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를 만나기 전 기자의 머릿속을 맴돌던 임호에 대한 짧은 단상들이다. 그러나 정작 그를 만났을 때 첫 느낌은 '개구쟁이의 걸음걸이를 하고 있구나'였다.

요즘 유행하는 일명 '샤키' 헤어스타일로 한껏 멋을 내고 헐렁한 청바지에 화려한 프린트의 빨간색 셔츠를 입고 성큼 성큼 걸어오는 그는 분명 밝고 경쾌하며 또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임충 작가가 집필한 S-TV 대하사극 "장희빈"에서 처음 임호의 모습을 봤을 때 그는 수줍은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기자로 첫발을 들여놓을 당시 사람들은 그의 연기를 평가하기에 앞서 '누구의 아들'에 더 집중했고 그가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연기를 하든 언제나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임충의 아들 임호'였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임충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연기자 임호'로 거듭났다. 오롯이 자신만의 이름으로 인정받는데 꼬박 10년이 걸렸다며 이제는 수줍은 미소 대신 자신감 가득한 프로의 웃음을 웃을 수 있게 됐다.

오래 알고 지내는 편한 친구처럼 그와의 대화는 시종 편안했고, 스타카토처럼 딱딱 끊이지 않고 부드럽게 연결되는 그의 이야기들 속에서 '과묵할 것' 같았던 오해가 한풀 벗겨졌다. 그는 차분하게 그리고 조리있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1. 사랑은 언제나 새로워야 한다

M-TV 특별기획 "대장금"에서 그는 '장금'을 사랑하지만 사랑하기에 보낼 줄 아는 '쿨' 한 남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지금 한창 열연 중인 M-TV 주말연속극 "사랑을 할꺼야"에서도 그는 사랑하는 여자 '보라'를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품으로 보내는 멋진 남자를 연기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그에게 종종 달콤한 오해와 상상을 품곤 한다.

"몇해 전 김창환 선배가 김태영씨의 노래 "혼자만의 사랑"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저를 강력 추천한 적이 있어요. 그 이유가 헤어진 여자가 와도 아무말 없이 안아줄 것 같은 남자처럼 보여서라나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한번 틀어진 인연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임호는 만약 헤어진 여자친구가 다시 돌아온다면 옛 감정을 떠올리기보다 새롭게 시작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고 전했다.

"옛날의 감정을 떠올린다고 그 감정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헤어져 있던 시간만큼 달라진 모습의 서로를 받아들이는 작업도 필요한 거니까요"

2. 독신주의서 결혼 옹호론자로

한국 성인남자의 혼인 적령기를 서른에서 한두살 더하고 뺀 나이라면 분명 임호는 혼기를 살짝 넘긴 나이가 된다.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주위에서 학부형이 되는 그 시간 동안 아직 솔로로 남아 있는 그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독신주의였어요. 결혼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던 거죠. 당시 결혼에 실패한 커플을 여럿 봤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무런 계기도 없이 결혼이 하고 싶어졌어요. 결혼 회의론자였던 제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엄청난 변화란 생각이 들어요"

아직은 물론 결혼을 할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방 하나 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당장 결혼할 거란다. 그러면서 임호는 사실 2~3년 전에 좋은 사람을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꽤 호감이 갔지만 만날 시간이 없어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없었다고 귀띔했다.

"새벽에 일이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고, 어쩌다 시간이 나도 새벽 2∼3시경이니 자고 있는 그 사람을 깨워 만날 수 없었어요.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어도 감정이 싹틀 시간이 없었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직 저는 솔로인 거죠"(웃음)

3. 10년 걸려 겨우 한겹 벗었다

KBS 공채 시험에서 당당히 연기의 스타트를 끊었음에도 연기자 '임호'는 데뷔 시작과 동시에 '사극 작가 임충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했다.

"2세 연기자의 이미지를 벗는데 딱 10년이 걸렸어요. 아버지의 이름이 너무 알려진 탓이죠. 이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으니 임금 이미지 벗는데 또 10년이 걸리려나 모르죠"(웃음)

아버지가 대본을 쓰고, 아들이 연기한 작품이 "장희빈", "만강", "대왕의 길 "까지 무려 세편이나 되니 그도 그럴 만 하다. 시청자뿐만 아니라 동료 연기자들에게도 고운 시선을 받지 못했던 그 시간들을 그는 나쁘지만은 않았던 값진 시간이라 회상한다.

"힘들었던 지난 10년을 저는 내공을 쌓은 시간이라 생각해요. 만일 그때 그냥 주저앉아 버렸다면 지금의 난 없겠죠.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아버지의 후광이 아닌 내 노력과 연기로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는 오기…그러니까 되더라고요"

그의 '오기'가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겹겹의 이미지층에서 '임충 아들'의 이미지를 걷어냈다. 그리고는 오랜 시간 많은 작품에서 주로 연기했던 것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 '왕'을 걷어 내는데 그만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미소를 짓는다.

4. 지금의 '신드롬' 열풍은 8할이 거품이다

열악한 제작 여건과 주변 상황에 따라 작품을 완성도 있게 촬영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 일명 '쪽지 대본'으로 촬영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배우가 대사를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드라마 한회가 끝나면 바로 바로 인터넷에 네티즌 반응이 올라와요. 내가 연기자로 데뷔 할 당시만 해도 '작품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을 '시청률'이 평가하잖아요. 시청률이 잘 나오면 그 작품은 당대 최고의 걸작이 되는 거고,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으면 그 작품은 언제 존재했냐는 듯 묻혀 버리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인터넷의 즉각적인 반응은 대부분 거품이라 했다. 좋은 반응이든 나쁜 반응이든 모두 어느정도는 거품이라는 그의 말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거품을 빼고 오로지 연기로, 작품성으로 인정받고 또 인정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 됐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



[2004.9.9 (목) 연예영화신문 제 6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