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요동정벌
1352년(공민왕 1년) 안우의 휘하에서 조일신의 난을 토벌하였고, 1358년 양광전라도 왜적체복사가 되어 왜구를 토벌하였다.
이후 우왕 때까지 6도도순찰사, 6도도통사, 해도도통사 등의 각급 관직을 띠면서 수십 차에 걸쳐 최유의 침입, 김용의 난,
홍건적의 침입, 제주목호의 난,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여 왕권을 안정시키고 국가를 보전하였다. 1365년 강화에서 왜구와 싸우던
중, 집중화된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신돈에 의해 좌천되어 유배되었다가 1371년 신돈이 처형되자 복직하였다.
1388년(우왕 14년)에는 이성계와 함께 권신 임견미·염흥방을 제거하고 집권하였다. 명나라가 철령위(鐵嶺衛)를 설치, 북변
일대를 요동에 귀속시키려 하자 요동정벌을 계획, 정벌군을 이끌고 출정했으나, 이성계 등의 위화도회군으로 요동정벌이 좌절되었다.
이성계군이 개성에 난입하자 이를 맞아 싸우다가 체포되어 유배되었다가 개경에서 참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