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가 구겨진 MBC 주말극의 자존심을 펼 수
있을까.
70,80년대 영화의 여주인공 같기도 하고, 추억의 여배우 이름 같기도 한 ‘문희’가 수년동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해온 오후 8시대 MBC
주말드라마의 구원투수로 24일 출격한다. 18일 종영한 송윤아 주연의 ‘누나’가 뒷심을 발휘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말
8시대 드라마 경쟁의 주도권은 KBS가 잡고 있다. KBS 2TV ‘행복한 여자’는 전작인 ‘소문 난 칠공주’의 소문 난 위세에는 못미치고
있음에도 20%대의 안정적인 시청률로 순항중이다.
미니시리즈형 드라마에 밀려 그 의미가 다소 바랬지만 주말극은 전통적으로 ‘드라마의 꽃’이라 불려온 지상파 방송사의 허리 같은 존재이자
장기프로젝트다.
현재 부동의 시청률 1위 드라마 ‘주몽’을 필두로 3년만에 드라마 왕국의 이름값을 한껏 드높이고 있는 MBC에게 주말극의 정상 탈환은
마지막 남은 과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문희’의 성적표를 향한 방송가의 관심은 높기만 하다.
2007년을 누빌 ‘문희’의 분신은 SBS ‘여인천하’ 이후 6년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하는 배우 강수연이다.
문희라는 다소 ‘올드’한 배역명과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 진입한 강수연이 만났다는 사실은 기대감을 낳는 한편으로 드라마의 ‘뉴웨이브’와는
거리가 있어 보여 텁텁한 선입견을 안겨줄 여지도 있다.
그러나 14일 제작발표회를 기점으로 실체를 일부 드러낸 이 드라마는 ‘선 굵은 여성 드라마’로서 드라마의 정통과 기본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사고 있다.
‘문희’는 일단 제작진과 캐스팅에서 ‘관록 9단의 고수’들이 우르르 출동했다는 측면에서 탄탄한 뿌리를 자랑한다.
극본을 맡는 정성희 작가는 ‘국희’, ‘패션 70’s’, ‘서울 1945’ 등을 통해 근현대사의 시대적 배경에 인물, 특히 여성의 강인함
및 개인사를 힘있게 결합하고 조명해온 주인공이다. 연출자인 이재갑PD는 MBC일일드라마의 전성기를 주도했고, 드라마국 국장도 역임한 베테랑.
스타PD의 조로 현상이 역력한 방송가에서 연출 분야의 ‘흰머리 파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캐스팅 진용도 연기의 깊고 묵은 맛을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3,4장 짜리의 초기 시놉시스만 보고도 ‘문희’ 역에 강수연 말고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다는 이재갑PD의 전언대로 강수연은 독기와 한이
어우러진 여인 역을 통해 특유의 카리스마를 듬뿍 선사할 예정이다.
백화점 재벌의 서녀로 태어나 18세에 낳은 아들을 입양보내야만하는 ‘문희’역의 강수연은 뒤늦게 친부의 백화점 경영에 참여해 이복형제들을
물리치고 후계자에 오르려는 야심을 활활 지핀다.
문희의 한 많은 성공기와 야심이 드라마 ‘하얀거탑’의 남성들 못지 않게, 사회적인 존재로서 여성의 강철 같은 욕망을 엿보인다면 입양 보낸
아들과 관련된 문희의 절절한 모성 이야기는 신파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여성시청자의 심금을 자극할 예정이다.
이 대목에서 ‘문희’ 강수연과 얽히는 인물군이 김해숙-박상면 부부다. 포목점인 통주상회 안방마님인 시어머니(정영숙)의 소망을 풀기 위해
문희의 아들을 친자로 가장해 입양한 뒤 키운 며느리 김해숙(한나)과 우연히 강수연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김해숙의 연하 남편인 박상면(영철)은
드라마의 풍부한 스토리와 갈등을 만드는 주연급 진용을 이룬다.
그동안 각종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단골 ‘엄마’ 역으로 활약했던 중견여배우의 대표주자 김해숙이 기른 정과 낳은 정을 놓고 강수연과 대립하는
주축으로 이번 작품의 전면에 나서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여기에 강수연의 이복오빠인 정웅인과 그의 야심녀 부인 이승연, 강수연을 사랑하는 의사집안 출신의 조연우 등 다종다기한 인물군이 어울려
50부작의 긴 여정을 펼쳐나간다.
조연우 박민지 등 신진급 젊은 연기자들도 배치돼있지만 출연진 대부분이 노련함으로 똘똘 뭉쳐있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가 신선하되 설익은
연기자들에게 지친 시청자들의 시선을 안정감있게 사로잡을 수 있는 주요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SW확대경]"배우들 실제나이는 숫자에 불과”
● 엇갈리는 배우 나이
지난 14일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열린 MBC ‘문희’의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진들이 유쾌하게 자주 거론한 화두는 ‘나이’였다.
정웅인은 “사실 동생인데 오빠가 됐다”고 말했고, 박상민은 “정확하게 한바퀴가 돌아가는데 부부로 연을 맺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배우의 실제 나이와 극중 나이가 엇갈리는 경우는 당연하게 허다하지만 ‘문희’의 사례는 그 정도가 한결 얄궂고 복잡해 눈길을 끈다.
먼저 ‘문희’ 강수연의 극중 연령은 29세다. 머리를 짧게 쳐 한결 앳되게 보이지만 불혹의 나이에 20대 여성을 연기한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강수연은 극중 회상신에서 교복 입은 여고시절까지 ‘타임머신’을 탔다. 이에 대해 강수연은 “촬영하는 동안 나이와
관련한 부분이 내내 불안했다”면서도 “외모가 딱 18세 여고생처럼 보일 수 없겠지만 감성으로 그것을 표현하려 노력했다”며 여유있게 응수했다.
강수연의 상대역인 조연우는 극중에서 강수연과 29세 동갑내기로 나온다. 강수연과 조연우의 실제 나이차는 7세다. 한바퀴가 돌아간다는
박상면의 코멘트는 바로 부인 역의 김해숙을 겨냥한 얘기였다. 극중 6세 차이의 연상녀-연하남 부부로 나오는 김해숙과 박상면은 실제로는 양띠
띠동갑이다. 박상면은 “처음엔 김해숙과 부부로 호흡을 맞춘다는 게 여간 쑥스럽지 않았는데 어느새 대선배인 김해숙의 노련한 리드로 부부처럼
편안하고 따스한 눈빛을 주고 받게 됐다. 연말 연기대상에서 ‘베스트 커플’상도 노려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가하면 극중에서 ‘문희’ 강수연의 8세 연상 이복오빠로 나오는 정웅인은 실제로는 강수연 보다 5세 어린 동생이다.
그렇다고 ‘문희’ 출연진의 나이와 관련한 난맥상이 극에 대한 시청자의 몰입을 크게 방해할 것 같지는 않다. 연출자인 이재갑PD는 “배우한테
생물학적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전제한 뒤 “특히 강수연의 경우 폭넓은 연령대를 오가는 감정의 진폭에 연출자인 나도 깜짝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스포츠월드 조재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