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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관명 기자]
왜 이리 찡할까. 소위
지존의 '몸개그'인데, 폭소 다음에 찾아오는 이 안쓰러움이라니. 지난 6일 방송된 MBC 월화사극 '이산' 얘기다.
이날 '이산'에선 정조(이서전)가 뜻밖의 몸개그를 펼쳤다. 민초들의 고리채 피해실태 조사를 위해 사복 차림으로 궁궐밖을 나갔다가, 처음
만난 유생 정약용(송창의)과 창고에 갇힌 직후다. 맥가이버 뺨치는 정약용의 즉흥 폭약만들기까지는 이해할 만했는데, 그가 바지춤에서 꺼낸 신기한
물건에는 눈이 휘둥그래진 우리의 정조 임금이다.
창고 밖에 누가 있는지 알기위해 꺼낸 '잠만경'이라는 물건. 거울 2개의 반사 프리즘을 이용한 이 신기한 물건에 정조는 정약용을 냅다
밀치고 바깥 풍경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다. 지존의 체면 따위는 이미 남의 얘기. 갓 쓰고 도포 자락 휘날리며 한쪽 눈을 과장되게 찡그리면서까지
이 난생 처음 본 물건에 빠져든 정조는 분명 지금까지의 정조가 아니었다. 칼바람 근엄과 나긋나긋 조신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거의 몸개그 수준.
하지만 이날 67회 방송분까지 유심히 봐왔던 대다수 선량한 시청자 입장에선 이런 정조의 몸개그가 차라리 안쓰럽다. 장태우(이재용)를 필두로
한 조정 노론 대신들은 말이야 "통촉하소서" 굽신거리지만, 사실상 안하무인격으로 임금을 깔보고 협박하기 일쑤다. 지금은 대왕대비인
정순왕후(김여진)도 언제 자신을 누구와 손잡고 죽일지 모르는 악의 잠룡. 무엇보다 그렇게나 믿고 또 믿었던 홍국영(한상진)은 끝내 자신을
버렸다. 그것도 입에 담기 힘든 '중전 시해 음모' 혐의로.
이젠 누구를 믿나. 그 홍국영의 빈 자리를 누가 채워줄까. 친구 같은 송연이(한지민)정도? 이런 와중에 등장한 이가 바로 '기인'
정약용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임금인 줄도 모르고 담벼락을 넘다 뻔뻔스레 도움을 청하는 기행, 여기에 폭약과 잠만경과 주역에서 보여준 이과계통의
신지식까지 정조에게 정약용은 첫눈에 반한 '새 파트너'임에 분명하다. 이같은 랜덤 파트너에 대한 강렬한 호감과 반가움이 정조의 이런 서민적인
몸개그로 나타난 게 아닐까.
사실 사극 '이산'의 재미는 정조의 임금 같지 않은 임금 이미지, 불호령 속에도 따뜻함이 배어있는 인간미 만점의 군주 보는 맛이었다.
그럼에도 머리 지끈지끈 아파오는 대신들의 기세에, 잠자리마저 "에미의 소청"이라며 강권하는 대비 혜경궁 홍씨(견미리)의 압력에 조금은 답답하고
슬프고 무기력한 사극이기도 했다. 아버지 사도세자(이창훈)와 끝내는 자신을 밀어준 할아버지 영조(이순재)는 이미 이 세상에 없고, 영원한
동반자일 줄 알았던 홍국영마저 유배를 떠난 지금. 새 파트너 만나 정 붙이려는 정조의 몸짓은 그래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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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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