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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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규 PD가 말하는 자연다큐멘터리 PD의 세계 1
작성일 : 2005.08.22
조회 : 

'MBC 자연 다큐멘터리'의 최삼규 PD가 'PD가 말하는 PD'라는 책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하늘을 지붕 삼아 땅을 이불 삼아

△최삼규 PD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다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자연 속에 숨어있는 오묘한 비밀과 신비로운 생명의 법칙을 영상화시키는 작업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진다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러한 모습들이 쉽사리 드러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끈질긴 기다림과 인내심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자연과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거니와 자연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었던 본인이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하게 되고 또 그 이후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천착하게 된 경위는 정말 드라마틱하다고 해야겠다.

본인이 대학생활을 할 때는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비리를 예리하게 파헤쳤던 KBS의 ‘추적 60분’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에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은 거의 모두들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PD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물론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기자가 되고픈 꿈을 접고 그 해 MBC 신입사원 공채에 PD직을 지원했고 문화체육관을 가득 메웠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정말 운 좋게 합격이 되었다.  설레는 맘을 안고 6개월에 걸친 신입사원 연수 후 드라마 PD를 하면 어떻겠냐는 유혹을 뿌리치고 교양 PD의 길을 걷기로 했다.  오로지 ‘추적 60분’ 같은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해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처음 현업 부서에 배치되어 주부 대상 아침 생활 정보 프로그램인 ‘차인태의 아침살롱’의 조연출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프로그램의 조연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드라마 왕국 MBC에는 내가 꿈꾸었던 ‘추적 60분’같은 시사 프로그램은 정녕 만들어질 날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1987년 6.29 선언 이후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아울러 방송사에서도 공정방송, 민주방송의 염원을 담은 방송민주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에 힘을 얻어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생겨나면서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시대’에 이어 드디어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PD 수첩’이 생겨났고 나도 1년 반 동안 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PD들이 직접 현장 취재를 한 후 촬영한 테이프를 편집한 영상에 직접 내레이션을 더빙하였는데 본인이 참여할 때쯤에는 지금과 같이 직접 화면에 출연하여 리포팅을 하게 되었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본인은 전국 각지 환경과 관련된 아이템을 주로 다루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 주변에서 산업폐기물을 불법으로 매립하는 현장을 고발하고 탈법, 불법이 자행되는 현장을 보여줘도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나 반응은 별로 없었다.  그저 빈 골을 되돌아 나오는 메아리 분......  별로 환영 받지 못하는 곳을 우격다짐으로 쫓아 들어간다든지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로부터 볼썽 사나운 협박을 받으며 일년 반을 보내다 보니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고, 건강 검진 결과 간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어 있었다.

하루는 몸이 너무 피곤해 병원에 가서 초음파 진찰을 해보니 의사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냐면서 당장에 휴직하고 무조건 쉬라는 것이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일을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빈 메아리를 외치는 것 같아 시청자들 볼 면목도 없으려니와 부끄럽기도 한 차에 잘됐다 싶어 담당 부장님을 찾아가 ‘PD 수첩’ 프로그램 대신 다른 어떤 프로그램을 하라면 하겠다고 했더니 의자 밑에서 무언가 뒤적거리다가 간신히 찾아내곤 ‘이거 한 번 만들어봐’ 하면서 내던져 주는데 나는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기쁜 마음으로 자리로 돌아와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자연다큐멘터리 기획안 이었다.

제목: MBC 자연다큐멘터리 ‘곤충의 사랑’
기획의도: 자연 상태에서 암컷과 수컷의 곤충들이 어떻게 만나 짝짓기를 이루어 그 종을 번식시키는가의 생태를 보여줌으로써 생명의 신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한다.

처음 이 기획안을 읽어보면서 참 황당했다.  곤충이라면 그저 노랑나비, 흰나비, 메뚜기, 매미 정도나 알까.  생물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연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이 프로그램을 제작할 것을 주문 받은 여러 PD들이 그런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느냐면서 자신이 없어 못하겠노라고 하여 부장님 책상 밑에 사장되다시피 낮잠을 자고 있던 기획안이라지 않은가.

