즘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며 인기 상승세를 타고 있는 MBC 주말연속극 <그대 그리고 나>의 제작 현장. 촬영장에서 항상 드라마 연출을 맡은 최종수 감독 옆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 드라마의 스크립터 주선(31세) 씨다.

음향팀, 조명팀, 연출팀 등 한 편의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20여 명이 넘는 적지 않은 스텝들이 필요하지만, 특히 스크립터 주선 씨가 빠지면 촬영은 진행될 수 없다. 지금 찍고 있는 장면이 몇 번째 촬영되고 있는 것인지, 수정된 대사가 제대로 이어지고 있는지 등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샅샅이 기록하여 이른바 '편집대본'을 만들어야 하는 까닭에서다. 이렇게 현장에서 만들어진 편집대본은 촬영이 끝난 뒤 드라마 편집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서울예전 방송연예과를 졸업한 후, 지난 1991년 MBC 일요아침드라마 <한 지붕 세가족>을 시작으로 올해로 드라마 스크립터 경력 8년째를 맞고 있는 주선 씨는 미니시리즈 <여>, <애인>, 주말극 <신데렐라> 등 주로 MBC 드라마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처음 대학 선배의 소개로 드라마 스크립터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그는 학창시절부터 드라마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고.

"우선 작업이 재미있어요. 작가가 쓴 대본을 영상화시키는 작업이잖아요. 몇 번씩 NG가 나면 똑같은 장면을 여러 번 다 지켜봐야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나하나 찍어서 결국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면 일이 재미있고 즐거워요."

작가처럼 작품을 완전히 창조해내는 작업은 아니지만, 주선 씨는 스크립터라는 직업을 'Semi-Creative' 즉 '반-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읽히는 대본에서 '보여지는 영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을 해야 하는 스크립터는 육체적으로 역시 무척 고된 직업이다. 그래서 좋은 스크립터가 되기 위한 가장 큰 전제 조건으로 그는 주저하지 않고 '성실'을 꼽는다. 자신의 일에 대한 소신을 갖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한결같이 해내야 하는 까닭에서다.

요즘 그는 주말극 <그대 그리고 나> 촬영때문에 일주일 내내 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스크립터의 경우는 야외 촬영장뿐 아니라 드라마 편집과 스튜디오 녹화 등 모든 제작 과정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이 드라마를 시작할 때만해도 그저 '밝은 느낌의 주말극'이라고 생각했지만, 극 중반을 넘어선 지금은 화려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느정도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도록 현실감있게 표현하고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난 신정에 방영되었던 영덕 일출 장면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어요. 영덕에서 그 장면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완제품을 만들려고 편집실에서 촬영해온 일출 장면을 다시 보는데 글쎄…, NG가 났던 5번을 다시 볼 때마다 모두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로 찡하더라구요. 그런데 이렇게 스텝들의 가슴이 찡했던 장면은 보통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역시 똑같은 느낌이 들게 하죠.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감정이 통하는 거죠."

주선 씨는 보통의 다른 스크립터들과는 달리 '편집'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앞으로 계속 지금과 같이 전문 드라마 스크립터로 남고 싶은 것이 그의 현재 바람이라고. 개인적으로는 특히 1996년에 방송된 <애인>과 같은 멜러 드라마에 관심이 큰데, 그것은 드라마를 찍는 순간순간의 가슴 졸이는 느낌을 좋아하는 까닭에서다.

"때때로 촬영장마다 배우들 따라다니느라 고생 많이 한다고 그러시는 분들이 계세요. 사실 전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제일 속상해요. 저를 포함한 드라마 스텝들은 촬영장으로 배우들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예요.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 연기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인 연기를 하듯이, 저희도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것뿐이니까요."

그가 죽고 못살 정도로 좋아하는 '드라마 만들기' 과정에서 스크립터라는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잠깐 촬영이 중단된 동안에도 대본을 꼼꼼히 살피며 한장한장 넘기는 그의 손길이 오늘도 무척이나 바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