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규와 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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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규와 윤미는 결혼 17년째의 금슬 좋은 부부다.
둘 다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 캠퍼스 커플로 만나 동규가 3학년(윤미가 본과 1학년)때 결혼을 했다.(둘 다 너무 외롭고 너무 가난했고 너무 사랑했기에)
동규가 군에 입대하고 복학하고 졸업하는 동안 윤미는 두 번 임신을 한다. 그때마다 공부 때문에 중절 수술을 하게되는데, 두 번째 중절 수술 때는 학기말 시험기간이라 계속 밤을 새며 시험공부를 강행한다. 게다가 몸이 아픈 시어머니 병수발까지 해야 한다. 그 일로 윤미는 영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고 만다.

윤미가 인턴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산부인과 병동에서 미혼모가 아기를 출산한다. 윤미는 무엇에 끌리듯 그 아기를 입양한다. 나리였다. 그러나 나리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며느리와 갈등을 겪다가 세상을 떠난다. 사람들이 어울려 살려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이런 속내들을 겪으면서, 윤미 부부는 가난과 젊음을 재산으로 각기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간다.
드디어 윤미는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고 동규 역시 제법 유명한 건축가가 되어 있다. 남들이보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있는 윤미 부부. 이제는 과거가난했던 시절을 웃으면서 얘기할 만큼 나이도 먹었다. 나리는 밝고 구김없이 자라 어느덧15살 중학교 3학년이다.
처녀인 것처럼 재가해간 생모대신 외할머니밑에서 자라던 그녀가 그나마 일년에 한번정도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생모와 영영소식이 끊긴 것은 지금나리의 나이인 15 살때이다.
윤미는 엄마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엄마에 대한 그리움 역시 미움을 능가한다.

그 양극의 감정 속에서 괴로워하던 그녀는 의대 등록금이 없어 처음으로 엄마를 수소문해 찾아갔다가 거절당한다. 엄마는 윤미의 존재가 남편(손사장)에게 알려질까 봐 너무 두려워한다. 윤미는 그때 엄마의 존재를 가슴속에서 영원히 지워 버린다. 딸 나리에게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윤미가 젊은 나이(27), 공부에만 전념하기만도 힘든 어려운 상황에 나리를 입양한 것을 보면, 그녀가 엄마 없이 자란 자신의 삶을 얼마나 가슴아파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녀는 엄마 없이 자랄 그 신생아를 도저히 외면 할 수 없었던 거다.(더구나 그 미혼모의 고향은 자신과 같은 고향이다.)
그때 시어머니와 동규가 얼마나 반대했던가? 동규는 윤미의 성장과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윤미의 아픔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부부인들 그렇지 않을까? )
그녀가 동규와의 이혼으로 절망했을 때는 그녀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그때 윤미는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싶었고 엄마의 충고를 듣고 싶었고 엄마에게 위로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엄마를 찾지 않는다. 그런 자기를 스스로 독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자기보다 더 독한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모전녀전인 것인가.
윤미와 영주는,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부모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애증의 성장기를 지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은 영주는 일상 속에 부모가 있고 윤미는 없다는 것이다. 그 점이 두 여자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후천적 품성을 갖게 된 배경인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 다 자기 개성이 강하고 욕망도 강하고 자의식이 강하지만 (정희는 영주를 보고 젊을 때의 윤미같다는 말을 한다) 윤미가 인내와 사랑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성숙한 인간이다. 윤미는 무엇보다 가난하게 자랐고 정말로 외로웠기에 타인에 대한 배려나 아픔을이해하는 정도가 영주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다.
게다가 윤미는 영주보다 13년을 더 살았다.
반면 영주는 천방지축 안하무인이다.
영주는 윤미가 사는 동네에 집을 얻고 윤미의 병원에 아들을 데리고 가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영주는 무척 열정적이고 단순하다. 뒤끝도 없다. 그건 영주의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고 장점이기도 하다.
(동규가 영주를 사랑했을 때 그것은 장점으로 보이고 사랑이 식어갈 때 그것은 견딜 수 없는단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윤미와 동규, 정희와 상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섭이 정희에게, 병호가 윤미에게, 이상적인 남자로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들이 서로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