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 그게 드라마의 본질이다.
|
: <하얀거탑>의 반응이 아주 좋다. 주인공 장준혁과 전임 과장 이주완의 대립 구도가 긴장감 넘치는 관계를
형성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처음 캐스팅되었을 당시에는 어떻게 캐릭터를 준비했나. 이정길 : 원작소설이 일본에서 대단한 반응을 얻어서 두 번이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는 전부터 알고 있었다. 출연을 결정한 뒤 소설과 의학 관련 자료를 읽으며 준비를 시작했다. 제작진들이 참고하라고 준 일본판 <하얀거탑> DVD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내가 새 작품을 시작하며 인물을 하나 창조해서 구축해가는 마당에 일본 배우들의 이미지가 남아 있으면 연기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이주완은 권위와 위엄이 있는 인물이지만 후배 장준혁에 대한 질투심을 생생히 드러내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남에게 무릎도 꿇는 등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입체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무게를 두는 것은 어떤
부분인가.
이정길 : <하얀거탑>은 악인이 따로 있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꼭 의미의 상황적 전달만이 아니라 복잡한
인물의 심리가 구축되어야 대립각이 선다. 최고의 엘리트라는 의사들이 집단 안에서 자기 권위와 자리를 지키려고 하다 보니까 아집도 생기고 권위가
실추되었을 때 감정의 미묘한 곡선도 있을 거고. 그것을 찾는 부분이 이주완이라는 인물에게 주어진 명제라고 생각했다. 이주완은 몇 대에 걸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스스로 귀족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의술을 펼치는 인물이기 때문에 때로는 상당히 고압적이고 자존심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 허와 실이 드러나 허물어지는 순간을 애써 지탱하려는 모습을 통해서는 보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노민국을 자기 후계자로 삼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도 그런 거다. 살아남으려면, 1대 1로 마주했을 때는 “살려주십시오” 하고 부하에게
매달릴 수도 있지만 또 내 가족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삶의 이면. 그런 리얼리티에서 오는 섬세한 감정이 작품의 긴장감을 구축하기
때문에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시청자들이 집중해서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은 그게 드라마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굴욕정길이라는 별명, 애정으로 알고 있다”
: 그래서 <하얀거탑>에서는 짧은 대화나 회의처럼 움직임이 별로 없는 장면에서도
배우들의 시선이 오갈 때의 긴장감만 가지고도 눈을 뗄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이정길 : 한동안 시청률을 의식하면서 드라마들이
만들어지다 보니 계속 큰 사건들만 집어넣고 사람만 바뀌지 이야기는 그대로인 작품들도 많았다. 10대들의 취향에 맞추게 되면서 “시청률 떨어지니
나이 든 배우는 빼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하지만 사실은 살아가는 모습 안에서 감정의 기복도 있고 충격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배우들끼리 “드라마다운 드라마 해서 즐겁지?” 하는 얘기들도 서로 나누고, 보람이라면 그런 게 보람이다.
: 인터넷에서 유독 인기가 많은데 합성 사진이나 동영상들을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또
별명도 많다는 걸 알고 있는지(웃음).
이정길 : ‘인쇄정길’이니, 무릎 꿇었다고 ‘굴욕정길’이니 하더라(웃음). 그런데 그게
기분이 나쁘질 않다. 애정이 없으면 나오지 않는 얘기인 것 같아서. 그리고 합성 사진에서는 이주완이 뛰는 장면을 가지고 짜장면 배달부를 만들기도
하던데, 그런 걸 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상당히 행복한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능력이 악용되지만 않는다면 독특하고 좋은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특히 <하얀거탑>에 대해서는 내가 봐도 훌륭하게 분석한 글이 많고, 배우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악평이
별로 없으면서 단역까지 귀하게 여겨주는 것이 참 소중하게 여겨진다.
“드라마를 생방송하던 시절에 TV 활동을 시작했다”
|
: 올해로 연기 생활이 42년째라고 알고 있다. 정말 긴 세월인데, 처음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이정길 : 고등학교 시절에 주변 선배들의 영향으로 보마르셰나 테네시 윌리엄스 등 다양한 작가들의 희곡을 많이
읽었다. 당시에는 민중 예술, 연극 운동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철저하게 연극만 하겠다고 생각했지 대중적인 스타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스스로 거울을 보면 인물로 뭘 할 것도 아닌 것 같고(웃음). 그러다가 어느 날 영국 문화원에서 상영해주는 셰익스피어 연극의 필름에서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한 <베니스의 상인>을 보게 되었는데 그냥 피가 끓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좌절 섞인 감정도
들었고. 그래서 장래에 대한 계획도 없이, 밥은 굶더라도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어서 남들이 보면 미친 사람처럼 연극을 했다.
: 그런데 특이하게도 극단 생활과 TV 탤런트 활동을 동시에 시작했다.
