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이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미루어 당시 공민왕은 변발과 몽골식 복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회를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변발을 푼 것은 고려의 자주적 전통을 되살리려는 공민왕의 정치 방향을 암시하는 근거 중 하나이다.

곧이어 공민왕은 정방(政房)을 혁파하고 문신의 인사는 전리사[典理司 - 이부(吏部)의 후신]로, 무신의 인사는 군부사[軍簿司 - 병부(兵部)의 후신]로 귀속시켰다. 모든 인사행정을 그 소관기관에서 정당한 절차와 기준에 의해 공정하게 행함으로써 정치 기강을 바로잡고 왕권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정방을 폐지함으로써 권신(權臣)에 의한 변칙적 인사행정을 바로잡으려 했던 것이다.

정방을 혁파한 후 공민왕은 원년(1352) 2월에 즉위교서를 발표하여 고려의 전통과 역사를
부각시켜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당시 고려 사회가 안고 있었던 각종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책을 제시하였다. 이 개혁책은 크게 두 가지 큰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정치적인 면에서는 국왕 중심의 정치제도를 올바르게 회복하여
왕의 권능을 온전하게 발휘하겠다는 것이고, 경제적인 면에서는 불법을 행하여 토지를
빼앗고 백성을 노비로 전락시키는 권세가들의 악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후속조치로
공민왕은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을 다시 설치하여 부당하게 토지를 빼앗고 백성을
노비로 만드는 행위를 근절시키려 하였다.

공민왕은 고려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자주적 인식을 바탕으로 개혁정치를 추진하였으므로, 이것은 다분히 원나라에 반대하는 성향을 가질 가능성이 있었다. 즉위 직후 변발을 푼 것은 이를 입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즉위 초 공민왕의 개혁은 정치적인 면에서 정방
혁파를 통한 정치기강 확립과 왕권 강화를 꾀하였고,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불법적 토지
집적을 막고 양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민변정(田民辨整) 사업을 강행하는 데 주안점이
두어졌다. 이는 공민왕이 우선 당면한 현실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