그렇지만 ‘PD 수첩’을 제작하느라 전국의 별의별 험악한 곳을 돌아다녔던 이력인데 어떤 프로그램인들 못 만들랴 하는 생각으로 나는 흔쾌히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노라고 하였고 그 날 이후 나는 배낭 메고 스텝들과 같이 풀 숲과 산자락으로 곤충을 찾으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자연 다큐멘터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리 돌아다녀도 곤충들이 잘 보이지 않아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나마 어렵사리 발견한 곤충들의 이름조차 몰라 곤충도감을 찾아보며 이름부터 외워야 했다.  별 희한하고 재미있는 곤충도 많았다.  나는 이렇게 곤충들의 이름을 외워가며 녀석들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녀석들의 움직임과 날개 짓 하나하나가 그냥 막연한 것이 아닌 무언가 의미가 있는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자연의 법칙에 따른 행동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렇게 서서히 자연에 빠져들면서 ‘PD 수첩’을 제작하느라 만신창이가 된 몸도 서서히 회복되어갔고 세상사에 찌그려져 있던 얼굴도 본래의 얼굴로 다시 돌아갔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격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느라 항상 무엇으로부터 쫓기는 것 같은 긴장과 스트레스에 쌓여 생활하던 리듬이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을 담으며 오랜 기간 동안 작업하다 보니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여유 속에 자연을 바라보니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자연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봄이면 싹이 피고 여름이 되면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에 단풍이 곱게 든 후 자신이 만든 잎을 땅으로 떨어뜨려 내년에 싹틀 양분을 스스로 마련하고 깊은 동면에 들어가는 나무들, 인간들이 자신들을 훼손하거나 가지를 꺾어도 화를 내거나 항의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나무들, 그렇지만 언젠가는 꼭 응징을 하고야 마는 나무들이 비록 우리 눈에는 움직이지는 않아 보이나 내부적으로 살아 꿈틀거리는 나무들이 살고 있는 곳 아닌가.  겉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고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하고 있는 산.  지구가 존재하는 한 끝없이 버티어 갈 이런 곳을 다닐 수 있어 좋았고 산이 주는 의미와 교훈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노랑나비 흰나비만 알았다가 별 희한하고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나비를 관찰하면서 얼마나 희열을 느꼈는지......  그리고 나비 암컷들의 날개에는 동종의 수컷들만 알아볼 수 있는 자외선을 방출하는 인자가 있어 수컷들이 멀리서도 이 자외선을 보고 암컷을 찾아온다.  그런데 처음에는 암컷이 본능적으로 수컷을 떼어내려고 도망치려고 하는데 수컷은 뒤떨어질세라 열심히 쫓아다닌다.  암나비는 수컷이 뒤쫓아 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 녁석이 튼튼한 녀석인가 부실한 녀석인가를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맘에 드는 녀석일 경우 꽃잎에 사뿐히 내려앉아 날개를 내리면 수컷도 암컷 옆에 내려앉아 더듬이를 부비다 교미를 하게 된다.

‘이른봄애호랑나비’는 교미를 끝낸 후 암컷이 더 이상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마치 중세의 십자군 기사들이 원정을 떠날 때 아내들에게 정조대를 채우듯이 수태판을 만들기도 하며, 모시나비는 수태낭을 만들기도 한다.  큰줄흰나비는 암컷이 교미를 끝낸 후에 다른 수컷이 접근해 오면 나무 끝에 앉아 꼬리를 90도로 치켜 올리는데 이때 수컷은 지체 없이 물러난다.  이는 오로지 튼튼한 유전자를 받아들여 튼튼한 종을 번식시키려는 자연의 명령에 충실하게 살다가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한 자연 현상과 생명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나는 더욱 더 자연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렇게 자연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게 된다면 누가 자연을 훼손하려고 할까 하는 생각에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대로 만든다면 이 또한 또 다른 환경운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살아 움직이는 작은 곤충들을 접사렌즈로 확대하여 촬영을 하다 보니 포커스를 쉽게 맞출 수 없다거나, 피사체가 촬영이 끝날 때가지 가만히 기다려 주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통에 영상이 마구 흔들리거나, 금방 날아가 버려 제대로 촬영할 수가 없었다.  처음 한 달 동안 속으로만 끙끙 앓던 카메라맨이 더 이상 도저히 못하겠다고 망연자실할 때는 정말 당황했었지만 간신히 카메라맨을 설득해 촬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

나비가 우화 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사흘 밤을 뜬눈으로 꼬박 새우기도 하였는데 나중에는 곤충들이 우화하는 시기는 해가 뜨기 직전의 이른 아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곤충들이 우화 할 때는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천적으로부터 쉽게 잡아 먹힐 수가 있다.  그리고 갓 우화 하면 날개가 아직 젖어 있어서 마음대로 날 수가 없기 때문에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적들인 새들이 아직 채 활동을 하지 않고 갓 우화 하면 날개를 말릴 수가 있는 이른 아침 해 뜰 무렵에 우화를 하는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사흘 밤을 꼬박 새고 말았으니......

 

 

 

△나비가 우화하는 과정

그 당시 우리 집 아파트 베란다는 졸지에 곤충들의 사육장이 되었다.  일일이 녀석들을 필드에서 관찰할 수가 없었기에 베란다에다 각 곤충들의 먹이가 되는 숙주나무들을 심어놓고 나비, 사슴벌레, 사마귀 등을 기르면서 촬영하기도 하였다.  어떤 날은 아주 귀한 왕오색나비가 번데기에서 우화 하여 방안을 날라 다니는가 하면, 어떤 날은 시커먼 사슴벌레가 방으로 날라 들어와 잠자던 아이가 놀란 적도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곤충의 사랑’이 무난히 방송된 후 나는 자연을 기록하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되었고 나 나름대로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이야말로 아주 중요한 환경운동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 누가 자연을 보호하라고 외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연을 보호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올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천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연다큐멘터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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