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이산' 속 사람들, 그 어우러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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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고홍주 기자] MBC 창사 46주년 특별기획 '이산'(극본 김이영, 연출 이병훈 김근홍)이 16일 7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조선 왕조의 르네상스를 연 정조의 일대기를 그려내겠다는 기획 의도 아래 장장 9개월여간 쉼없이 달려온 드라마 '이산'의 종영은 그 자체만으로 아쉬움을 남기는 일이다. 2007년 9월 부터 2008년 6월까지 조선시대 '이산' 속 캐릭터로 살며 시청자들을 역사의 바다속에서 헤엄치게 했던 명배우들을 만나보자.

◇ 이서진, 인간적인 군주 정조를 완성시키다

처음 배우 이서진이 조선 최고의 군주라는 정조의 일대기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겠느냐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산'에는 영조 이순재가 있었고 견미리, 조경환, 이희도, 김여진 등 소위 이병훈 사단의 사극 연기 달인들이 대거 포진해있었다. 그들에 비해 이서진은 애송이었고 배역의 경중과는 관계없이 혹독한 평가를 받아야 했다.

드라마 초반 영조(이순재)의 카리스마에 상대적으로 유약한 이산을 연기해야 할 때만 해도 이서진의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군주답지 않은 유약함과 판단력, 추진력이 부족한 패배주의자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가슴을 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 최종회만을 남겨둔 시점에서 이서진에게 영조의 카리스마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시청자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서진은 본인만의 정조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보다 인간적인 군주의 모습이었다.

앞서 설명했듯 이서진은 정조 이산을 연기하며 패배주의자의 모습부터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충실히 전달했다. 대리청정을 통한 금난전권의 실패로 인한 자괴감과 이를 극복하며 군주로 성장하는 과정, 아버지 사도세자(이창훈)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이로 인한 인간적 분노, 송연에 대한 애틋한 감정 등 77회라는 장대한 스케일 속에서 이서진이 표현해야 할 감정은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이서진은 이를 성장이라는 주제 속에 녹여내는데 성공했다.

앞으로 이서진의 평가는 '이산' 전과 후로 나눠질 것이다. 그만큼 배우 이서진에게 '이산'은 특별한 존재며 앞으로 이서진으로 인해 '이산'도 우리 사극 역사상 가장 특별한 군주의 캐릭터로 기억될 것이다.

◇ 한지민, 이병훈표 사극의 새로운 헤로인


지난 2003년 화제작 '올인'에서 송혜교의 아역으로 데뷔했을 때만 해도 맑고 깨끗한 미소가 전부인 듯 했다. 그로부터 4년 뒤 한지민은 '대장금' 열풍을 이끈 이병훈 PD의 신작 '이산'의 여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이산'에서 정조의 세 번째 후궁 의빈성씨 성송연 역을 맡은 한지민이 2일 74회 방송분까지 최장출연자 중 하나로 '이산'의 멜로의 주축을 이뤄왔다. 때문에 74회 방송에서 송연의 죽음은 그 어느 때보다 절절했고, 슬픔의 절정을 이뤘다.

사실 한지민의 재발견은 지난 2003년 드라마 '대장금'을 이끌었던 이병훈 PD의 신작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순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대장금'의 이영애만큼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사극의 거장' 이병훈 PD의 눈은 정확했다. '대장금'에서 신비 역으로 캐스팅했던 한지민을 '이산' 여주인공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 이병훈 PD는 "한지민의 매력은 매우 맑고 깨끗하다. 무엇보다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사극의 여주인공은 예뻐야하는데 한지민은 맑으면서 예쁜 외모를 가졌다. 사극을 해본 경험과 나날이 발전하는 연기력이 캐스팅의 이유다. 한가지 약점으로 지적돼 온 강렬함마저도 이번 '이산'을 통해 충분히 극복 가능성을 보였다. 명실상부 군주의 여인으로 사극 거장 이병훈PD의 새로운 헤로인으로 손색없는 성장이었다.

◇ 노장은 죽지 않는다‥영조 이순재의 힘!

이순재는 '이산'에서 조선의 제 21대왕 영조 역을 맡아 지난 9월 방송을 시작으로 5개월여간 극의 가장 큰 주축을 이뤄왔다.

카리스마 넘치는 왕의 모습을 그려내며 '이산'을 빛내온 이순재의 연기는 지난 2월 18일 44회에서 영조의 죽음으로 퇴장을 알려야 하는 순간 가장 빛을 발했다. 특히 완성된 초상화를 어루만지며 "이제 곧 다시 만나자꾸나. 거기에서는 네게 좋은 아비가 되어주마"라는 독백과 함께 눈물을 보이는 영조의 모습은 그가 왜 국내 최고의 명 연기자로 손꼽히는지를 함축적으로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이순재는 마지막 촬영이 끝난 뒤 "그동안 열렬히 성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더 많은 격려 부탁드리고 물러갑니다"라는 짧막한 메시지를 남겼다. 5개월간 함께 해왔던 영조와의 이별에 그 누구보다 아쉬움이 클 터이지만 드라마 '이산'에 대한 그만의 애착이 묻어나오는 대목었이다.

◇ 한상진, 무명의 설움 딛고 꽃피우다

'이산'은 연기자 입문 8년차인 한상진에게 2007 MBC 연기대상 신인상 수상의 감격을 안긴 작품이다. 사실 농구선수 박정은(삼성생명 비추미 소속)의 남편으로 더 유명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난 2000년 SBS 톱 탤런트 선발대회에 입상해 차곡차곡 연기 인생을 걸어온 각고의 노력이 비로소 꽃을 피운 결실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이산'은 그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7년 무명의 설움은 '이산'에도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홍국영이라는 배역 자체가 '이산'에서 큰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실 그의 연기력은 출연 전부터 입증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다.

