
소련의 영주간지 ‘뉴월드’(도노에 프리미아)가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온 것이다. 그리고 9월, 고르비의 밀명의 받은 측근 ‘이그나텐코’가 서울로 날아와 워커힐에서 극비에 김 총재를 만나 그의 소련 초청을 권하고 돌아간다.
김영삼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노태우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협의를 거쳐 소련 방문을 추진한다. 이때 김영삼의 밀사는 정재문 의원이었으며 그는 김 총재의 밀명으로 9월 26일 모스크바로 잠행한다.
그 후 11월, ‘이그나텐코’는 다시 서울로 날아왔고 고르비의 초청 약속을 확인하고 돌아간다. 그리고 89년 6월, 일본을 경유한 김 총재 일행은 이메모(IMEMO) 초청 형식으로 모스크바에 도착, 소련의 외교정책과 경제정책에 관해 이메모 소장 프리마크프와 여러 얘기를 나눈다. 여기서 프리마코프는 고르비의 외교노선과 김 총재의 견해가 일치한다는 소련 측의 죠크를 던져 미래를 암시한다.
이윽고 김영삼은 고르비를 만나게 되고 그 자리에서 소련의 산림개발 요청을 받는다. 김영삼은 흔쾌히 한국의 기업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임을 밝히고 고르비에게 수교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고르비는 수교에 앞서 한국의 경제적 지원을 더 강조한다. 바로 이것이 한국과 소련의 수교를 암시하는 역사적인 첫 멘트가 되는 것이다...
본 프로그램에서는 분단 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도를 감안하여 한반도 주변 강대국을 열지 않으면 안되었던 한.소 수교, 한.중 수교의 교섭 내막부터 증언과 기록문서 등을 바탕으로 집중 조명하고, 우방 대만하고의 정치적 단교 내막과 경제적 복교의 끈즐긴 교섭 과정도 짚어낼 것이다.
3.인물 구성
1)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직 대통령
2)이상옥, 최호중 등 전직 외교관
3)정재문, 박철언 등 정치인/ 기업인들
4)코트라 주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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