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5. 복도

수경모          그럼 아무개씨 찍는다구 하면 거기서 그만 둬야지, 꼬치꼬
                치 그 후보 찍는 이유가 뭐냐? 정당을 본거냐? 인물을 본
                거냐? 그딴 건 왜 물어요?
애주            그러셨어요, 아버님?
수경모          그뿐인줄 아니? 뭐 북한에 쌀을 보내는게 옳냐, 안 보내는
                게 옳냐?
E               또 뭐? 난 드라큐라 무협영화 같은 거 좋아하는데 박군은 
                어떻냐? 난 고상한 척하는 건 질색, 아니  뭐라더라? 밥맛
                이다? 그러던가? 하이고!
애주            (웃는다)
수경모          얘, 웃지마! 난 속상해 죽겠으니까! 아니 물어볼 건 하나두 
                안 물어보구 자기가 안 묻겠으면 나라두 묻게 내버려둬야
                지 내가 한마디라도 하면 중간에  가로채서 말두 못 꺼내
                게 하고!
수경부          형제가 몇 명이냐, 고향은 어디냐? 그만건 다 알면서 뭣하
                러 물어. 입만 아프지! 그딴게  궁금하면 차라리 이력서를 
                한 장 받는 게 낫지.
수한            그런다구 그 친구, 삐져서 가버린 거예요?

수경모, 다시 거실로 나와 치워가며

수경모          너 같으면 안 그렇겠니? 하이고, 기가 막혀? 뭐? 보스니아 
                사태? 그게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냐구?  그 사람이 그 
                말에 결정적으루 일어나버린 줄은 아시죠?
수경부          지가 선약이 있다구 간 거지, 나 때문에 간 거야?
수경모          선약은 무슨 선약? 이 자리에 있기가 진땀 나니까 거버린
                거지! 다른집 아빠들은 시집갈 딸이 있으면 지나가는 청년
                들만 봐두 예사루  안 보인다던데, 얘가  처음으로 맘먹구 
                데리고 온 사람두 내쫓아요?
수경부          이거 봐요! 당신은 그러니까 구식소리 듣는거야! 지금은 2
                천년을 목전에 둔 시대라구!  난 내 사위감  하드웨어에는 
                관심없다구!
수경모          (다시 부엌 가며) 그래요, 당신 훌륭하신 줄  알아요! 됐네
                요!
수경부          아니, 저 사람이….
수한            그만두시구요 아부지, 사람은 어때 보여요?
수경부          틀렸어! (엄마 들으라고)
수한            네?
S#16. 부엌

애주            어머님은 어떠셨어요? 괜찮으세요?
수경모          반눈에두 안 차더라! 어림없어, 얘! (아버지 들으라고)
수한, 애주 놀라서 서로 본다.
S#17. 수경집 근처 길
동규를 보내고 있는 수경. 택시를 잡으려고 서있다.

동규            아유, 진땀 뺐다. 아버님 나 점수 안 주실거야. 그렇지?
수경            아니, 후하게 주실거야. 걱정말아요! 근데 진짜  무슨 약속
                이야?
동규            사실은… 과장님 좀 뵙기루 했어.
수경            우리 과장님? 왜?
동규            응, 친구일루 뭐좀 부탁드릴게 있어.
수경            내일 회사 가서 뵈면 안돼?
동규            월요일까지 해결해야 될 일이래. 택시 온다. 나, 갈게.
동규 앞에 멎은 택시를 타고 간다.

수경            전화해요?
수경, 동규에게 손 흔들어주고 돌아선다.
S#18. 수경집 거실 (낮)
수경, 화난 얼굴로 듣고 앉아있다. 부모, 서로 외면한 채 이야기한다. 수한, 애주까지 소파에 앉아 과일 차 등 먹고 있다.

수경부          주관이 뚜렷하지가 못해! 젊은 아이가!  남자란 몸에 칼이 
                들어와두 줏대있게 제  소신을 말해야지!  그것두 괜찮구, 
                이것두 괜찮구, 안돼!
수경모          키만 길죽한게 멀대 같애! 남자가  체격이 듬직해야지, 몸
                두 너무 마르구!
수경            뭐가 몸이 마르다구 그래. 엄마는? 그 정도면 딱 알맞지!
수경모          말랐어! 그리구 입두 짧더라! 남자가 아무거나 막 먹구 그
                래야지, 젓가락으루 깨작깨작 하는 거 그거  평생 여자 고
                생 시킬 사람이야!
수경부          그리구, 뭣보담두 너무 무식해!
그 말에 놀라는 수경 등

수한            무식해요?
수경부          (진지하게) 보스니아 문제는 양심을 가진 지구인이라면 누
                구나 관심을 가져야지. 그런데 카라지치가 누군지두 몰라?
수한            (카라지치가 누구지?)
애주            (몰라요?)
수경부          니들은 알지? 그 악랄한 인종청소부!  세르비아계 지도자! 
                알지?
수한            그럼요! 알죠!
수경            (화난다)
수경모          그리구 정말루 결정적으로 틀린 게 있더라
수경            또 있어요?
수경모          그래! 남자가 자신감이 있어야지. 이건  어디서 죽두 못얻
                어 먹은 사람모양 활기가 하나두 없어!
수한            그래서 총 몇점이나 주실 건데요?
수경부          난 59점이다!
수경모          나두, 잘 줘서 59점!
수한            낙제네? 야, 수경아. 너 큰일났다! 안 되겠다!
수경, 획 일어나 제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S#19. 수경방 (낮)
수경, 침대에 엎드려 혼자서 음악을 듣고 있다. 노크소리가 난다. 엄마가 들 어온다. 수경, 휙 돌아눕는다.

