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에 왜구가 강화도에 침입하였다. 왕은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동서강 도지휘사
(東西江都指揮使 - 동강은 지금의 임진강, 서강은 지금의 예성강)였던 찬성사 최영을
동강으로 출전시켰는데, 침입한 왜구가 서강으로 들어와서는
세조(世祖, 태조 왕건의 아버지)의 능인 창릉(昌陵)에 난입하여 세조의 초상화를 약탈하여
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빌미로 왕은 최영을 해임하고
김속명(金續命, 김원명의 동생)에게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함으로써 그간 왜구로부터
개경을 방어해 왔던 최영의 군사통수권을 박탈하였다.

또 연저수종공신 출신의 측근인 찬성사 유숙(柳淑), 홍건적 2차 침입과 여진족 정벌에서 큰 공을 세운 평리(評理, 국정을 총괄하던 첨의부의 재상 중 하나) 한방신(韓方信)도 같은 달에 2선으로 퇴진시켰다. 유숙은 공민왕의 오랜 측근이었지만 이즈음 재상들의 권한을 내세우며 왕권을 제약하려 들어 공민왕과 충돌한 적이 있었다. 한방신은 여진족 정벌 후 포상받은지
1년 남짓한 때여서 여전히 그 높은 기세로 고려 정계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거듭되는 내우외환으로 인해 왕권이 이전에 비해 약화되고 있었는데, 공민왕은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 수립에 골몰하였다. 그 첫 번째 결과로 공민왕 14년 3월에 행해진 각종 인사조치는 이후 신돈을 앞세워 전개되는 정계 개편의 방향을 암시한,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