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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짱] '궁' 만난후 구름 걷어내다! - 김정훈

김정훈은 과거나 미래 보다는 현재를 더 말하고 싶어했다.

슬픈왕자 '율'은 나와 많이 닮아
촬영하면서 가슴속 응어리 풀어
그의 '식물성 미소' 기대하세요


5년여동안 활동하다 해체를 공식화한 인기듀오 UN에 대한 ‘과거사’도, 앞으로 연기자일 것인지, 가수일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일 것인지 등과 관련한 ‘미래의 청사진’도 가능하면 말을 아꼈다.

현재 김정훈이 멍석만 깔아놓으면 한시간도 넘게 혼자 술술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궁’과 ‘율’, 이 외자의 두 가지 화두 뿐이다.

내년 이른 봄(2월말 예정) 방송을 목표로 사전전작제로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MBC ‘궁’(황인뢰 연출)은 동명의 히트 만화를 모티브로 삼아 현재에도 입헌군주제, 즉 왕과 왕자와 공주가 있다는 가정을 다루는 로맨틱 드라마다.

김정훈은 이 작품에서 왕자 ‘율’로 나온다. 인터뷰 첫머리에 ‘왕자님을 직접 뵙게 돼 영광이다’고 농담을 던졌더니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씨익’하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쑥스러움과 도도함이 묘하게 섞인 그 아름다운 미소는 ‘바로 지금 한국에 왕자가 살고 있다’는 ‘궁’의 가설이 제법 피부에 와닿도록 만들었다.

# '궁'을 만나 그늘 진 미소를 벗어던지다

지난 8월말 UN 활동을 마감한 뒤 김정훈의 마음 속 날씨는 ‘맑음’이 아니었다.

연예인으로서 짧지 않은 기간 의지했던 UN이라는 둥지를 떠나 날개짓을 시작해야 했지만 어디로 날아가야 할 지 모든 게 불투명했다.

‘궁’에 캐스팅되기전 상황과 관련해 이 자존심 센 청년은 ‘힘들었다’든지, ‘괴로웠다’ 든지 같은 직설화법은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웃어도 그늘이 있었다”라는 우회적인 표현만 입에 담았다.

번민, 갈등, 답답함 등의 구름을 걷어낸 계기는 물론 ‘궁’을 만난 뒤부터다.

‘이나중 탁구부’ 같은 엽기적인 일본만화부터 황미나, 신일숙 등 여류 작가의 국내 순정만화 걸작선까지 열광하며 탐독하던 ‘만화광’ 김정훈은 화제의 만화 ‘궁’도 진작부터 꿰고 있었다.

이 만화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부터 그는 왕세자 ‘신’이 아닌 비운의 왕자 ‘율’에 더 감정을 이입해 ‘궁’을 읽었더랬다.

때문에 MBC ‘한뼘 드라마’에서 한차례 만난 인연이 있는 황인뢰 감독한테 ‘율’역을 맡아달라는 재회의 손짓을 받으면서 미묘하게 뿌듯한 기분이 든 것도 당연했다.

황 감독은 ‘궁’의 주연급 캐스팅과 관련해 이런 말을 던진 바 있다. “원작을 보면서 ‘이 사람이 적역이다’며 절로 떠올린 유일한 인물이 바로 ‘율’역의 김정훈이다.”

왕자 ‘율’은 ‘허무’라는 꽃말이 있는 와일드 스트로베리라는 야생꽃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왕위 계승 1순위인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왕세자의 자리를 ‘신’(주지훈)에게 넘겨준 그는 처음에는 욕심없이 현재를 긍정하는 향기롭고 따뜻한 남자였다가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는 ‘야심가’ 어머니(심혜진)에 떠밀리며 점차 ‘나쁜 남자’로 변해간다.

사랑과 권력을 모두 가진 ‘신’의 대척점에 서는 ‘안티 히어로’랄 수 있다.

’율’에 대한 김정훈의 설명은 열정적인 강의 같았다.

자기 배역에 대해 이렇게 치밀하게 파고들기는 처음이라는 그는 '율'의 식물성 미소와 서러운 눈물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열의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율’이 울면 시청자들도 울었으면 좋겠다. '율'은 나와 참 많이 닮았다.”

진지한 열강의 분위기를 전환할 겸 ‘그 닮았다는 부분이 혹시 외모냐?’라고 장난 삼아 딴지를 걸자 김정훈은 “외모가 아니라 성격이다”며 다시한번 그 왕자님의 미소를 얼굴에 품었다.

# 후회있음과 후회없음 사이에서

김정훈은 가령 ''궁'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 연기자로 인정을 받기를 희망한다'는 상투적인 포부 또한 멀리했다. 80년생으로 아직 20대 중반의 창창한 나이지만 거창한 목표를 설정하거나, 좋은 미래에 섣불리 설레할 정도로 그는 천진하지 않다.

안정된 미래를 보장해주는 서울대학교 치의학과를 자퇴한 일은 지금도 단 1%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취미 삼아 시작해 지금은 직업이 된 연예인의 길은 '그만두겠다'는 생각까지 먹게 만들 정도로 가끔 날카롭게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김정훈은 “모든 걸 포기하고 유학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 때도 솔직히 있었다. 그동안 마음이 많이 헐었다”고 말했다.

'UN이 앞으로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짧게 답한 그는 “왜 해체할 수 밖에 없었느냐 같은 얘기는 아주 나중에 말하고 싶다. 다만 국내 팬, 일본 팬 등한테는 오래오래 미안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궁'을 통해 홀로서기의 출발을 야심차게 대신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외치고 있는 김정훈은 “이번 드라마가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고 瞞?한다는 당위성을 스스로 납득한 뒤 뛰어든 최초의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촬영하는 과정 자체가 무슨 가슴 속 응어리를 푸는 것 같다”면서 인터뷰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함지박만한 웃음을 만들었다.

[
스포츠한국 조재원 기자, 사진임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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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0(15:12)