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시트콤 MBC ‘거침없이 하이킥’(연출 김병욱)을 보면 김범(김상범)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유독 자주 등장한다. 김범과 함께 유미는 초반에는 ‘하이킥’의 주변부 캐릭터였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고정 캐릭터가 됐다. 이 둘은 요즘 윤호와 민호 형제보다 자주 등장한다.

특히 범이는 ‘스페셜 인물열전’의 세번째 주인공이 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유니폼 5부자에 겨우 끼어 순재로부터 ‘이(李)6’ 유니폼을 하사받은 범이는 이제 명실공히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셈이다.

이유가 뭘까? 이 드라마는 이씨(이순재) 집안 사람에 신지, 민정까지 포함해도 고정인물이 9명밖에 안된다. 에피소드를 가동하기에는 무척 적은 숫자다.

게다가 일주일에 다섯 차례, 10개의 에피소드를 소화하느라 초반 인기를 모았던 순재, 준하 캐릭터를 너무 많이 써먹었다. 야동순재, 식신준하는 그런 과정에서 식상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잦은 재방송과 특집방송 등으로 이씨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의 캐릭터는 많이 소진됐다. 외부에서 들어온 ‘하숙범’ 범이와 민호(김혜성)의 여자친구 유미의 활용도가 높아진 이유다.

범이는 축구로 친다면 ‘리베로’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범이는 드라마의 서사 구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윤호(정일우) 같은 캐릭터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상대다. 불안정한 캐릭터에 객관적 시선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범이는 포지션이 안정돼 있는 나레이터로서의 역할도 해낸다.

만약 ‘하이킥’이 시트콤이 아닌 정극이었다면 범이는 태생적으로 지금처럼 큰 비중의 캐릭터가 될 수 없었다. 멜로드라마에서 3~4명의 남녀출연자중 맺어지는 사람은 주연이고 나머지는 주조연이 되는 건 예정된 수순이다.

하지만 ‘하이킥’에서는 주조연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범이 캐릭터의 비중 증가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트콤 장르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만나면 포옹하는 범이와 민호의 관계는 제작진도 미처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범이와 민호는 남자임에도 같이 있으면 예쁜 그림이 나온다. 여기에 범이는 유미를 놓고 단짝인 민호와 미묘한 삼각관계로 얽혀있다. 이른바 학생판 ‘내 여자의 남자’다.

범이는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요소인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캐릭터다. “지가 왜 이씨 식구에 끼냐” “민호랑 사귀는 거야. 성정체성이 어떻게 되지” “나중에 유미랑 결혼할 건가”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은 드라마를 계속 보게하는 요소다.

범이는 ‘배신범’의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8일 에피소드에서 범이는 순재에게 빌려준 돈을 기간내에 갚지않자 집달리를 동원해 빨간 딱지를 붙이고 이순재의 병원까지 접수해버린다.

순재는 아들과 손자에게 범이랑 놀지말 것을 당부하는 10계명을 남긴 터다. 혹시 범이가 사랑의 배신행위를 감행하는 건 아닌지.

아직은 상상신에 그치고 있지만 상상도 자주 하면 ‘복선’이 되고, ‘극중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범이는 재밌고 궁금한 캐릭터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