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 vs <행복한 여자>
적어도 TV에 있어서 주말 저녁은 여자들의 영역이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시간은 가정주부, 소위 ‘아줌마’들의 영역이었다. 때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그 중심에 여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주말 드라마는 바로 주말 저녁의 그녀들을 위한
이야기다. 이 시간대의 드라마에 ‘가족’이 출연하고 ‘결혼’이 일대 사건으로 벌어지며 종종 ‘불륜’이 목격되는 것은 그래서 차라리 필연적이다.
그런데 지금 방영 중인 두 편의 주말 드라마는 그 관계 안에 놓인 ‘여성’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그 소재도
‘복수’와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영역이니 MBC <문희>와 KBS <행복한 여자>의 인물들은 각각 다양한 맥락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두 작품의 중심에 놓인 여자들은 과연 어떤 여자들일까. 강명석 <매거진t> 기획위원과 조지영
TV평론가가 <문희>와 <행복한 여자>의 ‘여성들’을 불러낸다.
그 ‘여자들’의 문제
MBC <문희>에서 여자들은 알고, 남자들은 모른다. 문희(강수연)가 과거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유진(조연우)은 모르고,
장한나(김해숙)가 문희의 어머니의 수술비를 대주는 대신 그 아이를 데려와 자신이 낳은 것처럼 속인 것을 김영철(박상면)은 모른다. 문희의 올케
최상미(이승연)가 혼전 순결을 지켰다는 주장 역시 어딘가 석연치 않고, 방숙희(김영란)는 딸 문현(이재은)과 함께 배다른 자식 문희를 집 밖으로
쫓아내기까지 하지만, 남편 문현철 앞에서는 문희가 자발적으로 나갔다고 말한다. 남자들 앞에서는 애교와 내숭을, 여자들끼리는 거짓과 폭력과
폭로를! <문희>의 여자들이 남자에게 사랑받고, 자신의 위치를 보장받는 것은 선악과 상관이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착한 여자’가 아니라 ‘수단 좋은 여자’다. 문희가 문현철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이어받으려면 자신에게 잘해준 배다른
오빠 문호(정웅인)마저 몰락시킬 책략이 필요하고, 장한나는 문희로부터 남자아이를 데려오면서 ‘대를 이은 며느리’로 인정받는다. 수단이 좋으면
문희처럼 감춰진 비밀이 있어도, 가족 안에서 가장 밑바닥일 수밖에 없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치고 올라갈 수 있고, 수단이 나쁘면 ‘남편에게
배신당한’ 방숙희처럼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면서도 악이나 쓰는 악녀 취급을 받는다. <문희>는 중년 주부들을 주 시청자 층으로
삼은 가족 드라마, 혹은 여성 드라마의 고정적인 ‘나쁜 여자 착한 여자’에 대한 강박 대신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그래서 오히려
남자에게 사랑받는 ‘위기의 여자들’을 중심에 놓았다.
수단 좋은 여자들의 드라마
물론, 이것이 새로운 여성 드라마를 위한 파격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시도라고는 장담할 수는 없다. 계속 문희에게 극단적인 행동만 되풀이하는
방숙희와 문현의 캐릭터나 조선시대의 왕처럼 절대 권력을 가진 채 여자들 간의 싸움에는 큰소리만 치는 문현철, 여자들에게 잘해주는 부드러운
남자들인 유진과 김영철처럼 여성들의 싸움에서 한 발 빠진 채 단편적으로만 묘사되는 남성들의 모습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편견을 다시
강화시킬 가능성도 갖고 있다. 그러나 <문희>는 그 여성들의 싸움을 통해 사랑이 아닌 권력을 욕망할 수 있고, 남성 중심의 가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여성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도 함께 가진다. 문현철 회장의 말대로 문희가 단지 유진만 사랑해서인지, 아니면
유진과의 결혼으로 얻을 수 있는 병원 경영권까지 사랑해서인지는 알 수 없고, 장한나가 딸들을 두고 굳이 남자 아이를 입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할머니에게 이혼 권유까지 받았던 한이 있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복수’나
‘낳은 정과 기른 정’이라는 모성의 신화에 기대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문희>는 중년 주부 대상의 가족 드라마에 필요한 대중적인
요소들 안에서 한국 여성이 그런 ‘수단’을 쓰며 사는 이유도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가졌다.
그래서 <문희>에 필요한 건 문희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가 아니라 더 정교한 ‘수단’이다. 문희와 방숙희, 혹은 최상미와의 대립은
소리 지르고 뺨이나 때리는 것보다는 11회의 문희와 최상미처럼 생글생글 웃어가면서 서로의 아픈 곳을 찌르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고, 문희는
아이몰 백화점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디테일한 과정을 통해 기업인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정보 입수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지도 않고, 그저
부하 직원의 행동에 의해 문호의 비리를 떠밀리듯 폭로하는 문희의 모습으로는 그의 욕망이 정당성을 얻기 힘들다. 장한나의 문제 역시 그저 남편과
아들의 무조건적인 이해보다는 대대로 여성들이 가업을 지켜온 통주상회 여자들이 아버지가 왕인 문현철의 집안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보다 흥미로울 것이다. <문희>의 정성희 작가는 과거 <국희>를 통해 올바른 길만 걸으며 성공하는 여성
기업인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번에는 반대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선한 어머니이자 독한 기업인의 모습을 가진 여성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인가. 글 강명석 |
불행하게, 조금 더 불행하게
<문희>에는 문희가 나오고, <나쁜 여자 착한 여자>에는 나쁜 여자와 착한 여자가 나온다. 그러나 <행복한
여자>에서 행복한 여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 드라마는 아마도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여자의 무용담이 될 모양인데, 이 여자의 삶과 그
주변이란 주말 저녁을 불편하게 만든다. 현재 스코어, 아무래도 ‘불행한 여자’에 가까운 지연(윤정희)은 대체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이웃
방송에 사는 ‘문희’도 불행의 정점에 있다. 대체 주말 저녁마다 여자들은 왜 이토록 불행한가? 그보다 먼저 떠오르는 근본적 질문 하나:
행복해지려면 먼저 불행해져야 하는가?
