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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맞설땐 고구려史
최근 대선정국엔 조선王부각
시대상 반영 시청자 공감
‘한성별곡’‘이산…’등
사회.정치적 격변기 속
외로운 군주 正祖조명
사극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 세태를 반영한다는 드라마, 그 중에서도 사극은 특히 대중의 기호와 욕망을 읽을 수 있는 장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에는 고구려사가 주로 다뤄졌다. 중국 등 이민족의 침입에 맞서 나라를 지킨 고구려 장수와 창업군주의 이야기가
시청자의 관심을 받았다.
대선정국으로 돌입한 올 하반기부터 사극의 중심은 조선의 왕이다. 여러 유형의 군주를 보여줘 시청자에게 우리가 바라는 지도자를 선택하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KBS2는 지난 9일부터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8부작 퓨전 사극 ‘한성별곡-正’을 방송하고 있다. ‘정조시대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전대미문의 살인사건과 배후의 음모를 다루는 ‘한성별곡-正’에는 봉건왕조를 지탱해온 기득권 세력과 신흥 상업세력 간의 권력을 둘러싼
투쟁과 함께 도읍지 천도와 금난전권 폐지 등 백성을 위한 강력한 개혁정치로 기울어가는 국운을 되살리려는 외로운 군주로서의 정조를 그리고 있다.
기득권 세력과 신흥 세력 간 권력투쟁이 난무하던 정조시대는 현 정권을 연상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또 SBS는 월화극 ‘강남엄마 따라잡기’ 후속작으로 조선 문종부터 연산군까지 여섯 명의 왕을 모신 환관 김처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인 ‘왕과
나’를 8월 20일부터 방송하며, MBC는 오는 9월부터 ‘이산-정조대왕’을 방영한다. ‘왕과 나’는 김재형 PD, ‘이산 정조대왕’은 이병훈
PD 등 두 사극전문 베테랑 PD가 연출에 나선다.
KBS1은 내년 1월부터 조선시대 최고의 왕이자 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리더로 불리는 80부작 대하사극 ‘세종대왕’을 방송해 ‘바람직한
리더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케이블방송 채널 CGV도 ‘정조의 나라’를 9월에 방영한다.
제작진은 조선왕을 그리는 사극들이 대선정국과 무관하다고 하지만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철학자 한스 가다머는
인간이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현상을 ‘영향사’라고 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 사극이라는 작품도 새로운 의미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현실이 불안하고 전망이 불투명할 때 사극을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찾아보게 하는 전례는 많았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야
드라마도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준 ‘불멸의 이순신’이 그렇고, ‘용의 눈물’도 시대적 도움을
받아 시청률을 크게 올릴 수 있었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김용수 교수는 “‘용의 눈물’을 비롯해 ‘왕과 비’ ‘태조왕건’은 당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사극이다”면서
“90년대 후반 한국사회는 대권신화(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경쟁한 15대 대선)와 성공신화에 물들었던 시절로 ‘용의
눈물’에서는 이방원이 피비린내 나는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대권을 잡은 것을 정당화해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왕과 비’에서는 조카(단종)를 제거한 세조의 이야기만 있지, 단종의 관점이 없는 것도 시대상을 반영한 한 보기라고 덧붙였다.
만약 일제시대라면 세조의 이야기는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입장에서 조명되었을 것(단종애사)이란 얘기다.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이도학 교수도 “사극은 시대 분위기의 흐름에 맞춰 부각된다”면서 “군주를 내세우는 일련의 사극은 대선정국과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국가체제를 완비한 성종, 한풀이를 하는 연산군, 부친(사도세자)이 노론의 사주로 죽임을 당한 후 평생 한을 품고
개혁을 표방했지만 실패로 끝난 정조 등 앞으로 방영될 사극에서의 군주들은 새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상 또는 반면교사로 작용할 것이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200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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