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검찰의 삼성 비자금 사건 특수본부(본부장 박한절 검사장)가 이건희, 이학수 등 관련 핵심 인사들의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검찰은 국회에서 특검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검찰의 자존심’을 걸고 수사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삼성에 대한 직접적이고 본격적인 수사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파고든 ‘정경유착’이라는 검은 사슬을 근본적으로 뿌리뽑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시민사회는 반기고 있다.
MBC 월화드라마 ‘이산’(극본 김이영 / 연출 이병훈)에서도 비슷한 행보가 시작됐다. 26일 방송된 ‘이산’ 22회에서 세손 이산(이서진 분)은 금난전권(禁亂廛權 난전을 금하고 시전상인들에게 국가가 정한 품목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제도)의 부조리를 혁파하려 노력하고 난전을 합법화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산의 금난전권 철폐와 난전 합법화는 첫째 시장가격의 안정, 둘째 난전상인들에게 합법적으로 장사를 하게 해주고 세금을 거둬 조세를 안정화시키는 것, 셋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 노론을 견제하는 것이다.
조선왕조 설립이후 300년간 지속돼온 금난전권은 일종의 트러스트를 형성했다. 시장가격은 트러스트에 의해 결정되고 이에 반대하는 자유 시장이 등장하게 됐다. 이것이 소위 난전이다. 난전에서 형성된 시장가격은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형성된 ‘시장가격’이기 때문에 시전상인들이 책정한 가격보다 훨씬 밑돌 수 있었다. 하지만 난전은 당시 불법이었기 때문에 이산은 이를 합법화시켜 시장을 안정시켜려 한 것. 일종의 자유시장 육성정책, 즉 반(反)트러스트 법인 것이다.
이산의 반 트러스트 법은 지하경제(난전)를 끌어올림으로써 전체적인 시장에 자본 규모를 키우고 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 뿐 아니라 그들에게 합법적으로 세금을 걷을 수 있게 함으로써 조세를 안정화시키는 효과도 함께 거둘 수 있다.
시장에서 화폐가 독과점적 지위에 있는 몇몇 상인들에 의해 장악되면 자본은 스스로 유지하기 위한 단계에 들어선다. 자본이 독점적 지위에 대한 스스로의 안정적 지속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방법은 역시 독점권을 부여한 자들과의 결탁이다. 드라마 '이산‘속 에서 시전상인들은 당시 권력의 핵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세력과 결탁, 공가(나라에서 정한 물건가격)을 조작하고 그 대가로 화완옹주(성현아 분) 등 노론 세력에게 정치자금을 헌납했던 것.
26일 방송된 ‘이산’ 22회에서 시전상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화를 불태우고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중간상인들을 이용, 재화의 유통 자체를 차단한다. 독과점 시장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경제 위기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시장은 붕괴되고 대리청정으로 정책을 펼쳐오던 이산에게도 위기가 닥쳐온다.
27일 방송되는 ‘이산’ 23회를 통해 이산은 영조(이순재 분)에게 대리청정의 권한을 박탈당하게 된다. 이산의 정책은 너무도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일단 실패한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다. 하지만 이산의 이런 정치적 결단과 행보가 300여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큰 부끄러움이다. 그만큼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바도 조금 더 의미심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300여년이 지난 우리 사회가 영정조 시절보다는 조금 더 정의로워졌기를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이현우 nobody@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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