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이제는 ‘눈’으로 들으세요
라디오 이제는 ‘눈’으로 들으세요

인터넷 통해 스튜디오 생중계…영상세대 인기 폭발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금요라이브' 코너는 매주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된다.

지난 22일 오후 1시.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스튜디오에는 금요라이브에 초대된 가수인 플라워와 풍경이 DJ 정선희와 함께 앉아 있었다.

자신의 통기타 반주에 맞춰 풍경이 노래를 마치자 이번에는 플라워가 일어섰다. 마치 무대에 선 듯 눈을 감고 '이곳에서'를 열창했다. 간식거리로 준비했던 식은 피자와 국수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그림. 하지만 이날은 목격자가 많았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스튜디오 현장이 실시간 중계됐기 때문이다. 채팅창도 열려 DJ 정선희와 게스트는 접속한 1만 명의 네티즌 '시청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방송을 진행했다. "오빠 재밌는 얘기 해주세요", "저번에 xxx에서 봤었는데 기억하시나요" 등 끝없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라디오가 진화했다. 듣기만 하던 라디오를 이젠 '시청'할 수도 있게 됐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급속도로 확산 되면서 3~4년 전부터 생긴 변화. 인터넷은 라디오 방송이 태생적으로 갖게되는 시각의 벽을 허물고 실시간 중계를 하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청취자들이 라디오를 즐겨 '본다'.

▲ 지금은 '보이는' 라디오 시대

라디오 실시간 중계는 지난 2001년 SBS 라디오 '박철의 두 시 탈출'이 처음 시작했다. 2004년 현재 SBS 6개 프로그램, MBC 4개프로그램, iTV 4개 프로그램이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박철…'의 실시간 중계를 처음 기획한 SBSi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했다. DJ였던 탤런트 박철 옆에 수화 통역자가 보이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방송한 것.

하지만 이제는 모든 '시청자'들로영역을 확대했다. 현재 진행되는 '보이는' 라디오는 10~20대 청취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서 특히 활발하다. 보이는 라디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정오의 희망곡' 담당 PD는 "인터넷에 익숙한 영상세대에게는 신청곡이 나가는 동안 DJ는 뭐할까?' 이름도 생소한 신인가수를 '얼짱'이라고 하는데 정말인지, 등 갑갑함을 느끼는 부분을 바로 보이는 라디오가 해소할수 있다"고 말했다.

▲ 라디오의 진화는 어디까지

보이는 라디오는 한국 라디오를 듣기 힘든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등 해외거주 교포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라디오 전파 송출이 불가능한 외국에서도 인터넷 접속만 하면 라디오 내용을 듣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욘하짱'으로 인기가 높은 탤런트 박용하가 진행하는 SBS '텐텐클럽'의 경우 보이는 라디오를 방송하는 동안 일본 팬들의 인터넷 접속률이 폭발적이다.

각 방송사들은 보이는 라디오를 더욱 늘릴 추세다. MBC 라디오 조정선 3CP는 '앞으로 서울시내 건물 옥상에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보이는 라디오방송에 연결' 실시간 중계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SBS는 가을 개편으로 신설된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라디오'를 확대할 방침이다. 지역방송인 iTV 라디오는 매일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8시간 연속 실시간 화상중계한다.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예쁜 엽서’들

▲ 예쁜 엽서전이 뭐예요

보이는 라디오 시대에 없어진 것이 하나 있다. 청취자들의 사연을 담은 '엽서'다.

1970~1980년대 라디오를 즐겨듣던 세대들은 방송국에 사연을 담은 '작품' 엽서를 만들어 보냈다. 매년 '예쁜 엽서전'도 열렸다. 지난 94년 엽서전을 폐지한 MBC가 올해 초 10년만에 부활시켰지만 더 이상 엽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에 날아오는 엽서는 하루 20통 남짓. 1000통이 넘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이제는 인터넷 게시판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엽서를 대신하고 있다. 사연도 애틋한 내용은 거의 없고 즉흥적이고 간단하다. KBS 라디오의 한 심야프로그램 PD는 "라디오가 인터넷을 만나 폭은 넓어졌지만 깊이는 얕아졌다"고 아쉬워했다.


“상상하는 즐거움 포기할 수 없죠”

- 배철수의 ‘듣는’라디오 예찬론




"듣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은 라디오의 최고 매력이죠."

라디오 DJ 15년의 베테랑인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 진행자 배철수(51)는 보이는 라디오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팝음악 전문 DJ로 확고부동한 자리매김을 한 배철수는 "라디오가 어떻게 TV방송을 따라갈 수 있겠냐"며 "어설프게 스튜디오를 공개하고 얼굴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한 보이는 라디오에는 별로 공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배철수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때일수록 라디오는 그 원래 특성을 잘 살려야 한다"면서 "오감 중 하나인 듣는 것에서 우리는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또 배철수는 "모든 매체가 보는 것에 매달리고 있을 때 듣는 것의 마지막 보루인 라디오야말로 정도를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라디오는 차 안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투잡 파트너라는 설명이다.


남궁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