헤어져야 발견되는 이상한 임신
지연의 신산스런 인생은 출생부터 남달랐다. 그녀는 외도로 태어난 아이였고, 낳아준 엄마와 키워준 엄마가 다르며 그 아버지는 그녀가 11세
되던 해 떠났다. 자라서는 좋은 사람 만나서 힘든 시집살이 속에서도 즐거운 신혼을 보내던 중, 남편이 초등학교 동창과 외도 중인 걸 알았다.
결국 이혼을 감행하는데, 결별을 통보하고 남편이 미국으로 떠나던 그 순간 임신을 알았으며 현재 그 딸아이를 홀로 키운다. 지연의 3살 박이 딸
아이 은지(박사랑)는 <행복한 여자> 시청률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아빠인 준호(정겨운)는 은지가 친딸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지연과 태섭(김석훈), 지연의 친구, 친정 식구 그리고 시청자까지 알고 있는 사실을, 이제 겨우 준호가 알게 된다. ‘헤어지고
발견되는 임신’은 박정란 작가의 전작인 <어여쁜 연인>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또한 그 전작인 <노란 손수건>은 남자가
임신 사실을 미리 알았다는 점만 다를 뿐, 헤어진 연인의 아이를 임신한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점은 비슷하다. 그 의도야 어찌되었든, 남자와
헤어지고 나서 의미심장한 음악과 함께 불쑥 헛구역질을 해대는 여주인공을 자주 보고 있기는 괴롭다. 그 아기가 드라마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갈등과
시청률을 꽃피워 방송사와 광고주를 흐뭇하게 만드는 대업(?)을 달성할지라도, 그런 아기를 계속 보고 싶지는 않다. 시청률에 아기가 볼모로 잡힌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이 해모수와 유화 부인이 살던 시대도 아니니, 피임법을 아는 주인공들이 등장하거나 그게 아니면 가정드라마의
새로운 갈등 구조를 고민해볼 만한 이유다.
가족관계, 이토록 연약한 이름
<행복한 여자>에 새로운 갈등 구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연의 곁을 지키는 태섭(김석훈)의 계부는, 지연의 생부
종민(장용)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지연은 생부를 시아버지로 모시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 풍경이 기시감을 주는 이유는
역시, 친부모를 시부모로 모신 <하늘이시여>의 ‘자경 효과’(?) 때문이다. 심지어 자경은 윤정희의 전(前) 캐릭터이기도 하다.
자경이가 그랬듯이 지연은 잘못이 없다. 사생아로 태어난 게 본인의 잘못이 아니었고, 하영(장미인애)처럼 남의 남편과 잠을 자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지연은 끊임없이 상처를 받고 공격을 받는다. 지연이가 며느리였을 때도 그녀를 밥 먹듯 무시했던 준호 모(사미자)는 엄연히 남남이 된
후에도 지연의 사무실로 난입해 따귀를 날린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 악의 한 점 없었지만 존재 자체가 상처가 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종민이
그렇다. 태섭 모(박순천)에게는 둘도 없이 따뜻한 남편이겠지만, 원희나 그 딸들에겐 아물지 않는 상처 그 자체일 것이다. 별 생각 없이 하영과
만남을 거듭했던 준호도 따지고 보면 종민과 비슷할 수도 있다. 특별한 악의를 품지 않아도 누군가의 가슴에 피멍을 남길 수도 있다는 건, 서늘한
현실이다. 특히나 무심하기 쉬운 가족 관계의 외피란 실은 그토록 연약하다는 뜻이다.
<노란손수건>이 호주제 폐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던 전력이 있었던 것처럼, <행복한 여자>는 혈연관계가 가족 관계의
전부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태섭은 죽은 선배의 아들을 친아들로 삼았고, 원희는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지연을 친딸처럼 사랑한다.
지숙(문정희)과 지선(김윤정) 역시 지연을 친자매처럼 대한다. 그 집의 작은 부엌에서 왁자하게 수다 떨며 만들어내는 보쌈김치는 당연히 맛이 있을
것 같다. 이 살가운 부엌은 드라마의 생기를 돌게 한다. 자기 운명을 반복하는 딸 때문에 가슴을 쥐어뜯는 고두심이나, 돈 해달라 십 수 년 만에
찾아온 딸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장용의 연기는 드라마의 낡은 설정을 구원한다. 우여곡절을 거쳐, 태섭과 지연은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면, 그들이 충분히 불행하지 않다는 뜻이다. 불행은 대체 언제쯤 무르익고 충만해질까?
매거진T 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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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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