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있어 가사는 곡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에 쓰이는 배경음악이 자신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절제와 겸손의 예술이다 보면, 대부분 연주가 앞세워지기 십상이지만, 간간히 가사가 있는 곡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로 인해 더욱 생생하게 빛나게 된다. 이런점에서 <그대 그리고 나>의 배경음악에 나오는 가사들은 고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독특한 등장인물들의 특징이 노래가사 속에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중요한 작업을 맡아한 장본인은 시인이자 현재 문화일보 편집위원인 신효정(51)과 그의 딸인 이혜민(21)이다. 작곡가인 신병하와 이미 몇 차례 공동작업을 한 적이 있는 신효정은 1969년 경향신문 기자로 입사한 후 1987년에 시집 <흰 종지부를 찾아서>를 출간하는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견 시인이다.

신효정이 처음 작곡가 신병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신병하가 그의 시집을 보고 매료되어 찾아오게 된 때문이었다. 그 후 신병하가 작곡한 <사랑의 말 빗물되어>와 같은 노래의 작사를 의뢰받아 가수 이미배 씨와 함께 작업을 했고, 영화 <장희빈> <블랙잭> 등의 음악에 쓰이는 곡들의 노랫말을 만들었다. '흰 저녁'이나 '별'과 같은 노래의 가사들은 신효정 씨의 시에 곡을 붙인 경우이다.

원래는 가사보다 시를 썼던 신효정은 음악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작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대중음악이 환경음악의 성격을 띤다고 설명하면서, 지금의 대중가요 풍토가 다분히 상업적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글의 아름다움을 살려 대중음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질적으로 향상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그대 그리고 나>의 작사 제의를 받고 작업을 하던 중 곁에서 어머니의 작업을 돕겠다며 요모조모 참견을 아끼지 않았던 딸 혜민 양의 성화에, '그럼 네가 직접 써보지 그러느냐'고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어머니 신효정은 딸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고는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 이혜민은 현재 음대에서 비올라를 전공하고 있는 음악도이기도 하다. 활달한 성격의 그녀는 처음 해본 작업이라 채택이 될까 걱정을 했는데 신병하의 인정을 받아 작사를 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며, 다른 대중가수들의 노래도 작사하고 싶다고 했다.

드라마에 사용된 테마곡들 중 두 사람이 작사한 곡들은, 동규와 수경의 사랑의 테마인 <가슴 속의 너>와 시연의 사랑의 테마인 <바람과 함께 부르는 노래>, 그리고 영규의 테마인 '기다리는 날의 일기'이다.

먼저 신효정은 <가슴 속의 너>에서 동규와 수경이 환경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기적인 신세대였던 수경이 결혼을 통해 사랑을 배워가는 모습이라든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로 늘 책임감에 시달리는 동규 두사람이 한 가정을 이뤄가는 과정이 이 노래의 주요 모티브이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부부간의 애틋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이혜민이 작사를 맡은 <기다리는 날의 일기>에는 겉으로는 건들건들하고 그릇된 방법으로 신분상승을 꾀하지만 이복동생을 아끼고 챙겨주는 영규의 인간적인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시연에게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접근하지만, 나중에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영규의 긍정적인 측면도 이 곡에서 표현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건달이지만 한 편으로는 미워할 수만은 없는 면모를 보이는 영규의 테마에서는 허황된 꿈을 좇지만 어디까지나 순수한 마음을 한 구석에 간직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하나의 사랑의 테마인 <바람과 함께 부르는 노래>에서는 삼각관계의 당사자인 시연이 출생의 그늘이나 친형제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 같은 감정을 나타내려 애썼다고 한다.

신효정은 <그대 그리고 나>의 노래를 작사하면서 아쉬웠던 점으로, 뒤늦게 참여하게 된 점을 들었다. 보통 시놉시스를 받고 영화나 드라마의 초반부터 참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극 중반부에 작사 의뢰를 받아 극의 진행 및 줄거리를 파악하는데 약간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 드라마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곡을 듣고서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떻다는 것만 파악한 후 곡에 가사를 입혀야 했기 때문에 일단 주인공들의 감정을 담는데 충실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밖에도 홍여사(박원숙 분)나 양씨(양택조 분)와 같은 코믹한 캐릭터를 가진 조연들의 테마나 민규처럼 감수성이 풍부한 인물의 테마도 가사가 들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극 중에서 상당히 흡인력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홍여사나 양씨와 같은 인물들이, 배경음악을 통해 좀 더 부각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도 조연이기 때문에 음악작업이 생략됐다. 민규(송승헌 분)의 경우는 아주 애절하고 슬픈 감정을 많이 자극해서 끌어낼 수 있는 역할인데, 창작곡이 아닌 칸소네가 삽입돼서 아쉬웠다고 한다.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상옥(서유정 분)의 캐릭터도 우리나라의 여학생들이나 젊은 여자들이 갖고 있는 허황되면서도 보편적인 꿈을 잘 반영하고 있어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배역이었다며 좋은 가사의 소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신효정은 드라마 주제가의 특징에 대해 설명을 하는 대목에서 배경음악이 극을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최대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해야 한다면서, 요새 젊은 사람들이 만든 대중가요를 보면 상당히 톡톡 튀는 부분도 있고 감각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런 곡들이 과연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잊혀지지 않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드라마도 흘러가면 잊혀지기 때문에 오래 불려지는 노래가 될 수 있도록 좀 더 작품성 있는 곡들이 많이 나와야겠고 주제가를 통해서 드라마 자체를 반추해 볼 수 있는 매개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혜민 양은 배경음악이 일반 가수의 곡을 작사한다는 것과는 좀 다르다고 했다. 등장하는 인물들을 한편으로 부각시키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 힘든 작업이란다.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드라마 음악의 매력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인물에 대한 느낌을 글로 표현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두 사람에게 <그대 그리고 나>가 사랑 받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자, 이 드라마가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가정 얘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얘기, 바로 나의 얘기 같다고 사람들이 느껴 공감하기 때문이고, 또한 어렵고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각박한 속에서도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한테 희망을 주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