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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포소녀 김옥빈 "얼짱 벗고 배우란 옷을 입고 싶다"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는 김옥빈(21)의 눈이 반 쯤 감겨 있다. 개봉을 앞둔 영화 ‘다세포소녀’ 홍보와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 촬영으로 밤을 샌 탓이다. 급기야 찌는 태양 아래 사진 촬영을 하다 탈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건넨 그의 첫 마디. “사진 건질 만한 것 있었나요?” 갓 스물이 넘은 배우지만 보통내기가 아니다.

지난해‘여고괴담 4:목소리’(여고괴담 4)로 데뷔한 이래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그는 장소를 실내로 옮겨 인터뷰를 하는 동안 영화에 관한 질문만 하면 언제 쓰러졌냐는 듯 큰 눈망울에 총기를 띄우고 과장된 몸짓까지 덧붙여가며 답변에 열중했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저 오늘 원조교제 약속이 있어 조퇴하겠습니다.” 영화 속 김옥빈이 맡은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이하 가난소녀)가 던지는 첫 대사다. 그가 원조교제와 동성애와 사도-마조히즘이 난무하는, 소위 ‘막 나가는’ 영화에 합류한 것은 ‘정사’ ‘스캔들’을 만든 이재용 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신인인 제가 역할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감독님께서 택한 후보 가운데 제가 있었고, 오디션 보고 낙점 된 거죠.”

B급 달궁의 인터넷 만화 ‘다세포소녀’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쾌락 명문 ‘무쓸모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자신들을 모범생으로 만들려는 선한 음모(?)에 맞선다는 내용. 리얼리티는 당연하게도 ‘쓸모 없는’존재다. 이재용 감독은 그에게 영화의 색깔에 맞춰 연기의 색깔을 찾을 것을 요구했다. “옥빈아, 넌 순정만화 인물처럼 눈을 크게 뜨고 과장된 동작을 하고 궁상스럽지만 아름다워야 하며 자연스러워야 해” 김옥빈은 감독의 규정할 수 없는 이런 요구가 오히려 책에서 찾을 수 없었던 캐릭터를 고민하고 맘껏 연기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주었다고 했다.

가난소녀 캐릭터가 자신과 비슷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대답. “전작이 ‘여고괴담 4’ 였잖아요. 귀신 역할이니까 우울한 이미지만 도드라졌으니 당연한 거죠. ‘섹시한’ 부회장 소녀, ‘귀여운’ 도라지 소녀 같은 역할은 생각도 못했어요.”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운 것이 많단다. “데뷔 직후엔 연기 관련 책들을 읽는 데만 급급했죠. 그런데 책은 무조건 연기의 ‘리얼리티’만 강조하더라구요.”

드라마에서 수준급의 댄스 실력을 뽐내고 있는 그에게 영화 속 ‘흔들녀’ 동영상이 훨씬 예뻤다며 눙을 치자 손사래부터 친다. “아휴~ 말도 마세요. 드라마는 들어가기 전 한 달간 춤을 배운 거지만 영화 속 춤은 막춤인걸요. 촬영이 없거나 이동 중에 음악을 즐겨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훈련이 돼있던 거죠.”

또래 여배우들이 청순하고 발랄한 역할로 인기를 얻는 데 비해 귀신, 베트남 처녀, 가난소녀, 사기꾼, 백 댄서 등 짧은 경력 안에서 그가 보여준 역할의 진폭은 상당히 크다. 그래도‘얼짱’ 출신인데 평탄치 않은 역할만 해서야 되겠느냐는 질문에 “‘얼짱’이라는 말, 이젠 좀 지겨워요. 실은 영화에 데뷔한 이후 알려진 사실일 뿐인데….” 이젠 그 수식을 떼고 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맡은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성악에 베트남어에 춤까지 배워야 했던 도전 과정이 힘들었지만 즐거웠다는 김옥빈. 호기심과 열정으로 충만한 그는 앞으로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영락없는 ‘다세포소녀’ 과(課)였다.

김회경기자(hermes@hk.co.kr)

2006.08.08 (19: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