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무명세월이 빚은 진중한 향기, 진품 김명민

토기와 도기, 자기의 차이는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분명 똑같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모양도 같은데도 불구하고, 어떤 과정을 거쳤느냐에 따라,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밥을 담아 먹을 수 있는지 여부가 확 달라진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독특한 모양의 토기라고 할지라도, 정말 전시용이 아니라 제대로 쓰여지기 위해선 구워지고 유약이 발라지고 또 다시 구워지는 고통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저 ‘나중에 멋있게 될 그릇’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재능이 출중해 눈에 띄는 배우가 있긴 하지만 고통의 시간을 겪어서 성숙한 배우는 그들이 범접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 지난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을 했으며, 연기대상시상식을 감동의 바다로 만들었던 김명민이 바로 유약발라 구워진 자기 같은 사람이다.

김명민이 가진 장점은 참 많다. 옛날 같았으면 멋있다고 말했을 굵고 진한 외모가 느끼하다고 여성들에게 거부당하는 이때 김명민은 남녀가 모두 인정하는 청순한 외모를 가진 몇 안되는 배우이다. 오죽하면 이순신에서 거친 수염을 달고 나오는데도 네티즌들이 그를 ‘청순명민’으로 불렀을까 싶다. 하지만 청순하다고 해서 유약하고 슬프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 안에는 누구도 꺾지 못할 단단한 밀도가 보인다. 또한 안정된 음성톤과, 완급을 조절할 줄 아는 연기까지 왜 이런 배우가 일찌감치 뜨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김명민이 데뷔했던 시절은 센 드라마들이 상당히 많이 나왔던 시절이었고, 담백하기가 동치미 같은 그의 외모와 성품에 맞는 캐릭터들은 별로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데뷔시절 그는 센 캐릭터를 연기했다. 어려운 시절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자신의 길을 거칠게 개척했던 첫째 아들을 맡은 ‘아버지와 아들’ 또,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는 그야말로 치사한 악역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비록 그 드라마는 시청률이 높진 않았지만, 허우대가 멀쩡한 악한 역을 맡은 김명민은 당시 무명에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상에서 라이벌 격인 유오성의 아우라에 절대 덮이지 않았던 것이 재미있었다.

이후 영화 ‘소름’에서 주연을 맡아 호연을 펼쳤지만, 인정받은 작품성 만큼 흥행이 짭잘하지 못했었고, ‘꽃보다 아름다워’에선 의외로 럭셔리한 연기를 펼쳤지만 역시였다. 연기는 잘 하나 스타성은 없는 배우로 낙인찍힐 위험에서 다행히도 그는 연기를 포기하고 이민가려던 직전 ‘불멸의 이순신’을 만났고, 초반 시청률의 부진에도 불구 그의 전매특허인 은근과 끈기를 발휘 인기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서게 되었다.

차기작 ‘불량가족’에서는 굴욕 12종 세트가 나올 정도로 이순신과는 180도 다른 그야말로 연기자 김명민의 코미디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민성 MTM 대표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

물론 양아치 건달 연기야 어디 모나지 않게 잘하긴 했지만 김명민이라는 배우가 가지는 느낌은 ‘진중함’이다. 악역이든 선한 역이든 워낙에 ‘고행’ 길을 걷고 무명이 길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자신을 던지는 진정성이 보인다. 다행히도 이번에 그가 살려내야할 캐릭터는 그가 가진 두 가지 얼굴, 지적인 냉혈안과 진지한 휴머니스트 이 두 가지를 녹여넣을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캐릭터이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하나 같이 의사라는 것인데, 일본 소설을 주제로 한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는 주인공 악역을, 그리고 의학 스릴러 영화 ‘천개의 혀’에서는 탐정 같은 유능한 의사를 맡았다. 또 ‘닥터스’라는 의학다큐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활약하고 있어 과연 김명민이 가진 매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 테세를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냉철하지만 속엔 누구 못지않은 연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또 깔끔하고 곱게 자랐을 것 같은 인상 속에는 오랜 무명시절의 설움으로 닦인 그윽한 향기가 나는 이 사람은 딱 고아한 조선백자 그 자체이다.

 

ⓒ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세계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2007-01-05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