지난해 초 인기리에 종영한 '하얀거탑'을 통해 날갯짓의 조짐을 보였던 한상진은 '이산'에서 물오른 연기력으로 홍국영의 굴곡진 삶을 절묘한 완급 조절로 끌어냈다. 한 때 '홍국영 어록'까지 양산하며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던 그가 초심을 잃고 권력을 행사하다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걷는 과정은 비호감에서 동정으로 버무려져 그의 굴곡진 삶 만큼이나 시청자들에게도 굴곡진 감정을 안겨준다. 연기자 한상진의 홍국영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데뷔 7년만에 이름을 드높인 한상진의 설움 어린 연기 만큼은 시청자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절정을 이뤘다는 것이다.

◇ 발견, 또 발견‥'이산' 최고의 악역들

드라마 '이산'에는 유독 악역이 많이 등장한다. 세손의 즉위를 막고자 하는 배후 세력들간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이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묘미가 더해지는 가운데 '이산'의 악역 중 하나인 성현아가 직접 드라마 속 악역 캐릭터들을 분석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극중 영조의 딸 화완옹주로 분한 성현아가 꼽은 악역은 자신을 포함해 화완옹주가 양자로 들이는 정후겸(조연우)이다, 또 다른 최고의 악역은 이산의 생부 사도세자(이창훈)을 죽게 만든 또 다른 장본인 정순왕후(김여진)가 있다.

성현아는 드라마 홈페이지에 공개된 인터뷰 영상을 통해 "화완옹주는 다혈질에 사리분별 정확한 여장부"라고 자신의 역할을 소개한 뒤 "세손을 죽이기 위해 음모에 치중하는 악역이다"고 전했다.

성현아는 김여진이 맡은 정순왕후에 대해 "굉장히 포스가 강렬한 캐릭터"라고 평가했다. 또 정후겸에 대해서는 "굉장히 냉정하고 사리분별 정확한 악역"이라고 분석한 뒤 "저는 악역인듯 보이나 회를 거듭할수록 일을 저지르고도 노심초사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굉장히 근엄한 악역인줄 알았는데 은근히 철이 없는 구석도 있는 것 같다"며 웃음을 보였다.

중·후반부에 투입된 이재용, 정호근은 정조의 왕위 등극 이후 정후겸, 김귀주, 홍인한 등 극의 축을 이뤄왔던 악역들이 제거돼 보다 막중한 임무를 띄고 '이산'호에 승선했다.

이재용은 지난해 종영한 MBC '주몽'에서 부여의 대사자 부득불 역을 맡아 특유의 선 굵은 연기로 드라마 인기에 일조한 바 있으며, 정호근 역시 28일 종영을 앞둔 MBC 수목 미니시리즈 '뉴하트'에서 최강국과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 민영규 역을 맡아 악역 연기의 진수를 선보였다.


◇ 이들이 없었다면‥감초 연기자들, '이산'을 빛내다

'이산'에서 볼수록 정이 가는 감초연기로 인기를 더하고 있는 이천(지상렬)과 박달호(이희도) 그리고 막선(경인선)이다. 영조와 정조에 걸친 정치 개혁, 정순왕후와 이산의 세력 다툼 등 살벌한 극전개에서 이들의 코믹연기는 맛난 감정의 이완을 맛보게 한다.

'춘화상렬'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는 도화서의 화원 이천은 실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시도때도 없는 장난을 치는 밝은 성품의 인물이다. 비밀리에 춘화를 그려 돈을 버는 대책없는 캐릭터지만, 역모의 단서를 잡을 수 있는 궁궐 지도를 입수한다든가,성송연(한지민)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 도와주는 진지한 면도 있다.

특히 이천은 지상렬이라는 개그맨 출신 연기자를 통해 입체감을 더했다. '대장금' 이후 정통 사극에 두번째로 도전하는 지상렬은 '대장금' 당시 NG대장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은 이병훈PD의 총애를 받는 감초 연기자로 거듭났다.

내시 박달호는 수다스럽지만 인정 많은 인물이다. 비록 허점이 많아 액정서 별감자리에서 쫓겨나 궁 밖에서 장사를 하는 신세지만 주인공 송연과 이산이 위기에 닥칠때면 희생을 불사하는 충성심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박달호의 진가는 주모 막선과의 멜로에 있다. 막선에게 연정을 품지만 내시라는 신체적 한계로 마음을 전하지 못해 애태우는 모습과 막선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싸움을 하는 모습은 폭소를 자아낸다. 그 모습이 다소 '허준'의 임오근(임현식)과 홍춘이(최란)의 러브라인과 닮아 있긴 하지만 이희도의 물오른 코믹연기가 이를 상쇄한다.

시장에서 국밥을 파는 주막집 막선(경인선) 또한 앞선 두 역할 만큼 극의 활력소다. 달호에게 능글능글하게 들이대는 모습, 내시임을 밝히지 못해 감질나는 애정표현만 하는 달호에 대한 앙탈은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산'은 한명의 배우로는 절대로 완성될 수 없는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주·조연 뿐 아니라 아주 작은 배역의 보조출연자까지 한명 한명이 바로 '이산'을 만든 사람들이다. 3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사극의 화려한 부활을 이뤘던 '이산'에 높은 평가를 내린다면 이는 이들 모두에게 공평히 돌아가야 마땅하다.

[드라마 '이산' 속 사람들. 사진= MBC제공]

(고홍주 기자 cool@mydaily.co.kr)





200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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