수경모          (수경의 머리칼을 만지며) 너 그 남자 그렇게 좋니?
수경            …
수경모          뭐가 그렇게 좋을까? 이해가 안 가네?
수경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 사람두 자기집에 가면  귀한 아들
                이라구요! 엄마딸은 뭐 그렇게 잘난 줄 아세요? 
수경모          하하! 너 골났지?
수경            ?
수경모          얘, 난 그 남자 너무 맘에 들더라?
수경            (벌떡 일어나 앉는다)
수경모          우선 느아빠하구 다르게 키크구 날씬한 게 맘에 들어!
수경            ?
수경모          그리구, 아무 거나 그냥 허겁지겁 마구 먹지 않은 것 그것
                두 참 좋더라!
수경            59점이라며요?
수경모          그래! 60점 만점에 59점!
수경            엄마!
수경, 엄마 목을 안는다.

수경모          뭔가 좀 초조해 보이는게 걸리더라만, 여자집 처음 찾아서 
                긴장해서 그렇겠지? 겸손한 태도두 좋구!
수경            엄마 고마워!
수경모          아빠께 가봐. 아빠는 내 기분하고 좀 다르신가 부더라.
S#20. 수경 안방 (낮)
수경부, 난초잎을 휴지로 닦아주고 있다. 수경, 차 한잔을 타서 갖다 놓는 다.

수경            아빠, 동규 씨 점수 좀 올려주세요
수경부          녹차 한잔 갖구? 어림없다.
수경            좋은 사람이예요, 아빠.
수경부          좋은 사람 따라살면 여자가 고단해.
수경            주변 사람들이 동규 씨 다 좋아해요.
수경부          남들이 다 좋아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어!
수경            무식하지두 않아요 아빠! 장학금 받구 학교 졸업하구 입사
                성적두 3등이예요.
수경부          원래 무식한 녀석들이 점수는 잘 따지!
수경            엄마는 마음에 드신다는데요?
수경부          느엄마 안목이 그게 안목이니?
수경            사실은 아빠두 맘에 드시죠?
수경부          천만의 말씀!
수경, 속상하다. 가만히 앉아있다.

수경부          (그런 딸 몰래 한번 슬쩍 돌아보고) 너 그 녀석 좋아허니?
수경            네.
수경부          대답이 시원찮아, 확실해?
수경            네. 확실해요!
수경부          그럼 됐잖아! 내 맘에 들면 뭐해? 시집갈 사람은 넌데?
수경            아빠가 59점이면 전 싫어요. 95점으로 바꿔주세요
수경부          …(알만하다)
수경            …아빠!
수경부 수경을 본다. 간절하게 자기를 보는 예쁜딸.


수경부          너 만일에 그 녀석하구 나하구  같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
                면 누굴 먼저 구할거야? 양심적으로 말해! 누구야? 그녀석
                이지?
수경            아뇨, 아빠 먼저 구해드리구, 난  동규 씨랑 그냥 같이 빠
                져 죽을래요.
수경부          이 녀석이?
수경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래두, 어떻게 엄마아빠보다  더 좋
                겠어요? 정말이예요! 아빠 점수 좀 올려주세요, 네?
수경부          손이 따뜻해서… 그건 맘에 들더구나.
수경            !
S#21. 다방 일각
동규가 편한 옷차림의 과장과 만나고 있다. 동규는 입술이 탄다.

과장            무리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렇게 큰돈이 갑자기  필요 
                하단거야?
동규            집에 일이 생겼습니다.
과장            꼭 내일까지야?
동규            네
과장            며칠이래두 여유가 있으면 회사에서 대출을 받아볼 수 있
                을텐데 참 마이너스 통장 좀 활용해보지 그래?
동규            … 한도 초과했어요, 그것두요
과장            아! 윤수경 씨보구 좀 빌려달래지!
동규            …그건 싫습니다.
과장            뭐 어때? 애인한테까지 자존심 세울 필요없잖아?
동규            과장님 은행 친구분들 있잖아요! 대출 좀 받게 소개해주세
                요.
과장            당장 그 액수가 될까? 아, 번거롭더라두  소액으루 나눠서 
                받는 방법이 있겠다, 그렇지만 그래두 내일 당장은 어려울
                건데? 아무튼 좀 알아보자구!
휴대전화 꺼내 찍는다.

과장            응, 나야, 당신말야, 전화번호부  빨리 펴서 번호  좀 불러
                봐! 빨리! (하고는 동규에게) 받아 적어 박주임!
동규, 적을 준비한다.

과장            박차장 있지, 서소문지점 박차장하고 윤차장, 서초동 이지
                점장님 다 불러봐! 집 전화두! 내일  아냐, 글쎄! 쫑알거리
                지 말구 빨리 찾아 불러!
동규, 미안하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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