이정길
: 대학 2학년 때인 65년에 실험 극단에 입단하면서 같은 해 KBS 탤런트 공채로도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잘한 판단이었다. 만약 연극을
하다가 몸이 고단하고 수입이 없다는 이유로 방송 쪽을 기웃거렸다면 더 답답했겠지만 그냥 동시에 발을 들여놓고 스스로 판단한 거였다. 단역을
맡아도 대본을 받아서 가지고 다니면 매일같이 가슴이 뛰었다. 내가 방송국에 들어간 뒤 2년 가량은 녹화기가 없어서 드라마를 생방송하던
시절이었다. 단막극 한 편에 보름씩 연습을 해도 생방송이니까 긴장을 하고, 방송 사고들도 많이 냈다(웃음). 그러다 “이 젊은 나이,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가장 클 때 몇 푼 안 되는 돈과 바꿔먹는 연기를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타성에 젖어서 빠른 시간 내에 꼬질꼬질한 연기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방송을 접고 1년에 십수편 씩 연극을 했다. 그러다 보니 다시 방송국에서 불러줘서 70년부터는 본격적인 TV 활동을
시작하고 70년대 중반에는 당시 청춘스타였던 임예진과 함께 영화 <여고 졸업반> <선생님 안녕> 같은 고교생물을 찍기도
했다. 사실 돈을 버는 대중 스타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내면서 가슴이 답답해질 때도 있었다. 연기생활이라는 건 늘 후회스럽고 부족하고 하나 끝나면
허하고, 또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고 싶고. 그런 의미에서 자기 걸 가리지 말고 훌훌 털며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리텁텁하게 자꾸 뭔가
축적되지 않고 투명하게.
“대본은 음표 없는 악보다”
|
: 그런 의식이 있었기 때문일까. 사실 어느 시점이 되면 중견 연기자들은 안정된 연기력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맞는 역할만 택하는 경우도 있는 데 비해 나이가 들수록 더욱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준 것 같다. 특히 젊은 시청자들이
이정길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부활>이었는데 이후 <비밀남녀>에서는 사회와 가정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교수, <천국의 나무>에서는 야쿠자 보스 등 악역이면서도 복잡한 내면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정길
: 나이가 들면서 악역을 많이 맡았다. 하지만 악역이어도 인물이 미워야지 그 배우가 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청춘의 덫>
같은 멜로 드라마에서 비열한 주인공 역을 맡았을 때도 시청자들이 TV에서는 그 캐릭터를 미워해도 실제로 나를 만나면 반가워하곤 했다. 나는
대본에 음표는 없지만 악보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연주자들이 보는 악보는 같아도 거기에 담겨져 있는 열정이나 표현은 다르니까 연기자 역시 똑같은
대사라도 어떤 생각과 기분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보이지 않는 음표를 찾아내는 작업, 그래서 그걸 제일 많이 찾아내고 빨리
감성적으로나 이성을 가지고 그 인물을 자기에게 담아냈을 때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선을 찾아내는 게 유능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 그런데 그 캐릭터들 대부분의 공통점이 밖에서는 냉혹하거나 비열한 짓도 불사하지만
가정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라는 점이다. 실제로 가정에서는 어떤가.
이정길 :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연기에 묻어나오는 거다(웃음). 나는 독자이고 남매를 두었는데 한 번도 체벌을 해본 적 없이 친구처럼 키웠다. <프라하의
연인>에서 딸과의 관계와 비슷할 것 같다.
: 최근 이순재 선생님을 비롯한 중견 연기자들이 시트콤을 통해 연기력을 새삼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시청자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혹시 시트콤 출연 제의가 들어온다면.
이정길 : 이순재 선배님과는 함께 연극을
많이 했는데 <맥베드>에서 맬컴 역할을 더블 캐스트로 맡은 적도 있고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선배님이 아버지 역을 하실
때는 내가 큰아들 비프 역을 맡았었다. 순재 형은 대학 시절부터 감성이 빠른 연기자이셨기 때문에 품위를 지키면서 웃음을 주는 방법도 잘 아신다.
나는, 어쩌면 할 날이 있겠지. 하지만 배우들이 망가지는 모습만을 가지고 시선을 집중시키려는 사람들도 있고 자칫하면 천박해질 수도 있는 것
같으니 스스로 판단을 해서 조정해야 할 것 같다. 만약 내 스스로 감당이 가능하다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연기 생활 42년, 내게는 한결같이 최고의 순간이었다”
|
: 연극 무대에 대한 애착이 여전히 강한 것 같은데 다시 무대에 서게 된다면 어떤 역할을 꼭
해보고 싶은지.
이정길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나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다. 그런데 연극을 하려면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예전에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결혼생활의 몇장면>을
공연하는 데 두 시간짜리 2인극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만만치가 않았다. 두 달 동안 연습하면서 술 담배 끊고 등산 다니면서 호흡 기르다 보니 좀
나아졌고, 40일 동안 공연하면서는 담배 한 모금 입에 안 댔다. 연극을 준비하려면 그게 당연한 거다. 그래서 선뜻 시작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해야지.
: 지금까지 연기를 해오면서 스스로 가장 충만했던, 최고의 시간이라고 생각되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이정길 : 지금까지 똑같다. 항상(웃음). 그동안 거의 공백 없이 좋은 작품을 해올 수 있었고,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얼마 전 <연개소문>에서도 20킬로그램 넘는 갑옷을 입고 말을 타며 고함을 질러가며 연기를 했다. 내가 하고자 했던 작업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42년째 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